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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송곳 Mar 25. 2023

<작은 아씨들>

2022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한 편의 동화같은 현실, 혹은 현실같은 동화

   

 1868년 출판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청교도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한다. 허영심이 넘치지만 책임감이 강한 메그, 불같은 성격과 유창한 필력의 소유자 조, 내향적인 음악가 베스, 자존심 센 예술가 에이미, 이 네 자매는 가난하지만 우애 좋은 가족이다. 아버지가 남북전쟁에 참전한 이후, 자매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이웃집 로리, 로리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고난을 극복한다. 원작 <작은 아씨들>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한 교훈은 분명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는 따스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2022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랑만으로 온갖 어려움을 타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는 ‘돈’이다. 돈은 곧 힘이고, 힘없는 자는 불행하다. 정서경 작가가 그린 2022년의 작은 아씨들은 돈이 없기에 행복하려고 분투했으나 끝내 불행했다. 게다가 19세기의 작은 아씨들의 부모와 달리, 21세기의 작은 아씨들의 부모는 딸들을 위하지 않는다. 필리핀에 있는 아빠는 도박에 빠졌고, 엄마는 인주가 기껏 구한 인혜의 수학여행비를 들고 필리핀으로 도주한다. 또한, 원작 소설의 셋째 베스에 상응하는 인선은 오래전 희귀성 심장질환을 앓다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렇듯 현대판 <작은 아씨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한 세 자매의 비극에서부터 출발한다.

 <작은 아씨들>을 관통하는 상징은 ‘집’이다. 1화에서 인주는 ‘동생들과 샷시 잘된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을 염원한다. 아파트, 다시 말해 집은 인주에게 안정적인 삶과 행복을 뜻한다. 4화에서 고모할머니 혜석의 발언(-“좋은 집에 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져 웬만한 일은 집에 오면 다 극복이 되니까.”-)은 세 자매의 불행이 집의 부재에서 촉발됨을 시사한다. 실은 <작은 아씨들>의 복잡한 일련의 사건들이 집을 향한 인주의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4년 전 인주는 화영과 함께한 싱가폴 여행 도중, 공원 너머의 고급아파트를 보며 ‘하루라도 저런 데서 부자로 살아보면 좋겠어’라고 발언했다. 이 말은 화영이 인주에게 물질적인 안정과 평화를 주고 싶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작은 아씨들>의 ost 이름이 ‘your apartment’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마지막 화에 인주는 혜석에게 한강뷰 아파트를 증여받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니 <작은 아씨들>은 집(=부, 안정, 행복)을 갖지 못한 자가 집의 소유하기까지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서사극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집을 갖기 위해 세 자매는 서울시장 박재상과 그의 아내 원상아, 더 나아가 대한민국 권력의 총집합체인 ‘정란회’와 맞선다. 계급갈등에 있어 상층-하층의 대결 구도 형성, 상층을 향한 하층의 반란은 이미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진 소재다. 예컨대, 영화 <기생충>의 주제의식은 하층인 기택 가족이 상층인 박사장 가족을 붕괴시킴과 맞닿아 있고,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는 진도준으로 환생하여 대기업인 순양 일가에 반격을 가한다.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의 대다수는 서민일 것이므로, 상층에 대한 도전은 보는 이들에게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기생충>과 <재벌집 막내아들>의 반격이 실패로 끝났던 반면, <작은 아씨들>의 도발은 가히 성공적이다. 소위 흙수저라 불리는 세 자매가 정치·경제·사회의 최고봉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셈인데, 이는 사실상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허구적 설정은 <작은 아씨들>의 스토리라인을 더욱 동화같이 돋보이게 한다.      


 

 ‘어느 날 갑자기 20억의 돈이 수중에 생긴다면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할까? 20억의 돈을 갖기 위해 위험한 모험을 떠나겠는가? 혹은 아무것도 갖지 않은 채로 안전하게 머무르겠는가?’

<작은 아씨들> 극을 전개하려면 작가는 주인공이 모험을 택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해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오인주가 20억의 돈을 손에 들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는 것이 타당해 보여야 할 것이다. 정서경 작가는 도입부인 1화부터 화영의 죽음을 배치하여 모험의 동기를 정당화한다. 인주와 화영은 둘 다 사내에서 왕따다. 인주는 2년제 회계학과에 흙수저, 화영은 고졸에 무수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위 계층에 속한다. 화영의 죽음은 인주에게는 자신과 동질적인 계급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유일한 동지의 죽음이기에 그의 사인을 파헤쳐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살인 사건을 서두에 던지는 플롯은 <내 이름은 빨강>, <살인자의 기억법> 등 많은 소설에서 인용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매력적이다. 일단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자살이냐, 타살이냐, 타살이라면 누가 범인일 것이냐하는 궁금증을 야기하고 극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작은 아씨들> 역시 진화영의 죽음을 1화 후반부에 배치하고, 범인의 정체를 8화 말에서야 공개한다. <작은 아씨들>은 동화적 설정이 가미했지만, 동화의 내용과 극이 전개되는 방식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작은 아씨들>의 핵심 상징물인 ‘푸른 난초’와 ‘닫힌 방’도 동화적 설정의 일환이다. 박재상, 원상아의 집 지하실에는 푸른 난초들이 만개한 아버지 나무가 자리한다. 푸른 난초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작은 아씨들> 극 중에서만 나오는 신비스러운 꽃이다. 푸른 난초는 아버지 나무에 기생해서만 살 수 있다. 아버지 나무는 원상아의 아버지, 베트남 참전용사인 원기선 장군이 설립한 정란회를 뜻한다. 정란회는 대한민국 정치, 경제를 장악하는 권력 단체다. 정란회를 배반한 자는 푸른 난초를 받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닫힌 방’은 박재상, 원상아의 집에서 비밀스러운 계단 통로를 거치면 나오는 자그마한 방이다. 닫힌 방의 구조는 죽은 화영의 방의 구조와 같다. 닫힌 방은 원상아가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한 공간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원상아가 뉴욕 연극학교에서 만든 졸업 작품이 ‘닫힌 방’의 미니어처다. 원상아의 집 지하와 위층에 추악한 비밀이 하나씩 숨겨진 셈이다. 

 원상아의 집은 으리으리하고 화려하지만 그 이면은 추하다. 반면 세 자매의 집은 별볼일 없지만 진실된 공간이다. <작은 아씨들>의 선악 구도가 진짜와 가짜의 싸움임은 극 중에서 반복적인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3화 마지막 신에서 원상아의 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인형의 집의 인형을 만지는 인혜를 보고 박재상은 인혜에게 ‘그 인형을 갖고 싶니? 지구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 과거 흙수저 출신인 박재상은 성공하겠다는 열망 하나로 인형의 집(=원상아의 집)에 들어왔다. 박재상은 원상아와 결혼한 후, 신분상승을 하여 인형의 집에 완벽히 진입했다고 생각했으나, 11화에서 자신은 정란회의 도구일 뿐임을 자각하고 자살한다. 즉, 박재상과 원상아의 부부 관계는 동등한 위치인 양 연기하는 가짜 계약 관계다. 원상아는 5화에서 “지금 난 24시간 연기 중이에요. 박재상의 사랑받는 아내. 내가 유일하게 잘하는 배역이에요”라며, 서울시장인 박재상의 고상한 아내를 연기해야 하는 가짜의 삶을 토로한다. 세 자매의 집은 인형의 집과 반대로 진실하다. 4화에서 인혜의 집에 놀러 온 효린(박재상, 원상아의 딸)의 “니네 집은 모든게 다 진짜야”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다. 또 9화에서 자신의 엄마가 진화영을 살해한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게된 효린은 “왜 우리 집에선 모든 게 가짜 같은지 궁금했는데...진짜 다 가짜였어. 하나도 안 빼고”라며 박재상, 원상아의 삶과 집이 거짓이라고 시인한다.      



 진짜와 가짜의 대결에서 승리하는 주체는 전자인 세 자매와 가짜의 삶에서 도주한 효린이다. 결말만 보면 ‘진실은 승리한다’는 진부한 이야기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은 예상 가능한 권선징악을 구현하기까지 적절한 긴장을 불어넣는 반전을 거듭한다. <작은 아씨들>은 크게 7가지 서스펜스를 내포한다. 

1) 진화영을 죽인 범인은 박재상이 아닌 원상아다. 원상아의 실체는 사이코패스다. 

2) 원상아는 닫힌 방에서 자신의 엄마를 죽였다.

3) 진화영은 사실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4) 푸른 난초를 받고 죽은 사람들의 배후에는 ‘정란회’가 있었다. 

5) 최도일은 정란회와 관련되었으나 박재상, 원상아의 편이 아니라 오인주를 돕는 조력자다.

6) 박재상도 푸른 난초를 받고 자살한다(박재상도 정란회에게 이용당한 도구일 뿐이다).

7) 700억은 세 자매의 손에 들어간다. 

 위와 같은 긴장 요소들은 결말을 알기 위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의 스릴 넘치는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 화인 12화의 막바지에서 인주는 지하실 스프링클러에서 뿜어져 나온 염산 웅덩이에 원상아를 밀어 넣는다. <헨젤과 그레텔> 속, 물이 펄펄 끓는 화로에 마귀할멈을 밀어 넣은 그레텔의 모습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결국 <푸른 수염>의 살인마 원상아는 죽고, 세 자매는 700억원을 나눠 갖는다. 여느 동화와 같이 세 자매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기를 바란다. 수저론을 운운하고, 계층 상승 사다리가 사라진 가혹한 현실에서 <작은 아씨들> 속 동화 같은 결말은 상상으로도 너무 달콤해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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