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18.
18. 노래사랑 이야기 1 – 꿈의 대화
I.
1회 MBC 대학가요제가 열렸을 때 난 까까머리 중학생이었고, 형과 누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때는 창작곡과 기성곡 모두 출전할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창작곡은 대히트를 했었다. 나중에 직장생활을 할 때, 임원까지 하신 선배 한 분이 1회 대학가요제에 출전하신 분이었다. 아쉽게도 그분이 부르신 곡은 히트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Simon & Garfunkel이 부른 ‘The Boxer’를 ‘권투선수’라는 제목으로 번안해 부른 기성곡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2회 대회 때는 당시 대학 3학년이었던 심수봉 가수가 피아노를 치며 ‘비가 오면 생각 나는 그 사람~~’하는 ‘그때 그 사람’이라는 곡을 불러 상당한 쇼크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형과 누나는 ‘어떻게 대학가요제에서 저런 뽕짝을 부를 수 있냐’면서 흥분했던 것도 생각난다.
대학가요제 본선에 나가기만 해도 히트가 되는데, 대상을 받으면 최고 인기 곡이 되는 건 따놓은 당상이었다. 1회 대회 때의 대상곡은 ‘샌드 페블즈’라는 서울대 밴드가 부른 ‘나 어떡해’라는 곡이었다. 이 곡은 김창완 가수의 동생인 김창훈 님이 작사, 작곡을 했는데, 대상을 받음으로써, 김창완 형제들에게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주었다고 한다. 김창완 님이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나 어떡해>는 자신들의 곡 중에서도 좀 처지는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상을 받은 것을 보고 다른 곡들도 진짜 히트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외의 대상 수상곡들은 2회 때의 <밀려오는 파도소리에>를 비롯해 <내가>, <꿈의 대화>, <바윗돌> 등이 있었다.
그중 4회 대회 대상곡이었던 ‘꿈의 대화’를 내가 그렇게 많이 부르게 될 줄은 몰랐다.
II.
내가 입사해서 처음 배치받은 곳은 부서원이 100명이 훨씬 넘는 영업부였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낯설고 업무적으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신입사원에게 선배 사원들은 한없이 우러러 보였다.
내가 Y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나와 동년배인 Y는 ROTC를 했는데, 내가 복무했던 학사장교보다 전역이 1년 빨랐고, 입사도 1년 먼저 한 것이었다. 우리는 얼마 안 되어 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입사 초에 Y는 내게 하늘 같은 선배로 보였다. Y는 요즘도 가끔 “네가 처음 회사 들어올 때, 콧물 질질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때 Y의 집은 막 지어진 부자 동네인 큰 평수의 목동 아파트였고, 우리 집은 그 건너편에 있던 신정동 가난한 동네였다. 입사 후 두어 달 지났을 때 퇴근하는 좌석버스를 기다리다가 Y를 만났고, 버스에서 각종 개인사와 신변잡기들로 수다를 떨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공통점이 너무나 많았다. 같이 장교 출신인 것부터 시작해서 기타와 노래를 좋아하고, 기독교 가정에, 심지어 프로야구 OB베어스 광팬인 것까지 같았다. 물론 체격이나 환경적인 다른 점도 있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급 호감을 느꼈고, 두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의 막내들은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맥주를 한잔했고, 말을 놓았고, 친구가 되었다.
Y는 흔히 말하는 키 크고 잘생긴 킹카였다. 게다가 학벌 좋고 집안 좋고 심지어 성격까지 좋은, 한 마디로 모자란 게 없는 친구였다. 노래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는 건 덤이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내 수많은 여직원들이 Y를 보며 가슴을 설렜고, 용기 있게 다가오는 여직원들도 있었다. 그럼 Y는 그 직원들을 결코 쌀쌀맞게 대하지 않았다. 그건 장점인지, 단점인지…
좌우간 그러던 어느 날, Y는 내게 아침 업무 시작 전에 부서원들과 함께 ‘Sing along’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관리직 이상인 30여 분들은 아침마다 회의를 했고, 7,80여 명의 사원들은 업무 준비를 하거나 신문 보고, 커피 마시는 등 어영부영했다. 이 시간에 10분 정도 짬을 내 같이 노래하는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었다. Y와 거의 비슷한 성향을 가진 나도 당연히 찬성을 했고, 고참 사원들의 지지 속에 Sing along 시간이 시작되었다. 우리 둘 다 집에서 기타를 가져와 번갈아, 또는 같이 리드하며 진행을 했고, 어떨 때는 간단한 포크댄스를 추기도 했다. 그 시절은 이런 게 꽤 공감받던 시절이었다. 급기야 영업부장님이 같이 회의를 하던 관리자들을 다 인솔하고 나와서 사원들과 같이 노래하고 포크댄스를 추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오랜 친구들이 봤다면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송곳은 주머니에 있어도 삐져나온다고. 아니, X은 덮어놔도 냄새가 난다고 했을까?
III.
입사 후 6개월 만에 난 인사부로 발령을 받아 연수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수업무는 독립부서가 아니었고 몇 년 지나서야 별도 부서로 독립되었다. 부서는 달라졌지만 Y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냈고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도 자주 만났다.
당시 우리 회사의 여직원들의 압도적 대다수는 여상을 졸업한 고졸 여직원들이었다. 회사 전체의 남녀 비율은 약 7:3 정도로 남직원이 다수였다. 회사에서는 여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여직원회도 조직해 주고, 약간의 경비도 지원해 주었다.
하루는 그 여직원회의 회장이 내게 전화를 했다. 여직원회에서 부서별 여직원 중창대회를 열 예정인데, 예산이 부족하다, 심사 집계하는 동안 노래를 부를 초대가수를 초청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 영업부 직원들에게 얘기를 들으니 당신과 Y가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한다는데, 그래서 말인데, 당신과 Y가 초대가수로 노래를 불러주면 안 되겠느냐, 사례비 줄 형편은 안되지만 조그만 선물은 주겠다, 뭐 그런 얘기였다.
Y에게 상의를 했더니, “선수는 무대가 있을 때 거절하지 않는다.”며 호쾌하게 OK를 했고 우리는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인 <꿈의 대화>등 두 곡을 정해 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내 업무 담당 대리 중 한 분인 K대리가, 지난겨울에 입사한 신입사원 중에 진짜 기타 잘 치고 노래 잘하는 친구가 있다며 셋이서 트리오를 하면 더 멋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당시 사원에게 대리는 하늘 같은 직속상관이기에 그 말을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Y에게 얘기했더니, 그 대리의 말을 뭉갤 수는 없으니, 형식상 오디션을 한번 보고, ‘그 친구 도저히 실력이 안 돼서 같이 하기 어렵다’고 둘러대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신입사원 K에게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의사를 물으니 너무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빈 회의실에서 우리와 신입사원 K가 처음 만났다. 키만 크고 인상은 영 별로인 친구였다. 우리는 완전히 오디션 심사위원의 기분으로 K에게 기타를 건네며 노래를 한 곡 해보시라 했더니, K는 “그럴까요”라고 하더니 망설임 없이 기타를 잡았다. 그런데 K가 기타 조율을 시작하자 우리는 이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조율을 하는 폼에서 ‘선수’의 느낌이 강하게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K가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우리는 심정적으로 완전히 무릎을 꿇으며 ‘싸부님’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K는 이미 대학 때 타 대학 축제에 초청가수로 불려 다니며 노래를 한 경험이 있었고 진짜 가수의 길을 갈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여자 친구의 위협(?)으로 포기한 적도 있는 말 그대로 ‘선수’였다.
입사는 우리보다 늦었지만, K는 우리보다 한 학번 먼저였고, 나이는 우리와 같은 해의 빠른 생일인, 즉 고교 졸업으로 보면 1년 선배 격이었다. 그렇지만 몇 번 같이 연습을 하고 또 술도 한두 잔 나누자, K가 먼저 말을 트고 친구로 지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손해 볼 게 없는 Y와 나는 ‘맘 변하기 전에 빨리 그러자’며 바로 말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여직원 중창대회에서 <꿈의 대화> 등 두 곡을 여직원들의 열광 속에 성공적으로 찬조출연 했고, 평생 같이 노래하며 어울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IV.
K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를 갖고 있는 친구다. 그는 당시 야구명문 모 상고를 졸업했는데, 쉽지 않은 입시까지 봐가면서 그 학교에 들어간 이유는 야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때 나름 훌륭한 야구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선수는 아니었는데, 자기 스스로의 야구 소질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고교 입학 후 야구부 코치를 찾아가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하니 코치는 우습지도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리틀야구 등을 통해 날고 기는 선수들이 즐비한 그 학교 야구부에, 선수 경력이 전혀 없이, 입시를 통해 들어온 일반 학생이 야구부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으니 어이없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하도 간절히, 또 자신 있어하니 ‘어디 한번 보기나 하자’라는 듯이 던지기, 수비, 베팅 등을 테스트해 본 코치는 깜짝 놀랐고, K의 야구부 가입을 허락했다.
K는 몇 달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으나, 결국은 자신의 의사로 야구부를 탈퇴하고 말았다. 실력이 처진 다든가, 선수들 간의 갈등 이런 문제는 아니었다. 코치가 부모님께 이런저런 사유로 자꾸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지 않으면 시합에 출전도 시키지 않는 등의 뿌리 깊은 비리가 바로 원인이었다.
야구부를 나온 K에게는 적성에도 맞지 않고, 이미 진도도 늦어버린 상고의 일반적인 커리큘럼보다는, 일반적인 대학을 갈 수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K는 재수 끝에 명문 H대학교에, 동일계 진학이 아닌 일반 입시로 합격하게 된다.
대학시절 만나게 된 그의 여자친구는 K보다 6살이나 연상이었다. 그녀는 K를 어린 동생 보듯 대했지만, K는 그녀의 거절을 뚫고 적극적인 구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그래서 K는 우리 회사에 입사했을 때 이미 유부남이었다. 최근에도 부인의 친구들 부부동반 모임에 가면 평균 10살 가까이 많은 형님들이 K를 무지하게 귀여워한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K는 건설, 무역 등을 주력으로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를 눈여겨본 인사 담당자들의 pick up으로 신입사원이지만 그룹 인사부에 배치되어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부장이 개고기를 병적으로 좋아하는데, K는 개고기를 못 먹는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만 해도 무척 잦았던 회식에서도 K는 채소나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마셨고, 그런 그를 부장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인사부장은 부서 직원들의 단합과 사기 진작에는 개고기 회식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실천하는 사람이었는데, K 때문에 자신의 부서 운영 철학이 깨진 것처럼 언짢아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오후이자 매우 이른 저녁에 부장이 K를 불러 따라오라고 했다. 부장이 K를 데리고 간 곳은 세칭 보신탕집, 즉 개고기 식당이었다. K가 공손히 “부장님, 죄송합니다만, 제가 개고기를 못 먹습니다.”라고 했더니, 부장은 “알아. 알지만, 자네 때문에 부서의 단합이 깨지는 것 같아서 내가 특별히 자네를 부른 것이다.”라면서 골 때리는 제안을 했다. 각자 소주를 한 병씩 갖고, 잔에 따라 마시되, 부장이 먼저 다 마시면 앞으로 K가 개고기를 먹기로 하고, K가 이기면 부장은 앞으로 절대 K에게 개고기를 강요하지 않기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K는 어이가 없었지만, 부장의 제안이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곤 두 사람의 웃기는 레이스가 시작됐고, K는 열심히 마셨지만, 부장에게 압도적인 차로 지고 말았다.
K는 “제가 졌습니다.”라고 말하고 개고기를 한 점 집어먹은 후 바로 식당을 나왔다. 그리곤 그 길로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다시 입사시험을 쳐서 들어온 곳이 우리 회사였다. 고교 졸업 학번은 위지만, K가 Y는 물론 나보다도 입사 후배가 된 것에는 그런 그의 순탄치 않은 과거가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엄청 큰 그룹이었던 그의 전 회사가 우여곡절 끝에 공중분해 되어 없어진 반면 그때는 그리 크지 않은 신생기업이었던 우리 회사가 지금은 국내 굴지의 큰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사유로 회사를 옮긴 것이, 결과적으로는 K에게 큰 전화위복이 되었다.
어쨌든 K와 Y, 그리고 나는 그 이후 몇십 년을 노래와 인생을 함께하는 트리오로서, 친구로서 늘 가까이에서 함께 벗하게 되었다.
(이미지 : Pixabay, Google 이미지)
[대학가요제 1980] 이범용, 한명훈 - 꿈의 대화 Lee Beom-yong&Han Myeong-hoon, 제4회 대학가요제 대상 (<- 이곳을 누르면 해당 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이다.)
꿈의 대화 이범용 작사, 작곡 이범용, 한명훈 노래
땅거미 내려앉아 어두운 거리에
가만히 너에게 나의 꿈 들려주네
에 에 에 에 에 에 에 에
조용한 호숫가에 아무도 없는 곳에
우리의 나무집을 둘이서 짓는다
흰 눈이 온 세상을 깨끗이 덮으면
작은 불 피워 놓고 사랑을 하리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별들이 불 밝히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창가에 마주 앉아
따뜻이 서로의 빈 곳을 채우리
네 눈에 반짝이는 별빛을 헤리라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외로움이 없단다 우리들의 꿈속엔
서러움도 없어라 너와 나의 눈빛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 함께 나누자 너와 나
너와 나 너와 나만의 꿈의 대화를
에 에 에 에 에 에 에 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