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19.
I.
Y는 성격적인 장점이 많은 친구인데, 특히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행동이 빠르거나(좋게 말해서), 급한 것이다.(나쁘게 말해서) 본인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앞 뒤 재지 않고 흥분해서 팔 걷어 부치기도 하고, 젊은 시절 심한 경우에는 주먹 휘두르는 것도 불사할 듯이 달려들기도 했다. 그 성격이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즉 노는 쪽으로는 빠른 결정과 빠른 실행으로 나타난다. 노는 것과 관련해서 Y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말을 꺼내기만 해도 Y는 즉각 일의 거의 절반 이상을 진행시키고 계획도 완벽해서 나를 실망시킨 적이 거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도 탁월했다.
셋이서 성공적인 찬조출연을 마치고 나서 몇 달 후에, 우리는 회사 근처에서 저녁에 모여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Y가 그 다운 제안을 했다. “야, 우리처럼 비슷한 연배에 셋 다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하는 사람들이 뭉치기가 쉬운 일이야? 게다가 실제로 무대에도 선 경험이 있는데, 이렇게 말기는 너무 아까운 것 아니냐? 그래서 말인데, 우리 아예 정식으로 콘서트를 한번 하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나머지 둘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이쪽의 전문가인 Y가 진도를 빼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밤 9시, 10시에 퇴근하는 게 다반사이던 시절이었는데, 무슨 용기로 그런 결심들을 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Y는 팀 이름부터 정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이미 생각해 온 ‘노래사랑’이라는 명칭을 제안했다. 어디서 살짝 들어본 듯했지만, 다들 박수로 통과했다. 다음은 공연의 이름. 역시 Y가 정해온 ‘노래사랑의 토요특휴’라는 명칭으로 결정되었다.
그때는 토요일에도 오전에는 다 근무를 해서, 토요일은 반공일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때였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는 정규 휴가 이외에, 한 달에 한번 토요일을 온전히 쉴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고 토요특휴라고 불렀는데, 이를 이용한 공연 명칭이었다.
우리는 토요일 퇴근 후에, 넓은 Y의 집에 모여 연습을 했는데, Y의 어머님께서 특히 우리 공연에 대한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 때로는 공연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열심히 연습을 안 한다고 짐짓 나무라시기도 했다. Y의 모습이 그냥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은 “아들 친구면, 내 아들이기도 하다’”는 논리로 내 엉덩이를 두드리시기도 했다.
Y의 형수님은 숙대 미대를 졸업하신 분이었는데, 우리의 공연 포스터와 티켓 디자인을 해주시는 등 Y네 집안 전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공연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갔다.
II.
노래 연습과 공연 준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 셋은 겁 없이 회사 대표님을 공연에 초대하겠다고 티켓을 들고 대표실로 찾아갔다. 먼저 비서실장을 찾아뵙자, 실장님은 평사원 셋이 나타난 것에 다소 놀라시며 무슨 일인가 물으셨다. 씩씩하게 공연 개요를 말씀드리고 대표님을 초대하고 싶다고 하자, 비서실장께서는 공연이 언제인지 물어보시더니 우리를 대표님께 안내하셨다.
대표실에 들어가 젊은 사원 셋이서 씩씩하게 이러저러한 공연을 하는데 대표님을 모시고 싶다고 하자, 대표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참 좋은 행사를 한다고 칭찬하셨다. 그런 공연은 우리 회사의 기업문화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대표님 본인도 가급적 참석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날짜를 물어보셨는데, 하필 우리 공연 날이 모 VIP를 모시고 부부동반으로 제주도를 가는 날이라고 안타까워하시면서 우리에게 수첩의 일정까지 보여주셨다. 본인이 못 가시는 대신 시간이 가능한 주요 부서장을 참석하도록 하시겠다며 다시 한번 우리를 격려하셨다.
나는 그때 일을 되돌아보며, 대표님도 감사했지만, 비서실장님이 참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비서실장이면 당연히 대표님의 일정을 알고 있었을 테고, 우리가 날짜를 말씀드렸을 때 ‘그날 대표님이 시간이 안되시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라고 하실 만도 한데, 굳이 우리를 대표님께 인사시키고 공연에 대한 안내를 하도록 한 것이었다. 젊은 사원들이 기를 꺾지 않고 그 의욕을 존중해 주신 그 실장님은 후에 본사 임원을 거쳐 계열사 사장까지 하셨고, 후배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으셨다.
III.
늦은 봄의 어느 토요일 오후. 본사 대강당에서 우리 공연이 열렸다. 대강당 좌석은 약 4,5백 석 정도였는데, 좌석이 모자라 서서 본 관객도 많았다. 난 당시 아내와 연애 중이었는데, 아내도 퇴근하고 늦게 와 서서 공연을 봤다고 한다. Y의 부모님도 오셨고, 관객 중에는 젊은 여직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윈폴리오에서 시작되어 젊은 포크송 가수들이 이어간 통기타 문화가 아직 남아있을 때고, 여직원들에게 교회 오빠 스타일이 먹어주던 때였기에 많은 관객이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린 나중에 셋이서 각자 자신 때문에 온 관객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는 유치한 잘난 척들을 하기도 했다.
이날 사회는 인사부 연수과의 내 사수였던 J선배가 맡았다. 평소 달변이었고 나와의 친분도 있어 내가 부탁했는데, 흔쾌히 OK를 해주었다. J선배는 나중에 우리 회사의 대표이사까지 올랐고, 그 후 그룹 회장이 되셨다,
그날 부른 곡은 대략 열 서너 곡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꿈의 대화>를 비롯해서 징검다리의 <님에게>, 변진섭의 <새들처럼>, 산울림의 <회상>, 노찾사의 <광야에서> 등의 곡이었고, Y가 회사 상황을 재미있게 집어넣어 개사한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도 있었다. 셋이서 각자 한 곡씩 솔로도 불렀는데, Y는 김창완의 <날 사랑하는 님이여>, K는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 기 죽인 노래였던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그리고 나는 안치환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불렀다.
좀 웃기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내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를 상기하며 ‘테너 마리오 란자가 공연 전에 위스키를 한잔 마셔서 목을 풀었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자 Y가 공연 날 자기 집에서 시바스 리갈이었던가, 조니 워커였던가, 하여간 비싼 양주를 한 병 가져왔고, 우리는 공연 전 한잔씩 마셨다. 빈 속에 갑자기 독한 양주가 들어가니 목부터 식도까지 전기가 오는듯한 느낌이 짜르르하게 전해졌다. 목이 풀렸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입에 자꾸 침이 고여서 고생했다.
난, 가사가 잘 안 외워져서 애를 먹었다. 결국, 가사가 자꾸 헷갈리는 곡은, 가사를 크게 프린트해서 바닥에 깔고 노래를 불렀다. 무대 높이가 1.2미터 정도 돼서, 객석에서는 가사를 깐 종이가 안보였을 것이다.
우리 공연이 아마추어들의 어설픈 공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초대가수는 정말 대단했다. 바로 산울림의 김창완 가수님이 와주신 것이다. Y가 다니는 교회의 아는 형이 큰 방송국의 PD였는데, 그 형을 통해 부탁해서 오시게 된 것이다. 개런티는 거의 차비 수준밖에 안 되는,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좋을 정도의 금액이었다. 사실 그 정도로 초청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 유명한 분을 모시게 됐었다. 어찌 보면 우리 공연보다 김창완 님을 보려고 온 관객이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김창완 님의 순서는 우리 1부와 2부 공연 사이였는데, 예상보다 많이 일찍 도착하셨던 것 같다. 우리가 1부 공연을 마친 후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대기실로 가자 김창완 님이 이미 와계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우리가 남긴 양주를 벌써 절반 가량 혼자 비우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공연은 아무 실수 없이 앙코르까지 소화하면서 깔끔하게 해 주셨다. 프로는 역시 프로였다.
어쨌든, 우리의 행사는 2부 공연까지 성공적으로 잘 끝났고, 엉뚱한 세 사원 나부랭이들은 평생의 기억에 남을 멋진 이벤트를 마무리했다.
(이미지 : Pixabay, 소장 사진)
징검다리 – 님에게 (1980)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님에게 이주호 작사, 작곡 이정선 편곡 징검다리 노래
그대 잊어버렸나 지난날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변한 것 없이
많은 세월 갔어도 우리 사랑은
옷깃을 스치는 바람 같아요
나를 버려도 내 마음속에
지난날에 꿈 있어요 나~~
님이여 그대 내게 돌아온다면
언제까지나 사랑할테요 뚜루루~뚜루
우리의 꿈 다시 한번 온산에 꽃 만발할 때
이루어봐요 꽃만발할 때 비도 한번 내릴까요
나~~ 나~~ 나~~ 나~~ 나
찬비가 오면 꿈은 꽃처럼 피어
온 세상 환히 비쳐 줄 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