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은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라식 수술은 왜 안 하셨어요?” 나는 안경을 낀다. 당연히 시력이 좋지 않아서이고, 수술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아예 해 본 적 없는 건 아니지만 비싼 수술비용과 혹시나 모를 부작용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늘 수술 결심까지 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안경을 낀다고 해서 딱히 불편한 것이 없었다.
라식 수술이란 게, 시력이 좋지 않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하는 필수 의학적 시술이 아닐 텐데도 왜 수술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안경 낀 사람들은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구구절절 이유에 대해 설득 비슷한 설명을 하곤 하는데, 그건 아마 질문 자체에 은근히 깔려 있는 라식수술에 대한 당연과 긍정, 안경에 대한 부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교실 풍경을 생각해 보면, 한 반 50명 정도의 친구들 가운데 안경을 끼지 않은 애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마흔이 넘은 지금의 내 주변을 돌아보면 오히려 안경 낀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다수의 친구들, 대다수의 여성들이 라식 수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안경을 벗을 수 있는 자유란, 안경을 낀 사람들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잘 때 벗어 놓은 안경을 찾아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때로는 끼고 있는 안경을 깜박하고 세수를 하려다 안경 코 받침으로 얼굴을 긁어먹기도 하고, 수영이며, 축구며 레저 활동에도 제약이 많고, 무엇보다 여성들에게는 패션에 큰 걸림돌이 되는 안경이 없어진다고 생각해 보라. 그런데 안경에 대해 느끼는 불편은 남자와 여자가 좀 다른 것 같다. 남자는 스포츠나 일상 생활면에서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반면 여성들은 미적인 부분과 많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서다.
20대 때 콘택트렌즈를 사용하다 본격적으로 안경을 착용하기 시작한 30대부터는 입는 옷에 제약이 생겼다. 안경 자체로도 얼굴에 뭔가 액세서리가 있는 느낌이어서 조금 눈에 띄는 귀걸이를 하거나, 목걸이를 하면 과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레이스가 있거나 나풀나풀 원피스를 입고 구두를 신었는데 안경을 끼고 있으면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TV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은 어느 누구도 안경을 끼지 않았고, 안경을 끼고 치마를 입은 사람은, 나이 많은 미혼의 깐깐하고 유별난 여자 ‘B사감‘으로 대표되고 있었다. 안경은 왜 그러한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일까. 그건 이 사회가 주는 여성에 대한 또 하나의 억압 기제일 수 있다. 용모단정이란 말에 ‘여성의 안경’이 허용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 한국 컬링 여자 대표팀은 한국 컬링 사상 최초 은메달이라는 성적으로도 놀라움을 안겨주었지만, 더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안경을 낀 김은정 선수가 ‘영미~’를 외치며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던 모습이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김은정 선수는 ‘안경 선배’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더불어 “여성이 안경을 끼고도 당당할 수 있고 중요한 자리에서 여성들의 렌즈 착용이 매너가 되지 않고, 더 자유롭게 안경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누군가의 글도 수 만회의 ‘좋아요’를 받으며 공유가 됐다.
안경 착용에서 느끼는 여성의 불편함은 단지 ‘기분 탓’은 아니다. 2017년 알바노조가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안경만 써도 (고용주가) 눈치를 준다”, “남성 알바는 안경 끼고 단정하지 않아도 뭐라 안 하는데 여성 알바는 안경, 화장 안 한 얼굴, 립스틱 등 끊임없는 지적을 받는다” 등의 응답이 많이 나왔다고 하니 말이다. (경향신문 2018. 2. 25. 인용)
안경을 벗어던지는 일, 그건 불편한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다. 온몸을 옥죄어 개미허리를 만들도록 했던 코르셋을 벗어던지는 일은 여성의 몸에 대한 주체성 회복이었다. 그러나 안경을 벗는 일은 오히려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자신을 맞춰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해는 없길 바란다. 시력교정 수술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고도로 시력이 좋지 않거나 안경으로도 시력을 제대로 잡을 수 없는 경우 직업 특성상 안경이 불편한 경우 필요에 의해 또 치료를 위해 라식수술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어떤 일에 있어서 그냥 편하니까 그냥 보기 좋으니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건 대다수의 사람들이 의심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의식 속에 내포돼 있는 관습과 선입견의 굴레를 스스로 뒤집어쓰는 일일지도 모른다.
관습적으로 전해오는 ‘좋음’의 기준은 코르셋도 입혔다가, 레깅스를 못 입게도 했다가, 안경도 벗기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입고 무엇을 벗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