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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교사 Aug 17. 2019

일주일 만에 날아온 경고장

친애하는 권씨 가족에게     

아래 층에 사는 이웃입니다. 권씨 가족이 한밤중(자정이 지난 12시 30분경)에 일으킨 소란으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랍니다.  Frau. Meier     

독일에 온지 꼭 일주일 만에 아래층 할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내용이다. 독일에 도착한 첫날 밤 우리 가족이 일으킨 소란 때문이란다.      

독일어에 까막눈인 내게 남편이 읽어 준 이 경고장은 커다란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다. 소란은 인정하지만 초면에, 그것도 편지로 주의를 촉구하는 태도는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 혼자 사는 외국인 남학생에게 가족이 왔구나.’ 뭐, 이 정도의 눈치는 없더라도, ‘이사 첫 날이라 봐준다.’ 정도의 아량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납득하기 어려운 첫 경험이었다. 


독일어로 속시원히 싸워나 봤으면!     

시간이 좀 지나면서 아이가 쓰는 유모차가 문제가 되었다. 유모차를 세워 둘 공간이 1층에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없다보니 때마다 유모차를 들고  3층까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해야 했다. 특히 남편 없이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할라치면 더더욱 힘에 부쳤다. 그런 고민 중에 지하실로 내려가는 어귀가 눈에 띄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 아닌데다 귀퉁이가 제법 넓어 유모차 세워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을까? 익명으로 된 편지 한 통이 또 날라 왔다.      

친애하는 권씨 가족에게     

유모차를 세운 곳은 12가구가 같이 쓰는 공용공간이니, 유모차를 그곳에 세워두지 마세요. 이렇게 계속해서 주거규칙을 안 지키면 세입자 공동회의를 열어 당신 가족을 쫓아 낼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주거규칙? 세입자 공동회의? 이것들은 또 뭐란 말이냐?      

그제야 부랴부랴 임대차 계약서에 적혀있는 주거규칙을 찾아보았다. 거기에는 아래 내용과 같은 예시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1. 아침 8시 이전, 그리고 저녁 8시 이후에 세탁기를 돌리면 안됨 

2. 아침 8시 이전, 그리고 저녁 8시 이후에 악기연주를 해서는 안됨

3.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파티를 여는 등의 소란을 피워서는 안됨 등등.     


독일 사람들은 이런 규칙을 정해놓고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지켜간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이성적 깨달음은 나중일. 당장은 섬뜩할 정도로 두려웠다. 먼저는 누구라고 밝히지 않으니 두려웠다. ‘이 사람은 그래도 내 편, 저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뭐, 이런 구분조차 안되니, 함께 사는 이웃이 한번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껴졌다. 또한 누군가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두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최소한 누가 보낸 편지인지는 알아야 했기에 남편과 함께 따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래층 할머니?”

“아니야, 그 할머니는 자기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고 보내잖아.”

“그럼, 옆집 남자?”

“아냐, 아닐 거야. 그 남자는 만나면 웃으면서 인사는 하잖아?”

“그럼, 누굴까?”      


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더 이상 이웃이 이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감시자일 뿐이었다.      

또 여럿이 의견을 모아 우리를 몰아내겠다는 의사표시는 하나의 겁박으로 느껴졌다. 문제가 있으면 이름 밝히고 당당하게 나갈 것이지, 그렇게 익명으로 편지 써대고, 떼로 덤비겠다는 그들의 싸움방식이 불쾌감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어라도 잘하면 얼굴 맞대고 이해를 구하거나, 변명이라도 하고 따져볼 것을, 그렇지 못하니 더더욱 답답했다.     

감시는 1단계에 불과했다. 어떤 날은 돌직구가 바로 날라 왔다. 밑에 층 할머니는 아이들이 조금만 뛰고 울어대면 하이중(Heizung, 세우는 보일러)과 집 천장을 바로 두드렸다.(이곳은 보일러관이 하나의 배관으로 거실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 어느 집에서 보일러를 두드리면 그 쨍쨍한 금속음이 전체 층에 그대로 전달된다.) 거기다 조용히 하라고 소리까지 질러댔다.     

그런 두려움과 불쾌감 속에서 �내가 꿈꿔왔던 독일이 이런 곳인가?’,  ‘독일 사람에게 인정이 있긴 한 건가?’, ‘자기네 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건가?�라는 회의와 함께, 독일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또 내 돈 내고 내가 사는데 왜 이리 간섭이 많은 지, 그것 또한 분하였다.      

하지만 적응하고 버티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외출 후, 유모차를 4층까지 다시 들고 오르기 시작했고, 아이들에게 특히,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작은 아이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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