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배포와 맷집

인터벌 달리기 같았던 나날들에 대하여

by 권태욱


1. 연말정산 서비스 0 to 1을 했다. 팀을 옮기고 맡게 된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큰 배포를 하고 나니 매시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그래도 지난 직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니, 이번엔 꽤나 맷집이 생겼다고 느낀다. 의미 있는 변화다.


2. 언젠간 생각이 정리되면, 어마무시한 소프트웨어의 복잡성에 후드러 맞아 본 소회를 기록해보고 싶다. 비록 시작은 호기로웠지만 말이다. 소프트웨어가 마치 수 천 개의 혈관이 뻗어있는 사람 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중증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의 마음이 이런 걸까. 엔지니어랑 버그 고치면서 의사 선생님들께 새삼 존경을 느꼈다.


3. CPO님이 누군가에게 툭 던져주셨던 한마디와 글이, 이후로 나에게도 계속 여운을 남겼다. 덕분에 엔지니어랑 협업할 때, 뉴런 싱크 수준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엔지니어가 이것도 저것도 어려워요.라고 얘기하는 하는 건, 그들이 현실 세계를 state machine으로 생각하는 게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게 항상 정답은 아니기에, UX에서 용납할 수 없는 건 말씀해주셔야 해요.


4. 디테일을 챙기다 보면 큰 그림을 못 보고, 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디테일을 놓친다. 양 끝에 놓인 꼬깔콘 사이를 계속 뛰는 인터벌 달리기 같기도 하다. 너무 디테일을 보고 있는 것 같으면 이제는 잠시 멈춘다. 산책 한 바퀴 돌면서 지금 뭐가 제일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 살핀다. 반대로 큰 그림만 보고 있다면 피그마를 켜고 일단 그리기를 시작한다. 예전보다 많이 컸다. 내가 어디 즈음에서 뛰고 있는지 스스로 감지 해내는 능력이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기록을 찍고 나면 한 뼘 컸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 번 고비도 잘 넘겨보자. 그런 의미로 사진은 지금 당장 마시고 싶은 그로니 커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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