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으나 슬프진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다. 수요일 아침, 전화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 잠옷과 충전기만 챙겨 터미널로 나섰다. 오랜만에 구두를 신은 탓인지 지하철역까지 걷는 길에 벌써 발이 아려왔다. 오후 차를 타고 강원도로 향하며 그 주의 약속들을 모조리 취소했다. 달리는 버스 창밖으로 무심히 흘러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죽음을 실감했다. 죽음을 마주하러 가는 길, 나는 이 길을 달리는 버스가 영원히 도착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의 사진 앞엔 흰 국화가 가득 놓여 있었다. 빈소에 들어서 절을 올리는데 두 번째 절을 하며 울컥하는 마음에 잠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엄마가 알려주는 대로 향을 피운 뒤 빈소 옆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할머니가 계셨다. 다음엔 언제 오냐, 언제 오냐 버릇처럼 물었는데 이제 영 못 보게 되었네. 어절마다 울음이 맺혀 끝을 흐리며 할머니가 말했다. 대답을 하면 울 것만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리워하는 사람은 내가 된 것 같았다. 차례가 돌아오듯이 말이다.
준비된 상복으로 갈아입고 빈소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장례식에 몇 번 참석한 적은 있었지만 너무 어렸거나 큰 추억이 없는 이들의 장례였다. 죽음을 실감하며 애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복을 입고 팔뚝에는 완장을 두르고 그가 가는 모든 길을 배웅했다.
조문객이 없는 한산한 낮에는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자 거실 티브이 앞에 그의 휴대폰이 놓여 있었고 뒤에는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사용하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보고 그가 항상 앉아있던 소파에 앉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던 욕실의 작은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처음 느껴보는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몰라 거실을 돌며 발을 굴렀다. 바쁘다며 매번 거짓말로 미뤘던 입에 침과 눈물이 고름처럼 맺히고 미처 말하지 못한 말들은 입안에 쓰게 고였다.
오후부터 조문객을 받기 위해 다시 식장으로 향했다. 그곳에 손주들은 나를 포함해 열두 명 모였다. 우리는 조문객이 오면 음식을 나르고 상을 치웠다. 조문객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일은 바빴다. 그 와중에 잠시라도 그를 잊고 슬픔을 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문득 기둥 너머로 영정이 보일 때마다 나는 말 못하는 아이처럼 가만히 빈소를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식장 안으로 조문객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다. 식장 한 구석에선 등산 자켓을 입은 노인들이 불콰해진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그 옆에선 친지들이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아찔하게 쌓아놓은 쟁반들 뒤로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한쪽 모퉁이의 대형 에어컨은 웅웅 거리며 찬바람이 보내고 있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누군가 찾아온데도 안개에 가려 결코 못 알아볼 것 같은 밤. 수백 명이 왕왕거리는 식장에서 모두 소리 높여 떠드는 가운데 아무 말도 않는 사람은 고모와 나 둘 뿐이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영화 『헤어질 결심』(2022) 中
나는 파도처럼 덮쳐오는 사람이었다. 친척들과 어울려 무심한 농담을 주고받다가도 문득 파도가 몰려오면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두 번 다시 번복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발인 전날 밤, 집으로 걸어가던 길에 문득 떠올랐다. 내가 할아버지와 나란히 누워 잠든 적이 있었던가.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보냈지만 한 번도 그와 어깨를 맞대고 잠든 적은 없었다. 내일이면 그와 함께 누울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이불과 베개를 챙겨 다시 식장으로 향했다. 밤공기가 차가웠던가, 몸이 떨렸던 것 같다.
식장의 불은 꺼져 있었고 몇몇 이들이 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빈소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옆으로 누워 영정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얼굴을 씻고 사진을 보지 않으려 안경을 벗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두 장의 휴지를 눈가에 받치고,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잠에들 수 있었다.
발인 아침은 피곤했다. 전날 밤을 꼴딱 새우고 일어나려니 몸이 천근 같았다. 하지만 빈소에서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할아버지의 영정과 흰 국화는 나를 다시 깨웠다. 슬픔이 밀려오자 피로는 금세 잊혔다. 마지막으로 식장에서 내어준 불고기와 육개장을 입에 넣고 발인 준비를 했다. 거울 속 내 눈은 붉게 충열되어 부어 있었고 두 시간밖에 못 자서인지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 눈으로 친척들을 마주하려니 슬픔을 내비치는 것 같아 괜스레 부끄러웠다.
장례지도사가 가장 큰손주가 영정을 모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아빠와 고모는 나에게 눈짓했지만 나는 손주 중 여덟 번째라 예에 어긋날까 싶어 쉽게 나서지 못했다. 결국 장례지도사의 권유에 따라 둘째 손주가 영정을 모시기로 했다. 식장 입구에서 우리는 긴 행렬을 만들었다. 영정과 위패를 든 첫째와 둘째 손주가 맨 앞에 섰고 그 뒤로 항렬에 따라 서서 나아갔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걷고 싶어 맨 뒤에 섰다. 발인 장소로 향하는 버스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어제 조문을 다녀갔던 이들이 길에 서서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버스에 관을 싣고 나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제천의 화장터까지는 40분 남짓 걸린다고 했다. 발 아래에 그를 두고 있다는 게 영 어색했다.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바퀴 소리가 야속했다.
화장장에 들어서자 좁은 추모실로 안내되었다. 한쪽 벽을 채운 통유리 너머로, 누군가 할아버지의 관을 조심스럽게 모시는 모습이 보였다. 곧이어 불꽃이 일렁이며 유리창의 블라인드가 천천히 내려왔다. 나는 그곳에서 울음이 터졌고 소리 내어 흐느끼는 할머니를 처음 보았다. 가족들은 유족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향했지만 나는 홀로 추모실로 돌아갔다.
뜻밖에도 추모실에는 고모가 앉아 있었다. 뜻밖이라는 게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그곳에 고모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지 고모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아니다. 블라인드가 내려져 답답한 공간이었지만, 고모와 나는 사진 속 할아버지의 얼굴이 너무 무표정하다, 사진이 너무 작은 것 아니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 시간 반 동안 우리는 할아버지와의 소소한 기억들을 꺼내놓고 할머니에게 더 잘하자며 마음을 모았다. 화장이 끝날 즈음 장례지도사가 우리를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게 했다. 할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유골함에 담겼고 우리는 장지로 향했다.
장지는 영월의 선산이었다. 유골함을 땅에 묻고 흙을 덮었다. 흙을 다지는 발걸음이 차가운 공기 속에 메아리쳤다. 누군가 농담을 던질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삼키고 싶었다. 다져진 흙 위로 대리석 현판이 놓이고, 모든 식이 끝났다. 우리는 돗자리에 앉아 마지못해 나누지 못한 이야기와 술잔을 주고받았다. 마지막으로 차가운 대리석 위에 물었다.
어디로 가셨나요?
쪼그려 앉은 할머니와 고모의 정수리 위로 양산을 덮었다. 더 이상 슬프지도 그립지도 않았다. 나는 서지도 앉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로 산 아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손에 든 양산은 가늘게 떨렸고, 이름 모를 나무들이 바람을 따라 신성하고 아름답게 흔들렸다.**
김애란. 「건너편」『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