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의 배경음악 22.
I.
90년대 초반까지는 휴대폰도, 내비게이션도 없었고, 심지어는 컴퓨터도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먼 곳도 지도 보며 잘 찾아갔고, 약속을 하면 어긋나지 않고 잘 만나기도 하고 그랬다. 단,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아 그때까지도 약속시간에 자주 늦는 걸 가리키는 ‘Korean Time’이라는 말도 있었다.
회사에서도 컴퓨터가 없으니 엑셀이나 Word는 꿈도 못 꾸었고, 주판이나 잘해야 전자계산기, 타자기 등이 주요 사무용품이었다. 한 부서에 한 대 정도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던 시기였는데, 그 앞에서 연습을 하면 상사들이 지나가다가 여직원들 시키면 되지, 뭘 그런 쓸데없는 걸 익히고 있느냐고 핀잔을 주던 시절이었다. 하긴 뭐, 여직원들에 대한 호칭도 미스 김, 미스 박이 일반적이었으니까.
우리 회사는 전국에 걸쳐 지사가 많이 있어서 본사와 지사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했는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사내 우편을 통한 공문 발송이었다. 팩시밀리가 있었지만, 지사에서 안 보면 공문이 왔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인쇄된 공문 발송이 중요시되었다. 그러다 보니 본지사 간 커뮤니케이션은 빠르면 하루, 늦으면 이 삼일 걸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던 중, 국가 전체적으로 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생겨, 동 업계 회사들 전체의 업무처리 기준이 크게 변하게 되었다. 시시각각 여러 가지 변경사항들이 생겼는데, 이걸 지사에 전달해도 하루 이틀 후에야 공문이 도착해 회사에서는 신속한 업무 기준 전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지금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때 경영진에서는 타사에서 사내방송국을 통해 변경 내용을 전달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회사에서도 사내방송국을 만들기로 결정했고, 지체 없이 본사에 사내방송국 설치 공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일단 공사를 시작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누가 방송을 담당할지가 문제였다. 외부인력을 뽑자니 회사 업무를 모르고, 직원을 뽑자니 방송을 모르고, 뭐 이런 고민이었다.
그때 회사 인사부에서 나를 아는 직원이 나에 대해 대학방송을 한 경력이 있다고 보고하자, 경영진에서는 즉각 잡아오라고(?) 지시를 했고, 열심히 현장 업무를 하던 나는 졸지에 방송인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II.
대학방송 시절 선배들에게 철저히 트레이닝을 받아서인지, 대학방송을 떠난 지 10여 년이 되었는데도 지식과 실력은 녹슬지 않았었다. 청바지와 낡은 티를 가져와 출근해서 갈아입고, 방송국 공사를 하는 기사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거나, 먼지 먹어가며 종일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함께하며 지켜보았다. 내가 뭐 그들이 배선을 어떻게 하는지, 마감재료를 뭘 쓰는지 알 턱이 없었지만 옆에서 관심 갖고 보기만 해도 조금이라도 정성을 더 기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회사에서는 예산도 풍족하게 지원했고, 방송 장비도 내가 원하는 좋은 스펙의 기기들을 구입해 주었다. 방송국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기자재들도 세팅이 끝난 후에는 혼자서 시험방송을 시작했다. 스튜디오의 마이크 볼륨을 올리고, 릴 녹음기의 녹음 버튼을 누른 후 스튜디오로 들어가 멘트를 읽었다. 그 후 내 목소리와 음악을 함께 편집하면서 다시 녹음을 해서 방송을 내보냈다. 시간이 무지하게 걸리는 원시적인 작업이었지만, 그 시험방송을 들은 직원들은 모두 신기해하며 회사 전체에 음악이 울려 퍼지는 신선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원시적인 방법으로 혼자서 방송을 계속할 수는 없었기에 회사의 동의를 얻어 남직원 한 명, 여직원 한 명을 사내 공모로 뽑게 되었다. 구름같이(?) 몰려든 지원자 중에서 남, 녀 각 1명씩을 음성테스트와 면접을 거쳐 선발했다. 특히 선발된 남직원 L은 대학 때 학교방송국 국장까지 했던 유 경험자였는데 그 후 나와 함께 4년, 그 이후 본인이 방송 책임자가 되어 또 4년, 도합 8년이나 사내방송을 담당해 거의 방송국 귀신(?)이 되었으며, 나와는 지금까지 수십 년의 우정을 이어오며 선후배이자, 형제이자, 좋은 친구가 되었다. L군, 이 글 잘 읽고 있나?
III.
L군과는 호흡이 잘 맞았다. 개국을 준비하면서 방송국의 이름과 콜사인 등을 정해야 했다. 거듭된 회의 끝에 KBS나 MBC 같은 영문약칭 대신 회사의 상징색을 이용해 ‘초록방송국’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었다. 한참 후에 회사의 상징색이 바뀌면서 그 이름은 무대 뒤로 박제되고 말았지만.
그리고 방송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마다 ABBA의 히트곡 ‘I have a dream’의 연주곡 버전을 BGM으로 깔고 ‘마음을 나눕니다, 꿈을 열어갑니다. 초록방송국입니다.'라는 콜사인 비슷한 문구를 내보냈다. 초록방송국이라는 이름과 ‘마음을 나눕니다, 꿈을 열어갑니다’라는 문구는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잘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쨌든 열심히 준비를 해서 CEO와 본사 임원, 부서장이 모두 참석하고 본사는 물론 전국의 지사가 연결된 가운데 성공적인 개국 방송을 했다. 개국을 한 후에도 방송 준비시간은 매일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욕심이 작용한 탓이기도 했다.
우리는 회사에서 월급 받고 오로지 방송업무만 했기에 스스로를 프로방송인으로 여겼으며, 그에 부끄럽지 않은 방송을 하려고 노력했다. 화장실에 뛰어갔다 올 정도로 시간이 아까웠으며, 여름에 회사에서 중앙 냉방이 꺼지는 늦은 밤에는 (여직원이 퇴근한 후) 둘이 팬티만 입고 방송 녹음과 편집을 하기도 했다. 일이 끝난 후에는 포장마차에서 쓴 꽁치 내장을 씹으며 좋은 방송을 하자고 다짐하곤 했고.
방송은 그 이후에도 경영진의 좋은 평가와 직원들의 호감 속에 비교적 순항했다. 아침에 업무 연수도 했고,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소식을 전했다. 지사 간 라이브 퀴즈 대결도 했고, 지사를 탐방해 직원들의 목소리를 담기도 했으며 고객들의 불만을 생생히 전달하는 등 의욕적인 방송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방송국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키게 된 일이 있었다. 회사 인사부에서 인사발령 내용을 방송으로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에만 해도 사내 동시 의사전달수단이 없었기에 인사이동을 방송으로 전달하는 것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다. 인사부 K차장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인사이동 방송은 전 직원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직원들 사이에 방송국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IV.
이렇게 잘 나가던 중, 우리는 예상치 못한 복병 두 가지를 만나게 되었다.
첫째는 같이 방송을 시작했던 여직원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그 여직원은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집안이 넉넉지 않아 여상을 졸업한 후에 바로 우리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곤 몇 년간 월급을 모아 대학에 진학할만한 상황이 되자 모 대학 미대에 지원, 합격했다. 어쨌든 좋은 일로 떠나게 되었지만, 우리는 다시 같이할 직원을 모집해야 했다.
회사 인사부와 상의해 사내 공모를 했는데, 1명을 뽑는 자리에 백 명이 넘는 여직원들이 몰렸다. 게다가 업무적으로 회사에서 핵심인력이라고 할만한 직원들까지 지원한 것이었다. 아마도 힘든 현업보다는 방송이라는 것이 그들의 환상을 자극한 면도 있었을 것이었다.
인사부에서는 이 상황을 다소 심각하게 보았고, 여직원들의 근무사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선발되지 않은 많은 여직원들이 방송국에 대해 부정적인 그룹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 결과 지원을 한 여직원 중에는 서류심사 결과 합격자 없음으로 공지하고, 외부 인력을 선발하기로 인사부와 결정했다.
그리고 대학방송의 경험이 있고 방송 아카데미를 수료한 우수 인력을 선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직원을 신입사원 연수에도 참여시켜 회사 기업문화도 익히게 하며 방송에 투입했다. 그 직원은 지혜와 미모를 겸비한 재원이었으며 열의와 사명감이 있어 기대에 부응했고, 직원들이나 회사로부터의 평가도 좋았다.
한 번은 회사에서 휴일에 볼링대회가 있어 그 여직원을 취재차 보냈다. 그 볼링대회에 참가했던 우리 방송국 소속 부서(종합기획부) 직원 하나가 우리 여직원을 같은 부서라고 챙겨주고,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그 직후 주말 그 직원은 전화를 걸어 같이 드라이브를 갈 것을 제안했고, 그때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사귐은 결국 9살이라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 직원은 나중에 회사 임원과 계열사 대표까지 역임했고, 여직원은 싸모님이 되었으며, 나는 얼떨결에 두 사람을 중매한 공헌자가 되었다.
사내방송이 맞은 두 번째 복병은 좀 더 심각한 것이었다.
뉴욕에서 근무하던 C이사가 귀국하면서 우리 부서의 부서장을 겸하게 된 것이다. C이사는 방송에 대해 매우 못마땅한 시각을 갖고 있었고, 이런 곳에 예산을 쓰는 걸 무척 아까워했다. 그저 사내방송은 전사적으로 방송할 수 있는 시설만 갖추고 있다가 필요할 때 전달사항만 잠깐 전하면 되지, 무슨 전담직원이 세 명이나 필요하며, 무슨 쓸데없는 프로그램은 그리 많으냐는 것이었다.
우리의 목표는 오디오 방송을 넘어 비디오 방송까지 확장하는 것이었고 회사에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 주요 기구가 되는 것이었기에 당연히 C이사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사와 대리, 사원 나부랭이는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그 친구들은 튜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가면서까지 방송의 중요성을 고수한 결과, 힘들었지만 방송국을 꿋꿋이 지킬 수 있었다.
4년이 지나 나는 담당 업무를 CEO speech writer로 옮기게 되었다. 방송 총괄을 L후배에게 맡기고 내 후임은 사내공모를 통해 똘똘하고 잘생긴 J사원을 새로 뽑았다. 그 이후 회사의 사내 방송국은 역시 잘생긴 또다른 J사원에게로 이어지며 비디오 화면을 송출했고, 디지털로 업그레이드되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사족 한마디.
역대 방송을 했던 잘생긴(?) 후배들과 모두 한자리에 모여 회식을 할 때, 내가 후배들에게 한마디 했다.
“우린 너희들처럼 얼굴에 기대서 방송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고, 오로지 열정과 실력으로 승부했다.”
그러자 L후배가 하는 말. “형, 저는 이 친구들 쪽인 것 같은데…”
(이미지 : Pixabay, 소장 사진)
ABBA - I Have A Dream (Official Lyric Video)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I have a dream (sung by ABBA)
I have a dream
나는 꿈이 있어요
I have a dream, a song to sing
나는 노래할 수 있는 꿈이 있어요.
To help me cope with anything
어느 것이라도 대항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는 것이지요
If you see the wonder of a fairy tale
만약 당신이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기적을 보게 된다면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당신이 실패하더라도 미래를 잡을 수 있어요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를 믿어요
Something good in everything I see
내가 보는 모든 것에서 좋은 어떤 것을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를 믿어요
When I know the time is right for me
나를 위한 시간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I'll cross the stream - I have a dream
나는 강을 건널 거예요, 나는 꿈이 있어요
I have a dream, a fantasy
나는 환상적인 꿈이 있어요
To help me through reality
현실을 헤쳐나갈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And my destination makes it worth the while
그리고 나의 목적지는 그동안을 더 가치 있게 만들지요
Pushing through the darkness still another mile
여전히 또 다른 거리를 위해 어둠으로부터 날 밀어내지요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를 믿어요
Something good in everything I see
내가 보는 모든 것들은 좋은 것들이니까요
I believe in angels
나는 천사를 믿어요
When I know the time is right for me
내가 나를 위한 시간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I'll cross the stream - I have a dream
나는 강을 건널 거예요, 나는 꿈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