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반 정도 완성하고 체크포인트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남겨봅니다.
책을 집필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의 브런치를 보면서 '아 나는 저렇게 쉬지 말고 틈틈이 글을 써야지!' 했는데 결국엔 저도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네요.
시간이 없었나 돌이켜보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항상 '아 오늘도 책을 마저 써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에 브런치에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쓸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써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요. 이제 초고의 반 정도를 완성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하아!
아마 최근 중 가장 바쁜 겨울을 보낸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백화점에 가서 패딩이라도 하나 사야지 벼르고 있었는데 어느새 날씨가 풀리는 3월이 되어버렸습니다. 작년 12월에 카멜북스 분들과 연락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의 기획안을 짜는 데에만 1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처음에 인공지능 이야기 기획으로 시작해서 에세이가 되었다가 소설이 되었다가 지금은 퀀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복합 기획안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사실 막연하게 기획안을 머리 속에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실제로 써보려고 하니까 막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경험담 위주로 이야기를 쓰자니 개념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뜬구름 잡는 내용일 것 같고,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자니 너무 어렵고 지루해지기 때문이죠. 첫 책이니까 최대한 많은 내용을 넣고 싶은 욕심도 생겼는데, 그러면 책 내용이 산으로 가니 눈물을 머금고 몇 가지 내용을 빼기도 하고.. 기획안만 주변의 10명 넘게 보여주면서 어느 게 더 나을까 굉장히 고민하였습니다. 결국 4안까지 기획안을 고치고 고치다가 12월이 끝나갈 때까지 결정을 못 하였습니다.
고민 끝에 1월이 되어서 과감하게 매니저의 눈총을 받으며 1주일 휴가를 땡겨쓰고 출판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앞으로 몇 달간 계속 함께 일할 분들을 한번 뵙는 게 맞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삼송역 근처에 있는 출판 단지를 찾아갔는데 정말 허허벌판이더라고요..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라 너무 신기하였습니다. 사무실도 기대한 것에 비해 훨씬 크고 직원분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난생처음 출판 계약서에 사인도 하고 편집장님을 만나서 한 시간 넘게 기획안에 대해 다시 토론하였습니다. 제 생각을 많이 배려해주시고 상황도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하였습니다.
계약을 마치고 기획안을 결정하니까 정말 작가가 된 기분이고 또 어서 집필을 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출간일을 4월에서 5월 정도로 생각 중이라고 하셨는데 브런치 글을 쓰는데도 보통 1주일을 공들인 걸 생각하면 정말 빠듯한 일정입니다.
대략적으로 결정한 기획안에는 3파트 정도로 나눌 예정이고 첫 번째 파트에서는 금융 인공지능과 퀀트에 대한 역사 (카지노를 제패한 수학자, 월가로 몰려든 물리학자들, 암호해독가들의 등장, 로봇이 된 무역 상인들, 구글 엔지니어와 초고속 인공지능의 월가 침공 등)을 이야기하고, 두 번째 파트에서는 제가 월가에서 퀀트로 활동하면서 있던 이야기들과 하루 일과, 어려운 점, 사건 사고, 트렌드 등을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딥러닝과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면서 변화한 금융 시장의 미래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여전히 많은 내용을 추가하거나 줄이고 있어서 더 괜찮은 아이디어나 내용은 의견 주시면 좋을 것 같습습니다.
이렇게 기획안을 세운 뒤 역사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강남 교보문고에서 살다시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책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필요한 내용을 머리 속에 집어넣고 중요한 책들만 구입해서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렇게 고르고 골랐는데도 20권 정도를 캐리어에 넣어 가져왔습니다. 엄청나게 무거운 캐리어였죠.
하루는 계약 진행과 수상에 도움을 주신 다음카카오 브런치 측의 과장님과 식사를 하였습니다. 많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 브런치의 성장에 대한 고민, 좋은 작가 발굴과 선정에 대한 고민 등을 함께 나누면서 브런치 측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장 놀랐던 것은 브런치북 프로젝트 때 거의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는다고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저라면 몇 페이지만 재미없으면 넘어갈 법도 한데 심사를 위해 하나하나 다 읽으신다니.. 아직 책도 제대로 못 썼는데 작가라고 해주시면서 너무 깍듯이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비즈니스 모델이나 기능 같은 걸 고민하면서 의견을 나누다 보니 대기업이라도 여느 스타트업이나 다를 게 없구나 싶더라고요. 함께 어떻게 성장할지 이야기를 나누는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과장님께서 책 집필 중에도 틈틈이 글을 써달라고 하셨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역사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책 쓰기를 어떻게 시작할지 정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니다. 브런치에 있는 다른 작가분들의 글쓰기 경험담을 굉장히 많이 참고하였습니다.
헬로 데이터 과학의 집필자 김진영 박사님의 글도 많이 참고하였고, 감사하게도 전화 통화도 허락해주셔서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https://brunch.co.kr/@lifidea/16
같은 출판사의 청민 작가님의 경험담도 프로세스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https://brunch.co.kr/@romanticgrey/87
다른 브런치북 작가님들의 출간 경험도 참고를 하였습니다.
https://brunch.co.kr/@thsgus/96
공통적으로 굉장히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하루에 몇 장, 일주일에 어느 정도 이런 식으로 정해서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김진영 박사님은 타수를 데이터 분석까지 하셨고요. 그렇지만 고민 끝에 저는 큰 속도만 정하고 그때그때 원하는 만큼 쓰기로 했습니다. 제 성격 자체가 성실보다는 열정에 가까운 편이기 때문에 매일 할당량을 채우려고 스트레스받는 것보단 열정이 있는 날에 많이 쓰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모든 작가 분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슬럼프를 언제나 경계하고 해결을 해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워드를 켜서 프롤로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프롤로그를 쓰면서 정말 책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프롤로그에만 3주 이상 소모한 것 같습니다. 조회수로나 댓글 반응이나 제 글을 좋아하던 많은 분들이 주로 직장 생활 이야기를 좋아하셨는데, 정작 첫 부분이 역사다 보니 너무 딱딱해질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프롤로그에서 흥미 유발 요소를 많이 넣어야 하면서도 주제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바로 뒤에 나오는 역사 부분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어야 했고요.
그렇게 대략적인 프롤로그를 써서 저와 가까운 두세 명과 독서에 일가견이 있다는 동생에게 보여줬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너무 오글거린다."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장르가 뭐냐? 소설이냐? 에세이냐?"
"두세 장쯤 읽다가 도저히 어려워서 껐다."
나름 브런치에서 메인도 뜨고 조회수도 몇십만 씩 찍었다고 스타 작가가 된 양 의기양양했던 저의 자신감은 단숨에 깨졌습니다. 사실 책을 쓰는 건 블로그와 차원이 다른 문제였습니다. 글 하나에 주제를 담고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만들면 되는 블로그 글과 달리 책은 15페이지의 긴 프롤로그라도 서론은 서론일 뿐입니다. 그 안에 모든 흥미 유발 요소와 드라마를 넣으려 하니 글이 너무 오글거리고 호흡이 짧아진 것이었습니다. 좀 더 설명을 추가하고 드라마틱한 요소를 배제하고 프롤로그를 갈아엎는데 1주일이 걸렸습니다. 다시 한번 여기저기 보여줬더니 이번에는 너무 어렵고 지루하다는 평이었습니다. 시작부터 난관이었습니다.
그렇게 3주 동안 씨름하고 나서야 잠정적인 프롤로그가 완성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초고를 끝까지 완성하면 다시 고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주제의식이 맨 앞에 들어가고 나니까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습니다.
파트 1의 역사 부분은 프롤로그에 비해 쓸 내용은 명확했지만 시간은 훨씬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인물에 대한 책이나 기사를 모두 스크랩해서 이를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실제 수치나 연도를 정확하게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책 3~4권을 펼쳐놓고 이리저리 찾아보면서 책을 쓰다 보니 쓰다가 무슨 내용을 써야 할지 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덕분에 저 또한 퀀트의 역사에 대해서 빠삭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1월 말쯤이 되어서 최초의 퀀트에 대한 챕터를 마무리 지었는데, 마침 1월 말에 그 퀀트 분이 미국에서 자서전을 발간한 겁니다. 혹시나 놓친 내용이 있을까 봐 그 자서전을 구입해서 읽고 다시 처음부터 빠진 내용을 추가하느라 싹 고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챕터 1을 끝내고 슬럼프가 찾아오더라고요. 뭔가 앞부분을 깔끔하게 완성했는데 뒷부분을 덧붙이니 지저분해지는 게 보기 싫어서 챕터 1만 쓴 상태로 꽤나 오랜 시간 내버려둔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의 경우 집이나 카페 등에서 많이 집필을 하셨는데 저는 아무래도 제일 많은 생활을 하는 회사에서 일과 후에 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료 책도 다 회사 책꽂이에 두고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덕분에 저의 거래 전략에 대한 철학도 조금 바뀐 것도 있습니다. 책 쓰기는 또 다른 공부라는 말이 새삼 와 닿았습니다.
아직 반밖에 완성하지 못하였지만, 하루면 뚝딱 읽는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고 이러한 시간을 지나온 다른 작가분들이 너무나 존경스럽고 멋지다는 걸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금융이나 뉴욕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저희 어머니가 읽어도 재밌고 이해가 될 정도로 쉬운 책을 만드는 게 목표라서 용어도 최대한 배제하려 하니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래저래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만, 글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쌓이면서 몇백 페이지가 되어가니까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역시 글쓰기는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3월이 되었고, 겨우겨우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아마 앞으로 직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속도가 더 붙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힘내서 빨리 책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약간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브런치에서 종종 진행 상황이나 다른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화이팅!
p.s. 책에 관한 의견이 있으신 분은 epckwon@gmail.com 으로 언제든지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