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21.
I.
영화 별들의 고향.
최인호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이장호 감독이 신성일, 안인숙을 주연으로 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가 개봉한 1974년은 난 아직 초등학생일 때여서 영화는 물론 소설도 보지 못했고, 내가 소설과 영화를 본 것은 회사를 퇴직한 초로가 되어서였다. 영화를 보진 못했어도 당시 한국 사회를 뒤흔들 정도로 히트했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대학 들어가서도 다 영화도 못 본 주제에 술자리에서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아, 행복해요. 더 꼭 껴안아주세요’와 같은 별들의 고향 대사를 시시덕거리며 웃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의 경리직원이 된 경아는 회사 선배 직원의 강요와 꼬임에 넘어가 몸을 허락하게 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러나 선배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경아는 낙태 수술을 한다. 시간이 흘러 돈 많은 중년의 남자를 만나 그의 재혼 상대가 된 경아는 부족함 없는 평범한 주부로 행복한 생활을 짧게 경험한다. 그러나 그의 낙태 이력을 알게 된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경아는 술에 빠져 살게 된다. 그러다 불량배를 만나게 되고, 술집의 호스티스로 나가게 된다.
주인공 남자는 미술학원 강사인 화가이지만, 늘 돈이 궁해 병원에서 매혈을 한다. 그러다 경아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지길 반복한다. 남자가 최종적으로 경아를 떠나게 되고, 경아는 야산의 눈 속에서 수면제를 먹고 사망하게 된다
매우 통속적인 멜로지만, 엄청난 화제를 뿌렸고, 당시 전국 술집의 수많은 아가씨들이 경아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이 영화에 유명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 바로 가수 이장희가 만들고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다. 서정적인 곡과 가사가 멋져 7,80년대에 크게 유행했고, 요즘도 라테세대들에겐 심심치 않게 불리는 노래다.
가수 김세환이 모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했었는데, 그 당시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 작곡이 가능했던 다수들은 김세환에게 자기들이 아끼는 노래를 선뜻 주곤 했다고 한다. ‘좋을걸 어떡해’ ‘길가에 앉아서’ ‘사랑하는 마음보다’ 같은 노래들이었는데, 이런 노래 덕에 김세환은 연말 시상식에서 가수왕에 등극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원래 김세환에게 주기로 한 곡이었는데, 이장희가 갑자기 취소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자신이 프러포즈할 여인에게 불러줘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장희는 그 여인과 결혼했다.
세월이 흘러 이장희가 LA에서 라디오코리아 사장을 하던 시절, 세시봉 멤버들이 LA 교민들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세시봉 멤버들의 공연 가운데, 관중들이 이장희를 연호했고, 이장희는 기타를 들고 무대에 나갔다. 그리곤 첫 가사인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까지만 부르고 노래를 멈추었다. 이장희가 그 노래를 만든 사연, 그리고 그 여인과 결혼하고 이혼한 사연을 아는 청중들은 이장희가 그 여인 생각에 목이 메어 노래를 멈춘 줄 알고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러자 이장희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으나 역시 첫 소절만 부르고 멈추었다. 관중들은 다시 엄청난 박수를 보냈으나 이장희는 무대 뒤로 퇴장하고 말았다. 그리곤 어이없어하는 김세환 등에게 말했다고 한다. “야, 그다음 가사가 뭐냐?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 나네…”
II.
내가 직장생활 중 두 번째 근무했던 부서에는 엄하기로 유명한 과장님이 한 분 계셨다. 어느 날 그 과장님은 나를 부르더니, 아주 간단한 내용의 공문 하나를 기안해 올리라고 했다. 난 B4 횡 사이즈의 기안지(일명 풀스캡지)에 기안을 해서 사무실 여직원에게 타이핑을 부탁했다.
당시엔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이라 여직원들이 타이핑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부탁한 여직원은 고참이어서 아주 능숙한 솜씨로 금방 타이핑을 해서 내게 주었다. 나는 정성스럽게 결재 칸 고무인(일명 사다리방)을 찍어 담당 L대리의 결재를 받은 후 과장 책상에 올려놓았다.
잠시 후 과장님이 불러서 가보았더니 과장님은 30센티 자를 가지고 내가 결재 올린 문서의 여기저기를 재고 있었다. 그리곤 우리 회사 규정집에 의하면 종이의 끝과 문서의 첫 줄 간격이 얼마인지 아냐고 물었다. 난 당연히 몰랐을뿐더러 그런 규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어이없었다. 그러나 과장님은 내게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안돼있다는 말로 시작해서 장장 10여 분간 나를 질책했다. 나는 황당한 상태로 그냥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과장님이 기안에 오타가 있다던가 내용이 틀렸다던가 하는 것으로 야단을 쳤다면 억울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 회사를 관둬야 하나 하는 정도로 심하게 열을 받았다.
자리에 서류를 놓고 나서 바로 사무실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하나 뽑아 창 밖을 보며 커피를 들이켜는데, 열도 받고 기분도 처참했다. 그때 언제 왔는지 L 대리님이 어깨에 손을 얹더니 나를 위로했다. 과장님은 내가 더 치밀하고 주의를 기울여 일하라는 의미로 일부러 야단치신 거다 하면서.
내가 중간에 때려치우지 않고 회사를 잘 다닌 것은 순전히 그 담당 L대리 덕이었으며 그분은 그 이후 내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그 과장님에 대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 깊은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가 은퇴한 이후에는 자상한 큰 형님처럼 대해주시는 모습에 감사하며 자주 뵙게되었다.
III.
그냥 얼굴만 딱 보고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알기 어려운 것처럼, 외모로 노래를 잘하는지 아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말 노래 잘할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영 꽝인 경우도 있고, 반대 경우도 있다. L선배는 후자의 경우였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다소 걸걸한 음성에 외모도 남자다워 노래하고는 거리가 좀 멀어 보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같이 노래방에 갔다가 나는 그가 노래하는 걸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보통을 한참 뛰어넘는 노래 실력에 깜짝 놀랐고, 정말 감탄했다. 놀라면서 정말 노래 잘하신다는 내 말에 L선배는 자신이 어렸을 때 대구 MBC (KBS였던가? 하여튼.) 어린이 합창단이었다고 말했다. 참 사람 외모로만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그때 L선배가 부른 노래가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였고, 내가 하모니를 넣어도 전혀 음정의 흔들림 없이 노래를 하셨다. 보통 어정쩡한 노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화음이 들어가면 자신의 멜로디가 흔들리는 경우가 흔했다. 내 열화와 같은 앙코르에 L선배가 부른 곡은 ‘영일만 친구’였는데, 그 노래도 정말 멋졌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L선배는 그 이후 주로 ‘18세 순이’와 같은 뽕짝을 많이 불렀다. 물론 뽕짝도 잘 불렀지만, 난 그래도 처음 들었던 곡들이 좋았다.
L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내가 회사에 입사할 때 연수 담당 대리였던 L선배가 우리 동기들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였다. L선배가 연수 담당으로 처음 맡았던 기수가 우리였는데, 그래서인지 L선배는 우리 기수를 무척 아꼈고, 우리는 연수가 끝난 이후에도 그를 많이 따랐다.
L선배가 나를 눈여겨봤는지, 난 입사 후 몇 달 안 되어 연수 담당으로 발령이 나 L선배를 담당 대리로 모시고 근무하게 되었다. 우리 회사는 한 부서에 길어도 3년 이상은 계속 있지 않는 순환근무를 원칙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L선배와는 네 번이나 같이 근무하는 인연이 있었다.
그는 형처럼 따뜻하고 정도 많았지만, 야단칠 때는 추상같이 매운 성격이었다. 실제로 내 친형과 동갑으로 나보단 6살 위여서, 직장 생활할 때 내내 나보다 한 직급 위였다. 내가 사원일 땐 대리, 대리일 땐 차장, 이런 식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도 있고 해서 난 L선배가 늘 형처럼 생각됐었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나 갈등이 있을 때는 L선배에게 상의를 드렸다. 그러면 그는 늘 자기 문제처럼 감정이입을 하고 자기 생각을 들려주곤 했었다.
L선배가 부서장으로, 내가 차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는 유난히 나에 대해 잔소리가 많았고, 때로는 심한 질책도 있었다. 그것도 여러 직원이 보는 앞에서.
둘이서만 소주 한잔 하자고 말씀드려 마주 앉았을 때 내가 항의했다. ‘왜 저만 이렇게 심하게 깨시냐’고.
그의 답변은 ‘내가 당신 말고 누구한테 큰 소리로 질책을 하겠느냐, 또 우리 부서의 최고참인 당신을 깨는 것은 부서원 전체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난 그 대답이 선배의 더 큰 애정과 믿음을 확인한 것 같아 감사했고, 그를 더욱 따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직장생활 때의 기억을 가끔 양념처럼 뿌리며 즐거운 만남과 대화를 이어가는 평생 형, 동생이 되었다.
(이미지 : Pixabay, 중앙일보, 위키피디아, 벅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이장희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이장희 작사, 작곡, 노래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내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