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의 민낯
정치권력과 자본을 동시에 소유하려는 엘리트들의 똑똑한 악함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좀먹는다. 한국은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사람의 기술력과 창의성, 말하자면 소프트웨어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땅의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이 국가 성장의 열차를 타며 자신들의 삶을 고속으로 끌어올리는 동안, 그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며 사회의 공정성과 희망을 질식시켜왔다는 데 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졌고, 부모들이 그토록 바라는 '사' 자 들어간 타이틀을 쟁취했으며, 대한민국 최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엘리트 구조는 이제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부패와 결탁하고, 타인의 삶을 짓밟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영구히 고착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특히 교육과 언론, 정치와 사법 같은 공공의 영역에서마저도 이들의 똑똑한 판단은 대중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똑똑함의 숭배]는 이런 능력주의의 허상에 대해 정확히 짚어낸다. 미국 사회 역시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부와 기회를 독점해온 이들이, 결과적으로는 금융위기와 전쟁, 언론의 무기력함을 방치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대중에게 전가되었다. 능력주의는 더 이상 사회를 공정하게 만들지 못하며,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실패한 다수를 '노력하지 않은 사람들'로 낙인찍는다. 문제는, 이 허상이 엘리트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수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썩은 부위를 도려내고 재건 수술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지금 우리는 그 썩은 부위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절체절명의 순간 앞에 서 있다. 이 기회를 통해 드러난 건 단순한 제도적 실패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사회가 정당화해온 깊은 오만과 위선의 민낯이다. 시험 성적과 학벌만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스템은 결국 파시스트를 양성하며, 공동체를 파괴하고, 공적 윤리를 붕괴시킨다.
역사를 강의하는 일타강사는 조회수를 위해 진실을 희화화하고, 사람들은 자극적인 언어에 도취되어 악마의 혀에 휘감긴다. 그 누구도 멈추지 않으니, 진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계속해서 똑똑한 악함에 지배당할 것인가, 아니면 그 시스템에 질문을 던질 것인가. 교육은 다시 철학이 되어야 하며, 권력은 감시되어야 하고, 능력은 타인의 삶을 짓밟기 위한 도구가 아닌,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책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더 이상 ‘능력’이라는 말에 속지 않겠다는 각오로 깨어 있어야 한다.
책 제목 : 똑똑함의 숭배
저자명 : 크리스토퍼 헤이즈
옮긴이 : 한진영
출판사 : 갈라파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