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깥만 바라보는 도다리 눈
사람의 털은 다 같은 형제들이다. 자라는 부위가 다를 뿐...
하루는 겨털이 머리털을 보고 말했다.
"비결이 뭐야? 왜 너만 지극정성으로 보살핌을 받는 거야? 나랑 저기 아래에 있는 친구는 한 번도 관심받아본 적이 없잖아? 심지어 우린 나자마자 잘리기 일쑤고. 아랫동네 애들처럼 예술적으로 잘리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러자 머리털이 말했다.
"그게 니들과 나의 차이지. 다행히 난 복이 많아서 사람의 머리에서 태어났어. 사람들은 처음에는 내 가치를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를 귀하게 받들지. 평생 관심 못 받는 너희랑은 차원이 달라."
다시 겨털이 물었다.
"그러니까 비결이 뭐냐고? 왜 너만 귀한 대접을 받냐고?"
머리털이 말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달라져서 그래. 사실 나도 옛날에는 대접받는 털이 아니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날 엄청 신경 쓰더라구. 왜 그런가 했더니, 사람들이 껍데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던 거야. 속이 지저분해도 껍데기만 화려하면 대접받는 그런 세상이 된 거지. 나에게는 참 다행스러운 변화야."
겨털이 다시 물었다.
"그럼 나랑 저 아래의 애들은 평생 대접받긴 틀린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사람들은 하도 변덕이 심해서 언제 어떻게 마음이 바뀔지 알 수 없으니까. 다만 분명한 건, 지금은 속보다 껍데기가 중요한 세상이란 거지. 그래서 외모를 가꾸려고 온갖 짓을 다하면서도 책 한 권 읽을 생각은 잘 안 해. 나로서는 고마운 사람들이지.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 우리도 계속 귀해지거든."
겨털이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대접받을 세상은 기약이 없구나. 한심한 사람들. 껍데기는 쉽게 변해도, 진정한 가치는 언제나 속에 있는 법인데."
머리카락이 빠진다며 온갖 처방을 찾으면서도 다른 곳의 털이 빠질까 봐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머리카락은 타인의 시선을 상징하며, 현대인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자아존중보다 타인의 시선에 더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성숙은 멀어지고 외부에 길들여진 삶에 익숙해진다. 수시로 자존심을 내세우지만, 진정한 자존감은 바닥을 헤매고 있다.
내면의 가치를 모르고 바깥세상만 바라보니 마음속은 온통 분노와 불안과 조바심과 미움으로 가득하다. 본디 선한 성품이 자리하고 있는데도 그런 자신을 망각하고 툭하면 시비와 갈등을 일으킨다. 비뚤어진 도다리 눈 때문이다.
안을 보자. 바깥의 해로운 것들을 최대한 기피하고, 내 속에 원래부터 존재하던 따뜻함과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으로 눈을 돌리자. 타인을 바라볼 때도 껍데기보다 속을 보고, 그 속의 따뜻함을 일깨워주는 말을 하자. 나의 존재와 자존감이 불 붙듯 다시 살아나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