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석회칠이 된 천장에 낮게 깔린 하늘을 보았다. 꽉 막힌 답답함 때문에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다. 방의 내부에서 텅 빈 공허의 그물에 사로잡힌 나는 다시금 내 계획을 잊었고 어디서부터 정리를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방은 시작이라고 부를 만한 지점이 없었고 끝이라고 생각할 만한 지점 역시 없었다. 그것은 오직 한결같은 형체로 이루어졌고 그래서 무한했다.
막강한 공허에 대항해 안간힘을 쓰던 나는 그냥 이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좁다란 옷장을 살피다가 위를 향했고 창문의 틈새에 잠깐 오래 머물렀다. 이러다보면 나는 이 무한의 내부에서 이따금 하나의 경계에 기대어 서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느끼곤 한다.
정리의 행위란 곧 지시와 구획일 터. 하지만 여기선 어느 것도 다른 것보다 앞설 수 없고 어느 것도 뒤처지지 않는다. 방은 나를 시험하고 있다. 사실 시험이라는 말조차 부적절한가? 시험에는 돌파구가 전제되기 마련이지만 이곳에는 돌파구 같은 것은 없다. 어떠면 정리 그 자체보다 정리의 불가능성을 사유하는 게 옳을 수도 있다. 벽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호한 표면. 바닥이라 부를 수 있는 불분명한 지지대. 실체라기보다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강제로 부여된 분절일 뿐이라는 비장한 수긍.
이 불안은 때때로 나의 목을 조른다. 불안,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유의 어지럼증. 벽에 붙은 포스터 속 남자가 담배를 내뿜으며 죽는 수도 있어, 죽는 방법도 있어라고 말한다. 죽임을 당하는 방법도 있다고 그는 말하지만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는다. 산다는 일, 산다는 이 수수께끼로 물불 안 가리고 괴로워했던 그와 나. 그러면 불안이 한 번 더 거세게 나의 목을 조른다. 이러고 누워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당장 바람 부는 거리로 나가 정처 없이 쏘다녀야만 할 것 같은 느낌. 그러나 나는 내 목을 조르는 불안의 모가지를 한 손으로 비틀어 쥔 채 여전히 누워 있기만 한다. 눕는다는 건 항복이 아니라 잠정적 망명이다. 적막으로 가득 찬 나의 망명지. 나는 고의로 숨을 더 크게 들이마신다. 가슴벽이 부풀릴 때 불안은 잠시 헛걸음질 친다.
나는 조금 몸을 틀어 옆으로 눕는다. 벽에 걸린 포스터 속 남자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며 나를 응시한다. 그는 불안의 대변인이기도 하고 불안의 몸종이기도 하다. 그 눈빛 속에서 나의 지난 그림자를 본다. 밤을 새워 쓸데없는 후회에 빠지던 시절. 문장 하나를 쓰고 지우며 나 자신을 문장의 사고에다 찢어 넣던 시절. 그때의 나도 똑같이 죽는 법을 궁리하며 살아가는 법을 맹세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