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 걸린 부친을 씻기며 보낸 시간들)
반백의 아들 손에 몸 구석구석을 맡긴다
팔을 놀리느라 아들은 숨이 딸리고
맡긴 쪽은 맡긴 대로 힘에 겨웁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아들은 제 몸뚱이를 챙기느라 샤워대로 향한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노인의 시선
당신은 텅 빈 출입문을 응시한다
오십 년을 집 다음으로 자주 찾은
낡은 목욕탕
몇 차례의 수리와 몇몇의 새주인을 거치며
목욕탕도 반백년을 살았다
허나, 당신의 공허한 눈에서는
한 가닥의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다
팔십 평생이 오롯이 녹아든 깊이라
오십의 경지로는 범접조차 못하는 것인지
서서히 찾아든 머리의 병이
눈빛조차 허망하게 만든 탓인지
그렇게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초점 없는 시선을
또 한 번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으로
먹먹히 바라보고 섰다
어려서 당신과의 살가운 기억이 많지 않은
반백의 아들은
훗날의 미련을 지우느라
오늘도 추억놀이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