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준다. 기다려도 안되면, 생긴 대로 살게 한다.’
독일의 교육 분위기이다. 아이의 타고난 능력이 굳이 지적인 공부가 아니면 다른 잠재력을 기대한다.
하지만 한국 교육시스템에서 기다려주어도 답이 없다면? 아니, 먼저 ‘기다려 준다’의 그 선부터 정리해보자!
기다려준다, 언제까지? 특목고와 자사고 입학의 분기점인 중학교 3학년까지? 아니면, 아이들 중에는 철나면 제대로 발동 걸리는 대기 만성형 아이도 있으니 고등학교에 일단 보내놓고 기다린다?
독일은 그냥 초장에 끝을 본다. 초등 4년간 지켜보면, 대학형 인재와 실업형 인재가 결정난다.
독일에서 대졸, 콧대 세울 이유있네!
대한민국은 화끈한 나라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탑(Top)을 찍는 게 50개가 넘을 정도다.(대부분 불명예 기록인 건 함정)
대학이상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그 중 하나. <2016년 OECD 교육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청년층(25~34세)의 고등교육 이수율(’15년)은 69%로, OECD 평균치(42%)를 훨씬 상회한다.
그럼, 독일은? 독일에서 체감한 고등교육 이수율은 OECD 평균치보다 적었다. 큰아이 반 25명의 학부모 중, 한 명이라도 대학을 졸업한 경우는 우리 부부를 제외하고 7~8명에 불과했다. 독일 같은 선진국에 대졸자가 이렇게 적다니…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았고, 한편으론 그 이유가 궁금했다. 이런 궁금증은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풀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끝나는 선긋기
독일은 초등학교 때 이미 선 긋기가 끝난다. 중학교 때부터 인문계열과 실업계열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반인 4학년 1학기의 점수에 따라 인문계 중학교와 실업계 중학교의 진학 여부가 결정된다. 담임교사는 학생의 성적을 고려하여 인문‧실업계 중학교 중 하나를 추천하고, 거기에 추가적으로 부모의 의견을 반영하여 중학교의 계열별 진학여부를 결정한다.
다소 섣부르다는 느낌도 든다. 계열 결정은 장차 대학 진학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문계 중학교 진학 학생들만이 6년제 대학진학이 가능하다. 이를 두고 독일 내부에서도 성급한 결정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일기도 한다. 그런 우려 속에서도 이 제도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초등학교 4년간 담임이 바뀌지 않는 독일 특유의 담임교사 제도 덕분이기도 하다.
‘빼박캔트’ 담임의 위엄
독일 초등학교는 4년제이다. 이 4년간 단 한번도 담임 교사가 바뀌지 않는다. 고정된 담임 교사가 4년간 꾸준히 학생 25명의 학습과정과 결과 및 아이의 잠재력을 관찰한다. 외부 학원 등의 선행학습을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본인 통제하의 자연적인 교육결과물을 바탕으로 학생을 판단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교육적 평가가 가능하다. 그런 관찰과 결과물들을 종합한 담임교사의 추천이 중학교 진학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큰아이가 다니던 프리드리히 융에 슐레(Friedrich-Junge-Schule Kiel, 키일 초등학교)의 경우를 보면 4학년 1학기 평균이 2.5이상, 우리로 치면 약 85점 이상이면 인문계 중학교 진학을 권한다. 이 성적에 미치지 못하면 실업계 중학교를 고려해야 한다. 성적이 안 되는 데도 부모가 굳이 자녀를 인문계에 보내겠다고 하면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경우 담임교사는 아이의 정서적인 발달을 고려하여 만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 곳에서 더 큰 좌절감을 맛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담임교사의 추천에 따라 부모들은 관심 있는 학교의 설명회에 참석하여 학교 분위기를 파악한다. 이후 원하는 중학교에 원서를 넣고, 해당학교에서는 1차적으로 거주지를 고려하여 입학여부를 결정해 통보해 준다.
이곳의 인문계 학교 수준은 비슷하지만 학교마다 특성화 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잘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어떤 학교는 라틴어를, 또 어떤 학교는 자연계열 과목을 비중있게 가르친다. 만약 자녀가 의대진학을 꿈꾼다면, 라틴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보내야 하고(라틴어가 의학공부에 필수이기 때문), 이과 계열 공부를 원하면 당연히 자연계 학교로 보내야 한다. 부모들이 중학교 선택부터 자녀의 흥미와 적성, 그리고 장래희망 등을 면밀히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데에 있다.
이런 선긋기가 일정 점수를 놓고 담임교사를 통해 이뤄지다 보니 인문계 진학 비율과 대학이수율이 높지 않은 게 사실이다. 큰아이 반의 경우 인문계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아이는 25명 중 7명 남짓. 그러나 부모의 의지에 따라 3명이 더 추가되어 총 10명, 전체의 40%정도가 인문계 학교에 진학하였다.
이런 조기 결정이 때로는 학생에 대한 잘못된 평가일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구제의 기회가 있다. 인문계 중학교에서 2년간 낙제를 연거푸 두 번 하면 실업계로 강제전학을 가야하고, 반대로 실업계에서 성적이 월등하면 인문계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런 시스템과 호환기능을 통해 조기 진로 지도에 대한 착오를 수정해 나간다. 그래서 뒤늦게 학업에 발동이 걸리는 학생이나, 초등학교 때 미처 발굴되지 못한 인재에게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경고장치일 수도 있다. 성적이 기준치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인문계에 진학시켰을 경우, 아이에게 닥칠 위험과 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한 사전예고가 되기도 한다.
※ 이 글은 더퍼스트미디어와 오마이뉴스에 연재된 글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