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예술사 수업

by 고승환

그는 남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매끈한 직물은 빛바래지 않아 새것처럼 보였고 팔꿈치에 덧대어진 밝은 갈색의 가죽은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났지만 결코 닳지 않은 채, 단단히 그 자리를 지켰다. 마치 닳아야 할 시간을 되돌려 낡음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지켜낸 물건처럼. 시간이 그를 지나갔으되 그 흔적은 오히려 반짝이는 이물감을 남겼다. 닳음과 빛남이 하나로 얽힌 남색 맨투맨은 그 자체로 어떤 상징 같았다. 보통의 물건이 흠을 품고 낡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흠이 그 자체로 힘을 가질 때의 모순적인 아름다움.


그가 팔을 들 때마다 가죽에서 나지 않을 소리가 귓가를 메웠다. 들리지 않는 기척이 더 선명히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팔꿈치 아래로 드러난 희끗한 손목 위로 서늘하게 빛나는 푸른 동맥은 오래된 상처 위를 지나는 시간의 강처럼 흘렀다. 그 강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증명하고 있었다. 상처의 궤적마다 가늘게 이어진 생명선과 그 위를 맴도는 약간의 흐린 빛. 나는 그에게서 단순한 생명력도 물리적 강함도 아닌 오래도록 쌓여야만 얻어질 수 있는 무게감을 느꼈다. 그것은 닳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겹겹의 층위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존재의 밀도였다.


그는 예술사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바로크의 대리석과 빛, 그 빛의 조화와 불균형을 꿰뚫어 보듯 천천히 설명했다. 그의 말속에서 나는 바로크의 시간, 그 과도하고도 장엄한 숨결을 들을 수 있었다.


❝빛은 대리석을 통과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리석 위에서 자신을 증폭시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 순간 나는 그의 팔목의 동맥이 대리석의 무늬 같다고 생각했다. 그의 몸짓은 대리석처럼 단단했고 말의 끝맺음은 빛처럼 번졌다. 바로크라는 단어 하나가 그의 목소리로부터 천천히 퍼져 나왔고 그 순간 그는 단순한 강연자가 아니었다. 그는 그 자체로 바로크였다. 과도한 무게와 섬세함, 정교한 균형 속에 숨은 불균형. 그의 움직임과 말투, 호흡의 사이에서 바로크의 속성을 보았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어떤 조각품처럼 순간 속에 완벽히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통해 빛과 대리석을 넘어서 바로크가 숨겨둔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질감이었다. 그의 말은 대리석을 손으로 문질러볼 때 느껴질 법한 감각을 내게 전달했다. 그의 어휘는 결코 부드럽지 않았으나 그 안에 선명히 빛나는 생의 단단한 질감이 있었다. 그는 가끔씩 침묵했다. 그 순간들은 그의 말보다 더 긴 여운을 남겼다. 그의 침묵은 대리석에 남은 섬세한 균열처럼 존재했고 나는 그 틈을 들여다보며 그가 말하지 않은 세계를 상상했다. 손끝에서 울리는 떨림은 바로크 건축의 천장에 남겨진 그림자 같았다. 바로크의 빛과 그늘이 손짓 하나에 얽혀 있었다.


그러다 그가 문득 나를 보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 단순히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꿰뚫고 내가 가진 어떤 결핍을 알아차리는 듯했다. 눈빛 속에서 나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어두운 부분을 보았다. 단순히 따스하거나 차가운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은 호수 같았다. 나는 그의 시선 안에서 나 자신을 비추어 보려 애썼다. 그의 시선이 내 안에 만들어 낸 수은의 고요한 결을 느끼며 그가 가진 내밀한 깊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 그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읽으려 했다. 나는 움츠러들었다. 마치 그가 나를 꿰뚫는 순간 나의 일부가 그의 세계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지며 나는 그의 내면 어딘가로 더 깊이 다가가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단순히 강연을 넘어선 생경한 떨림으로 전해졌다. 그 떨림은 바로크 작품의 잉여와 장엄함을 넘어 그가 숨기고 있는 시간의 울림처럼 느껴졌다.


그는 가끔 걸음을 멈췄다. 교실을 가로지르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의 움직임 속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애썼다. 무언가를 짊어진 듯한 그의 걸음은 결코 가벼운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그 짐을 나눌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교실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그가 교실을 떠나는 순간 그의 뒷모습은 말없는 언어처럼 내게 남았다. 그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자리를 비우는 장면이 아니었다. 그의 발걸음이 남긴 공기는 여전히 떨렸고 그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빛처럼 내 안에 스며들었다. 그의 흔적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흥분과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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