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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현 Feb 03. 2020

나는 누굴까...?

- 왜 브런치를 하는가.

자기소개 키워드 선택을 두고 이 만큼 고민할 일인가 싶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이 되고, 먼저 프로필을 쓰면서 난관에 봉착한 건, 무엇도 아닌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였다. 직업과 관심분야 등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를 선택하라는 거였는데, 문제는 하나가 아닌 직업과 관심분야 각각 3개씩, 최대 6가지였던 것이다. 사람 욕심에 최대치를 정해주면, 못 먹어도 '고'라고, 나도 할 수 있는 최대치인 6가지 모두를 선택하고 싶었다. 그렇게 욕심을 내며 제시 된 키워들을 살펴보던 나는 놀랍게도 단 하나마저도 선택하지 못한 채, 창을 닫고 말았다. '나'를 말할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나름대로는 책을 읽고, 생각하고, 성장하고, 발전해가고 있다 생각해 왔지만, 그 수 많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정작 '나'는 빠져 있었건 것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언니 등등 나를 나타내는 키워드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생활 속에서 주어진 여러 이름들은 많았지만, 사회 속에서 오롯이 나는 누구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 전 나는 사회생활을 했었다. 방송작가로 공중파 지역 방송사에서 TV프로그램을 구성하고 대본을 쓰는 작가로 활동을 했지만, 흔히 경력단절 여성이 그러하듯, 결혼과 출산, 육아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서 일을 놓게 됐고, 그 이후의 삶은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졌다.

내 이름 석자 외에 너무도 많은 역할이 주어졌고, 아등바등 역할을 수행해 내며 이후 몇 년의 육아 기간을 거쳐 다시 복귀를 하게 됐지만, 명확하게 일 하는 여성도 아닌 주부도 아닌, 중간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하면 어느 것도 명확히 해내고 있지 못했고, 그에 대한 죄책감은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지게 했고, 나는 공연히 남탓을 하며, 주어진 환경탓만 하며,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자위 따위나 해가며 주저 앉아 있었던 거다. 


방송작가와 브런치 작가.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두 가지 사회적 키워드를 얻었다. 물론, 6가지는 아니다. 하지만 희망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지며, 변화가 두려운 사람이 돼 있었다. 과거의 기준과 과거의 기억 속에서 그땐 그랬었지...라고 자조적인 말을 뱉으며 지나온 길만 응시한 채, 현재를 잊고 아니 버리고 낭비하며 살아가고 있었던 거다. 

그런 나의 생활에 조금은 자극이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나는 방송작가의 이름에 또 하나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브런치 작가.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나이 마흔 넘어 뭔가 새로운 도전에 성공을 했고, 브런치 작가라는 또 다른 사회적인 이름을 얻었으며, 나는 이를 계기로 생활의 새로운 기분을 맛보고 있다. 어딘가에 지원서를 내고,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받아드는 일은 20대나 40대나 다름없이 가슴이 뛰는 일이므로. 이제. 브런치를 통해서 나를, 나의 정체성을, 나의 가능성을 발견해 나가고 싶다. 이것이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는 이유이자 나를 발견하고 만들어가기 위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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