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들꽃연인 Nov 17. 2024

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이야기

<일상의 기록, 생각의 낙수>

(이 글은 제가 FM 93.9  CBS 음악 FM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김정원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중 '나만의 음악앨범'이라는 코너에 사연과 신청곡을 보내, 2024년 11월 15일에 실제로 방송된 내용입니다.)


I.

30년 전쯤 제가 처음 CBS FM을 즐겨 듣기 시작한 이유는 요란한 말들은 적고 음악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기억나는 프로그램은 90년대 초 중반쯤 저녁 퇴근 시간에 방송하던 ‘저녁 스케치 939’라는 프로그램이었죠.  지금은 타이틀에서 939가 빠지고, 배미향 님이 큰 인기를 누리며 오래 진행하고 있지만, 제가 처음 들을 때는 이효연이라는 젊은 아나운서가 예쁘게 진행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전 9시부터 방송하는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들을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토요일까지 근무했던 바쁜 직장인이었고, 일요일에는 교회 가는 시간과 방송 시간이 겹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주 5일제가 되어 토요일을 온전히 쉬게 되면서 주말에는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듣게 되었습니다.  김동규 성악가가 진행했던 시절에 ‘아당’이라는 줄임말을 자주 썼는데,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고, 뜻을 안 후에도 이상하게 한동안 그 표현에는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장 친숙한 말 중 하나가 되었지요.


그때부터 김동규 성악가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곡을 이 프로그램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 이 곡의 원곡인 노르웨이 노래와, 연주곡으로 편곡된 <Serenade to Spring>이 모두 봄에 대한 노래라는 것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 연주곡도 가을에 들으면 더 아름답게 들리곤 합니다.


<신청곡 1.  Secret Garden의 연주곡 ‘Serenade to Spring’>


https://youtu.be/JqlZ5F2W6kE?si=s4aS4xNEoURALi_4


II.

1986년 무렵에 저는 학사장교로 입대해 복무하고 있던 2년 차 장교로, 경기도의 후방 소도시에서 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 도시는 서울 사람들의 별장도 적지 않고 골프장과 관광지도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 가까운 도시입니다.  하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농부와 군인 밖에 없을 정도의 한적한 시골이었습니다.  당연히 서울에서는 엄청나게 먼 곳으로 생각되었죠.


그런데 영화 ‘겨울 나그네’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은 저는, 평일 밤 퇴근 후 망설임 없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대한극장에서 가슴 먹먹한 감동을 느끼며 영화를 본 후, 부모님께 전화 한 통도 못 드리고 부지런히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VOD로 그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젊은 강석우 배우님은 정말 꽃미남이었고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곡들이 흐르며 이미숙 배우님과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늦가을의 캠퍼스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로맨틱했습니다.


그리고 그 강석우 님을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꽤 오랜 시간 친근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직장 생활에도 좀 여유가 생겨 ‘아당’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졌는데, 자상한 형 같은 강석우 님의 진행은 참 편하고 따뜻했습니다.


프로그램 시작 후 첫 곡 다음에 매일 반복하는 ‘들리나요, 선물 같은 하루의 시작’이라는 멘트도 이때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의미를 착각하고 ‘무슨 선물을 프로그램 앞부분부터 주지?’라는 생각도 했었죠.  


그렇게 방송을 듣던 어느 날 영화에서 강석우 이미숙 두 배우가 헤어진 것처럼 이별의 시간은 찾아오더군요.  


<신청곡 2.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중 ‘보리수’  Dietrich Fischer Dieskau Der Lindenbaum Die Winterreise>


https://youtu.be/jyxMMg6bxrg?si=zgU92JVNhCt0YmA7


III.

클래식을 들은 지는 오래됐지만 연주자에게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저는 피아니스트 김정원 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 성함을 듣고는 중성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며 남성분이신지, 여성분이신지 좀 궁금했습니다.


새로운 DJ에게 쉽사리 친숙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정원님의 방송을 듣자마자 착각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드럽고 편안한 음성, 배려와 사려 깊음이 가득한 말씨에 마치 오래 알던 친구처럼 편안함을 느꼈죠.  


음악에 몰입하다가 잠시 진행에 허둥대기도 하고, 퀴즈 정답을 미리 말해버리는 실수도 하는 모습은, 죄송한 표현이지만 귀엽기도 했습니다.  1부 끝날 때 가끔 ‘그대로 계세요’ 하는 멘트도 웃음을 짓게 합니다.


마침 정원님이 진행을 맡기 시작하실 때쯤, 저도 직장에서 퇴직하고 편안한 은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기에 ‘아름다운 당신에게’를 온전히 들으며 편안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방송 시간에는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있고요.  이 모든 시간에 ‘아름다운 당신에게’는 저의 소중한 동반자가 됩니다.


‘아름다운 당신에게’가 저의 좋은 동반자이듯 정원님과도 오래오래 음악에 대한 사랑을 나누는 친구가 됐으면 합니다.  


<신청곡 3.  베토벤의 황제 중 3악장 : 피아노 독주 김정원, 정주영 지휘의 원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작가의 이전글 그 많던 낙서는 어디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