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상혁 Jan 15. 2023

일본의 '맛'.

0. 일상의 평온함을 바라며.

 반년 만에 브런치를 쓴다. 그리고 잠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나는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고, 반년 동안 깊고 넓어지는 생각에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은 작고 소소한 일들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일들이 많아 좀처럼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없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본분을 제쳐두고, 직장 일에 매달려야 할 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솟구쳐 올라 가슴에 손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며 삶에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가는 나 자신을 볼 때면, 결이 다른 안온함에 마음이 놓인 적도 많았다. 그래서 잠시만 더 직장 생활을 하고자 마음을 먹고, 이제부터 글 쓰는 자의 본분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2019년 12월 말쯤 NHK 7시 뉴스 속보를 통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해 3월부터는 한·일간 비자 협정이 취소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있으나, 일본을 떠나면 언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일본 하시모토 내 방에서 초조한 날들을 보냈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집안 일로 급하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나는 한순간에 갈 곳을 잃게 됐다. 일본을 떠날 때는 여름이었고, 금방 다시 돌아올 줄 알고 기내용 작은 여행 가방에 갈아입을 옷 몇 가지만 챙겨 넣고 서둘러 한국으로 입국했었다. 그리고, 그 후로 1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내 집이 있는 일본 땅에 입국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여행 가방을 손에 쥐고 길 위에 서서, 나는 갈 곳을 몰라 무수히 땀을 흘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을 떠돌다 내 집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아침 8시 15분 비행기였기 때문에 나는 지금 한국에서 살고 있는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를 했다. 샤워를 하고, 어제 싸둔 짐을 점검하고, 한 달 반 가량 비워둘 집안을 둘러보고 현관 거울 앞에 선 나를 바라보았다. 약간은 상기되고, 약간은 얼떨떨한 표정의 내가 있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 공항에서 통과시켜 줄 것인가? 그 사이에 코로나에 걸려 입국이 금지되면 어떻게 하지?' 일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긴 시간 동안, 나는 겁쟁이가 되어 있었다.     

 

 김포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하고 비행기표를 손에 쥐었다. 수속 카운터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비행기표를 만지작거리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도쿄 하네다로 가는 비행기표인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있어도 믿기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비행기표를 낚아채 갈 거 같아 나는 움찔하기도 했다. 코로나 전에 비하면 김포 공항에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설렜다. 그 사이 항공사 부스와 편의 시설을 새롭게 단장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여권과 비행기표를 들고 출국장에 들어서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자동 출국 심사를 받은 뒤에 면세 구역에 섰다. 순식간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면세점도 문을 닫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면세점마다 눈이 부신 조명을 환하게 켜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38번 게이트에서 도쿄 하네다행 탑승을 안내했고, 나는 줄을 서서 기내로 향하는 탑승교를 통과했다. 일본항공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일본 특유의 기내 환경에 정말 일본으로 가는구나 싶었다. 일본어와 영어로 인사를 하는 일본인 승무원을 보면서 '이제 정말 집에 가나보나.' 하고 마스크 안쪽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나는 소곤거리며 중얼거렸다.

 일본항공이라 그런지 한국인보다 일본인들이 더 많은 듯했다. 좌석에 앉자마자 일본어 방송이 계속 들렸기 때문에 그때까지 정말 일본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다가, 비로소 마음이 조금씩 안정이 되어가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정말 돌아가는구나, 정말 내 집으로 돌아가 내 방에 수북이 쌓여있을 먼지를 털어내고 청소를 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 건 왜일까 싶었다.     


 비행기가 안정 고도에 오르자 승무원이 기내식 확인은 하며 내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내가 일본어로 대답을 하자, 그때부터 승무원은 내게 일본어로 말을 했다. 한국에서 화상 회의로만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다, 화상이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일본인과 직접 대화를 나눠 본 것도 오랜만이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으며 무엇보다 감사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감사했다. 기내용 작은 여행 가방을 하나 들고 일본을 떠나 인천국제공항에 입국했을 때, 방호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나도 모르는 곳으로 이동해 산속 수련원 같은 곳에 격리가 되었다. 집도 없이 여기저기 떠돌다가 겨우 작은 집을 하나 얻어 겨우겨우 생활을 이어가는 날들을 겪고 보니 내게 주어진 크고 작은 일들이 기적이고 감사한 순간이라는 것을 하네다행 비행기 안에서 깨달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는 점점 더 심해져서 세계 각국은 더욱 빗장을 걸어 잠갔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순간에 나는 다리가 꺾여 휘청거릴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손에 쥔 돈도 얼마 없었으며 갈아입을 옷도 변변치 않았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일본항공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 번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내 몫의 자리에 앉아 승무원이 가져다주는 기내식을 기다리는 순간은 누가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내게 감격 그 자체였다. 비행기 창가 쪽으로 뭉게뭉게 구름이 솟아나 있었는데, 나는 눈물이 솟구쳐 올라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아래 사진이 내가 일본항공에서 실로 오랜만에 먹어보는 기내식이었다.     

 

 국제선을 타고 기내식을 먹어 본 것도 오랜만이지만,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환란 속에 기내 서비스도 많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다. 코로나 전에는 김포-하네다 노선은 인천-나리타 노선보다 비행기 값이 비싼 것도 있고,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이용하는 노선이다 보니 기내 서비스가 매우 좋았다. 기내식은 언제나 따뜻하게 데워져서 제공됐는데, 이제 한일 노선에서 따뜻한 기내식은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일본항공은 기내식 외에도 음료 서비스가 다양해서 따뜻한 수프는 물론이고 와인까지 제공이 됐는데, 와인 서비스는 없어졌는지 와인 병이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여유롭게 기내식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감염 방지를 위해 식사를 빨리 제공하고 빨리 치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아무리 한일 노선이 짧다고는 하나, 이번처럼 초스피드로 식사를 제공하고 받자마자 5분이나 지났을까 싶은 시간부터 테이블을 치운 건 처음 겪는 일이었다. 테이블을 치우기가 무섭게 서비스가 종료되어 승무원들이 모두 착석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따뜻한 차를 제공했던 후식 서비스나 면세품 판매 서비스는 모두 옛날이야기가 된 듯싶었다.

 일본항공은 우리나라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처럼 기내 서비스가 훌륭하기로 유명한 항공사이나, 코로나로 승무원들 모두 마스크를 쓴 상황에서 표정을 가늠할 수도 없었고 예전의 친절한 서비스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좌석 화면에서 한국 영공을 벌써 통과해 일본 도쿄 하네다로 근접하고 있는 항로 모습을 보니 집에 간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행기가 하네다 공항에 착륙하고 연결 통로를 빠져나와 입국 심사를 받고 나왔을 때는 아직 점심시간 전이었다. 하네다 공항에서 내가 사는 하시모토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 티켓을 샀다. 버스 시간이 될 때까지 공항 대기실에서 대기하며 까맣게 잊고 있던 일본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어플을 내 휴대폰에 다운로드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국제공항답게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그제야 국제공항에 있다는 실감이 났다.

 하네다 공항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였지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버스 시간이 되어 드디어 버스에 오르려는 순간, 정확한 일본 도쿄 표준어를 사용하는 검표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내릴 것인지, 짐을 가지고 탈 것인지 짐칸에 실을 것인지, 짐 안에 깨지는 물건이 있는지, 하나도 어려운 말이 아닌데 긴장을 했는지 내가 잘 대답하지 못해 우물쭈물하니 검표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서둘러 대답을 했고 손바닥에 살짝 땀이 났다. 그러고 보니 한국보다 날씨가 매우 따뜻했다. 영상 10도를 웃돌아 나는 두 겹이나 껴입고 왔던 겉옷을 벗고 목도리도 풀러 손에 쥐고 있었다. 한국보다 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니 일본의 기온이 우리나라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다시금 상기하며 따사로운 햇살에 눈이 부셔 버스 안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1시간을 달려 마치다 버스센터에 도착했다. JR 마치다 역에서 전철을 타고 15분 정도 더 가면, 내가 사는 ‘하시모토역’에 도착한다. 배가 고파 근처 라면 집에 가서 라면을 한 그릇 시켜 먹었다. ‘니보시 라멘(마른 멸치로 국물을 낸 라면)’이라고 우리나라 멸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주는 것과 비슷한 맛이 나서, 라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맛있게 먹는 ‘일본 라멘’이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해서 우리 돈 6,000원 정도면 먹을 수가 있다. 엔화 가치가 많이 떨어진 지금, 일본 물가가 올랐다고는 해도 내가 느끼는 일본의 체감 물가는 한국보다 훨씬 낮았다.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전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전철 안에서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그리웠던 풍경들에 오래 시선을 두었다. 긴 시간 집을 비운 사이 일본인 친구와 아파트 관리인 분에게 부탁을 해서 몇 번 집안 청소를 받았지만, 그래도 내 손길만 하랴 싶어 나는 짐을 풀지도 않고 청소부터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한국과 일본은 시차가 없다고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시차가 있다. 약 45분 정도의 차이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르다. 일본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으면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잊고 지냈지만 한국보다 빠른 시간에 해가 진다는 걸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통해 새삼 느꼈다. 일본을 떠날 때 보았던 하늘이나 그 순간에 들이마셨던 공기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나만 나이를 먹고 시간의 더께를 더해 내 집으로 돌아왔나 싶었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집에 돌아왔으니 나를 위해 선물을 해주고 싶어 나는 청소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일본에서는 기쁜 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반드시 ‘초밥’을 먹는다. 귀한 손님이 집에 왔을 때도 '초밥'을 대접한다. 초밥 보다 더 비싼 음식이 종류도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왜 ‘초밥’만 이토록 특별한 대접을 받을까 아파트 입구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용히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내가 집으로 돌아온 것이 중요하고 사람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 ‘초밥’을 먹는다니 나도 그렇게 하면 그만인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내가 없는 사이 새롭게 생겨 사람들로 북적이는 인기 넘치는 초밥집에 들어가 좋아하는 종류의 초밥을 배불리 먹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조금 과소비를 해도 된다고 스스로 타일렀다. 내일부터는 집밥만 먹는다고 속으로 되뇌며 얇은 지갑을 생각했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내가 일본을 떠났을 때와 비슷한 가격으로 초밥을 판매하고 있었고, 500엔(한화 4,800원 정도)만 내면 다양한 술을 종류별로 무제한 마실 수 있었다. 단품으로 생맥주 한 잔만 시켜도 500엔이었으니, 술을 마실 거면 ‘500엔 무제한 술 제공’을 선택해 마시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나도 그러기로 하고 500엔을 내고 ‘무제한 술 제공’을 선택해, 일본으로 올 때 기내에서 마시지 못했던 와인을 몇 잔 주문해 마셨다. 일본 내 집으로 돌아와 안착했다는 기쁨을 느끼며 먹은 일본의 '맛'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목과 허리에 힘을 빼고,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계획에도 없는 일들을 하며 인생의 반경이 잠시 틀어진, 그동안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사람들도 만나 함께 바라보며 미소 짓기도 했지만 , 상식 밖의 무례한 사람들로 허비한 시간들도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자고, 어려운 시기이나 반드시 시간은 지나가며 무엇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겪는 모든 일들은 내 글의 귀한 재료가 될 것이라고 믿으며 상처받은 가슴에 손을 얹고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처럼 오랜 기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는 사람들은 넘치고 넘칠 것이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겪으며 바닥에 숱한 눈물을 뿌렸을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덮쳐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길로 접어들어 당혹스러운 날들을 보낸 사람들과 그로 인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흔들리는 날들을 보낸 사람들 역시 차고 넘칠 것이다.  


 부디, 멈춰주길.

 우리가 모두, 제 자리에서 손에 익은 일들을 하며 미소 지을 수 있기를

 그런 날들이 빨리 찾아와 우리의 삶을 평온하고 안온하게 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킬 수 있기를     


 간절히 그리고 절실하게 꿈꿔본다. ■





작가의 이전글 당근 마켓과의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