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다. 캄캄한 불면의 밤이다. 캄캄한 밤에는 의미의 스펙트럼이 넓다고 하지만 캄캄한 눈동자에는 단 두 가지의 의미만 있다고 한다. 하나는 환영幻影이고 다른 하나는 메아리다. 잠에 들지 못하는 밤보다 어설픈 설잠에서 깨어난 때가 더 힘들다. 오늘이 그날이다. 정신이 잠깐 멀쩡하면 노트북을 펼쳐든다. 글을 쓴다. 그러나 몰려오는 피로가 무색하게-방금 잠에서 깼으므로-잠에 다시 들지 못할 때에는 이대로 한 십 년쯤 누워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모든 생각을 미뤄두고 쉽게 꿈꾸는 죄도 벗어던지고 깊이깊이 한 시대를 잠들었으면. 그러나 언젠가 깨어나 다시 시작해야할 때의 황량함. 아아 너무 늦게야 깨어났구나 하는 막심한 후회감이 나를 다시 잠들지 못하게 한다.
진짜 잠이 오지 않아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이 밤이 다른 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네가 잠든 사이 내가 너와 수다를 떨고 있기 때문이다. 나 덕분에 무언가를 놓아주는 능력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놓아주는 능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든 쉽게 놓아주게 되었다는 것인지 아니면 놓아주어야 할 것을 기꺼이 놓아줄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전자라면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후자라면 나름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너에게 그런 것을 줬다고?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에게, 조국에게, 인류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그토록 무거운 말을 자신에게 쓰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저의 사춘기 시절에게도 감사합니다.
나의 사춘기! 니체는 젊어서 샤워실에서 외쳤다고 한다. 나의 젊음! 이미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노라 지껄이면서 얼마나 많은 말을 허비했는지. 니체는 감히 신을 죽이고도 한낯 젊음에 매달렸다. 때문에 니체는 말년에 미쳐버리고 말았지. 그가 총을 들었다면 방아쇠는 문장이고 총구는 아마도 은유였을 것이다. 탄환은 침묵 피탄은 신의 자리. 신이 죽었다는 문장을 접었다 펴 보라. 주름 사이로 신 없이 남은 공백이 새어나온다. 저주와 축복을 전복하는 시. 내게 향했던 총구를 뒤바꾸는 시. 그런게 있을까? 그런게 있다면 감히 영혼을 받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시의 일은 그 뒤집힘을 보존하는 일. 뒤집힌 얼굴이 정면이라는 사실을 견디는 일.
그러니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에게 의지하는 대신 술을 선택하지 마.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듣기가 두렵다. 전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생명을 단축시켜선 안된다. 삶을 살아야 한다. 삶을 살으라는 말은 바다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치라고 소리치는 꼴. 그렇지만 삶은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신이시여,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신실하게 믿는 신의 이름으로 조금만 마시길.
어둠이 더 깊어졌다. 나는 고통 없는 슬픔에 빠진다. 기분 나쁜 감정은 아니다. 그냥 그런 것일 뿐. 내일도 분명 커다란 흥분 없이 오직 기쁨만이 몰려올 것이고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 고통과 슬픔, 흥분과 기쁨. 한쪽에는 꿈을, 한쪽에는 배고픔을 올려두었으니 기울지 않는다는 말이 이미 거짓이라는 것을 모두 알면서도 나는 언뜻 너의 객기 같은 음성에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 있었다. 나는 (실패했지만) 주머니 속 동전의 무게가 어쩐지 더 정직하다고 믿으려 했다. 동전의 양면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꿈과 배고픔. 꿈의 배고픔 혹은 배고픔의 꿈 같은 것. 진정으로 훌륭한 예술(의 꿈)이라면 어쩌면 어떤 배고픔 아니면 그것의 다른 얼굴인 어떤 꿈(의 예술)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 아닐까.
네 저울은 분명 빈 주머니인데 너는 그것이 마치 모든 대답을 품고 있는 것처럼 교차로 중앙에 저울을 놓는다. 저울에 올라가는 꿈. 장면이 구토하는 꿈. 플롯을 휘둘러라! 아직 발단일 수도 있어. 그러면 이건 위기가 아니지. 이미 절정일 수도 있어. 그러면 위기는 넘긴 셈. 여기가 위기라면 균형을 고른들 저울도 녹슬 테니 나는 차라리 삐딱하게 기운 길 위에서 쓰러져도 좋은 쪽을 고르겠다. 나는 이 시시한 삶과 맺는 조약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 수다를 멈추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갈 것이다. 마당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도로의 끄트머리와 옥수수밭을 볼 것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거나 즐기고 있을 것이다. 몇몇은 위스키를 마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커피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캄캄하다. 칠흑 같은 암흑이다. 메아리인 것 같기도 하고 환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너의 그 눈동자는 환영이었나 메아리였나.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네가 하지 않은 말들을 지어내느라 나 혼자 이만치 왔으니 말이다.
*과거의 독서 경험에서 비롯된 표현이 발견되어 확인 가능한 범위의 인용은 각주로 명시하였으나 누락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의도된 표절이 아닙니다. *이 글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습니다. *인용된 작품: 클라리시 리스펙토르(Clarice Lispector).「당신이 잠든 사이에」, 「쓸모 있다고 느끼기」, 「난해한?」, 『세상의 발견』 (봄날의책, 2024:서울) | 최승자.「다시 젊음이라는 열차를」,「배고픔과 꿈」,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난다, 2021:서울) | 박참새.「젊고 우울한 시」,「내가 무너질 날」, 『정신 머리』, 『정신 머리』 작품 소개 (민음사, 2023:서울) | 조온윤.「균형 감각」, 『자꾸만 꿈만 꾸자』(문학동네, 2025:서울) | 유수연.「소양강 소로우」,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문학동네, 2024: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