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17.
I.
지금은 프랑스 문화원이 충정로의 프랑스 대사관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보진 않았다. 과거에는 경복궁 옆에 있었다. 이름도 불문화원. 요즘 젊은 분들은 불란서, 불어, 이러면 못 알아듣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친절히 설명해 드리자면 프랑스를 중국 사람들이 음차 한 단어가 佛蘭西(불란서)였고, 그걸 우린 한자 발음 그대로 불란서로 사용한 것이다. L.A를 나성이라고 한 것은 영화 ‘수상한 그녀’ 덕에 많이 알려졌고, 그 외에도 和蘭(화란 : 네덜란드), 華盛頓(화성돈 : 워싱턴) 등 어려운 표현도 있었다.
어쨌든,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거의 매일 프랑스 영화들을 상영해 줬는데, 이곳에서 영화를 본 후 근처에 있는 파스텔 톤의 카페에서 일반적으로는 익숙지 않았던 파르페를 시켜 먹으면 프랑스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면서 스스로가 괜히 멋져 보였다. 내 대학시절 정신적 사치의 유치한 단면이었다고나 할까?
프랑스 문화원에서 영화를 보면 내 박약한 프랑스어 실력으로는 알아듣기가 어려웠고, 영어 자막에 의지해서 봤지만 그 또한 뭐 약간의 도움이 되는 정도여서 영화 내용을 파악하려면 상당한 눈치와 상상력이 필요하긴 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주 인상적인 영화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원어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La Dame en Bleu’ 정도였으리라 생각되고 하여간 우리말로는 ‘푸른 옷의 여인’이었다. 결코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는데, 한 남자가 푸른 옷의 여인을 우연히 보게 되는데, 자신의 이상형이었다. 그리곤 그 여자를 잊지 못해 찾아다닌다. 심지어는 자신의 애인에게 부탁해 둘이서 함께 그 여인을 찾아다니는, 특이한 좀 막 표현하자면 골 때리는 영화였다. 무엇을 상징했는지, 어떤 은유가 숨어있는지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몇 년 후 이외수의 ‘겨울나기’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소설의 모티브가 그 영화 ‘푸른 옷의 여인’을 그대로 베낀 듯했기 때문이다. 단지 ‘푸른 옷’을 ‘노란 옷’으로 바꾸어 그 콘셉트를 그대로 쓴 것을 보고 너무 어이없었다. 그 이후 난 이외수의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이 두 영화와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한번 스친 여인을 찾기 위해 모든 고생과 시간을 들이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II.
‘김종욱 찾기’라는 인상적인 이름의 영화가 있다. 공유 배우와 임수정 배우가 주연을 한 2010년도 개봉작이다. (스포일러 있음) 이 영화에서 뮤지컬 무대감독인 임수정 배우는 결혼을 하지 않아 아버지를 애태우는 노처녀로 나온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로 인도 여행 중 만났던 첫사랑 ‘김종욱’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편, 여행사에서 해고된 채 누나 집에 얹혀사는 공유 배우는, 작가인 매형의 사무실 한편을 빌려 ‘첫사랑 찾기 사무실’을 차린다. 그리고 임수정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이 사무실을 찾아온다. 그때부터 공유, 임수정 두 사람의 첫사랑 찾기 작업이 시작된다.
공유 배우는 전국에 있는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연락처를 구하게 되고, 두 사람은 이를 바탕으로 힘겨운 사랑 찾기를 반복한다.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 헛수고를 반복한다.
임수정이 첫사랑을 느낀 김종욱과의 기억이 영화 진행 과정에서 조금씩 풀리는데, 두 사람은 인도 여행을 가는 비행기에서부터 눈이 맞는다. 재미있는 것은 공유 배우가 다른 분위기를 보이며 김종욱 역할로 1인 2역을 맡은 것이다. 둘은 약간의 겹치는 우연으로 여행을 같이 하게 되며, 로맨틱한 시간을 갖는다. 여행 마지막에 둘은 다시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김종욱은 자신의 주민등록증을 임수정에게 건넨다.
김종욱과 헤어진 임수정은 여행을 계속한 후, 오사카에서 며칠을 머문 후 귀국하는 비행기의 수속을 하려다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고 만다. 그 비행기를 타야만 김종욱과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었지만 타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지레 겁먹고 늘 마지막을 피하는 행동을 하곤 했던 것이다. 김종욱과의 만남을 다시 가졌다가 아름다웠던 첫사랑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지레 겁먹고 피해버린 것이다. 즉 김종욱을 못 만난 원인은 임수정에게 있으며, 그의 주민등록증도 갖고 있었기에 그를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를 감추고 공유는 김종욱을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임수정은 짐짓 모르는 척 그런 공유를 따라다닌다. 절에도 갔다가, 먼 지방에도 갔다가 하다가 둘은 깊은 산속에 있는 산장까지 가게 된다. 산장의 주인이 김종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인상착의도 비슷하다고 해서 갔으나 산장 주인은 김종욱이 아닌 김동욱이었다. 시간이 늦어 산장에서 둘은 하루를 머물게 되고, 임수정은 공유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다. 둘은 같이 다니는 과정에서 이미 사랑을 느끼게 됐던 것이다.
그 얼마 후, 임수정의 아버지가 몰래 전해준 그녀의 인도여행 다이어리에 끼워져 있던 사진 뒤편에서 공유는 김종욱의 주민등록증을 발견하고 허탈해한다. 그런데 마침 그때쯤 김종욱이 공유의 사무실로 연락을 해온다. 첫사랑 임수정을 찾아달라며.
결론은 공유, 임수정의 해피엔딩이다. 임수정은 김종욱을 만났으나, 인사 후 헤어지고 공유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뭐 그런 마무리다.
III.
내가 소나무 친구 중 한 명인 J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학사장교 훈련을 받기 위해 입교하던 날 영천 3 사관학교 정문 앞에서였다. 그는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입대하는 나를 환송한다고 그 먼 곳까지 같이 와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내가 J를 본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J에 대해서는 사실 아는 게 많지 않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음악선생님께 pick up 되어 학교 중창단 활동을 같이 했고, 소나무 친구 6명으로 진한 우정을 나누었음에도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짐작하건대 집안이 어려웠던 듯싶다. 그때 우리는 친한 친구들 집에 자주 놀러도 가고, 어머님이나 형, 누나와도 대부분 잘 알고 지냈다. 물론 J의 집에도 몇 번 갔었다. 아니, 그곳은 집이라기보다는 J의 거처라고 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어떤 집의 다락방 같은 곳이었고, 짐들이 좀 어수선하게 쌓여있기도 했던 것 같다. J의 가족은 본 적이 없다.
LP였는지, 카세트테이프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곳에서 J는 내게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Holst의 <The Planet>은 확실히 들은 기억이 나고, 그 외에도 조지 거쉰으로 짐작되는 음악 같은 현대음악들을 주로 들려줬는데, 난 그 음악들이 어렵고 불편했다.
J는 독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했고, 천성적으로 착하고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는 절대 안 하고 못하는 유형이었으며 늘 맑고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J는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노래도 잘했고 본인도 그걸 잘 알았다. 그는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음대 성악과 입시를 준비했는데, 실기 과외 같은 것을 전혀 받지 않고 독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필기 점수는 음대 수석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친구들에겐 ‘소나무야’ 외에도 우리 자작곡의 주제가가 있었다. J가 작곡하고 H가 가사를 만든 ‘밀알처럼’이라는 곡이었는데, 그 곡도 하모니를 맞춰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부르곤 했다.
밀알처럼 주현신 작사, 김정호 작곡
새 생명과 열매를 위해 / 자신은 사라져 가는
한 알의 밀알처럼 / 그렇게 우리도 살아가자
작은 초가 빛이 되어 / 무한한 공간 여기에
영원히 남는 그처럼 / 우리도 그렇게 나아가자
대학입학 후 우린 연대 축제에도 같이 가고, 그때 당시 대학생의 낭만과 고뇌도 함께 나누었다.
그랬던 J가 내가 군에 입대한 후, 모든 친구에게 연락이 끊긴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3년 후 군에서 전역하고야 알게 되었다.
친구 B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 편지에 미국에 유학을 간다든가, 갔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공이 성악이나 음악이 아니라, MBA(경영학 석사)였다고 해서 나는 한번 더 놀랬다. 사실 돌이켜 보면 J는 음악성은 탁월했지만, 체격이 그저 보통 정도였고 마른 편이었다. 음색은 윤기 있는 편이 아니었고, 다소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짐작하건대, 성악과를 다니는 동안 자신의 신체 조건과 성악가로서의 미래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 모두 J의 소식을 알 수 없어 궁금해했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곧 취직했고, 고속 성장시대의 정점에 휘말려 다른 곳 바라볼 여유 없이 앞으로만 달려갔다. 그리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승진하고 더 바빠지고…
친구끼리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리고 비로소 한숨 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 우린 J에 대해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찢어지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음대 동문 주소록 그의 이름 앞에 고(故) 자가 붙어있었다는.
지금도 믿고 싶진 않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나는, J를 찾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는지가 부끄럽다. 김종욱을 찾는 것도, 푸른 옷의 여인을 찾는 것도 절실함으로 모든 노력을 다했다는데, 나는 그대에게 절실하지 못했나 보다.
부끄럽구나, 나의 박약했던 우정이.
보고 싶구나, 내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친구여.
(이미지 : Pixabay)
Paul Mauriat ~ Love is Blue (1968)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