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에필로그 - 라일락과 첫사랑

내 젊음의 배경음악 29.

by 들꽃연인

I.

어느 봄날, 따스해지기 시작한 캠퍼스에는 라일락이 만발했고, 그 향기가 가득했습니다.

교내 방송의 스피커에서는 윤형주 가수님이 불러 유행하던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곡이 흐르고 있었지요. ‘웃음 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없는 웃음이~~, 라일락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지~~’ 이런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이 곡의 히트로 롯데제과에서 라일락껌이라는 신상품이 나왔고, 그 CM송도 역시 윤형주님이 불렀습니다. ‘라일락 첫사랑 맺어준 못 잊을 향기, 라일락~~ 롯데 라일락껌, 라일락~~’ 이런 가사였습니다. 이 두 곡의 영향으로 라일락은 교정과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꽃이 되었지요.


친구 O군과 함께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교정을 걷고 있던 제게 문득 친구가 물었습니다.


너 라일락 꽃잎 먹어봤니?

아니, 맛이 어떤데?

햐아… 안 먹어 봤구나. 첫사랑의 맛이 나는데…

정말?


친구는 바로 라일락 꽃잎을 두 개 따오더니 옷에 쓱쓱 닦아서 하나는 자기 입에 넣고, 또 하나는 제게 주어, 아무 생각 없이 씹었습니다. 그리고 전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쓴맛은 처음 느껴보았지요. 제가 쩔쩔매자 친구는 먹는 시늉만 한 라일락 꽃잎을 입에서 꺼내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첫사랑은 원래 다 쓴 거야…


젊은 시절은 아름답습니다. 친구와 따스한 봄빛과 라일락 향이 가득한 캠퍼스에서의 장난도 아름답고, 첫사랑의 쓰디쓴 추억도 아름답습니다.

(이미지 : Pixabay)

II.

이 글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24년, 김민기님의 별세가 계기였습니다. 그 소식은 그의 노래들과 함께 만들어져 온 저의 소중한 기억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준비하다 보니, 생각이 확장되어 다른 노래와도 연결된 기억들이 떠올랐지요. 그 추억의 편린들을 맞추어 본 것이 이 연재였습니다.


쓰고 나서 보니 제 자서전의 1/3 정도를 쓴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처럼 모든 내용이 팩트라는 자신은 없습니다. 일부러 픽션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세월의 흐름은 제 기억을 과장하거나 혼합하거나 왜곡시켰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밤에는 기억과 관련된 곡을 틀어놓고 글을 쓰다가 감정이 복받쳐 노트북을 덮고 한참을 울기도 했습니다.


연재를 하는 동안에는 오랫동안 서로 연락이 없었던 선, 후배들로부터 연락이 오는 반가운 일도 있었습니다. 또 연재 중간에 출판사에서 책 출간에 대한 의향을 물어오는 메일도 있어 잠깐 저를 들뜨게 했으나, 읽어보니 자비량 출간을 하자는 것이어서 씁쓰레하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고 재미있어해 주시고 좋아해 주신 독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III.

‘내 젊음의 배경음악' 연재는 이 글로써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설 연휴를 보낸 후 2월22일부터, 다음 연재인 ‘들꽃의 마지막 여행’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기행문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한 편은 일반적인 기행문 형식으로 쓰고, 다음 편은 그날 여행에 대한 제 생각이나, 특정 사안이나 장소에 대한 보충 설명, 주로 실수였던 에피소드 등으로 구성할 계획입니다.

(오스트리아 여행 중 찍은 빈 벨베데레 궁전의 모습)

기행문의 대상 지역은 오스트리아, 돌로미티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 등입니다. 3년 전 여행이어서 정보로서의 가치는 적겠지만, 느낌과 생각을 공유하는 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 연재에도 많은 관심과 열람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 윤형주 - YouTube (← 이곳을 누르면 해당곡이 재생됩니다. 유튜브 링크입니다.)


우리들의 이야기

윤형주 작사, 작곡, 노래


웃음짓는 커다란 두 눈동자 긴 머리에 말 없는 웃음이

라일락 꽃 향기 흩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오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비가 좋아 빗속을 거닐었고 눈이 좋아 눈길을 걸었오

사람없는 찻집에 마주앉아 밤 늦도록 낙서도 했었오

밤 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 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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