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약, 권력의 나무

주목(2) 주목 속(Taxus)의 세계사

by 김트리

image.png The Lytchet Matravers Yew (Taxus baccata) 출처 : https://www.sciencephoto.com/

주목은 늘 세계사의 변두리에 서 있었지만, 한 번도 사소한 존재였던 적은 없다.
이 나무는 전쟁과 권력, 죽음과 치료, 신성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같은 평가를 받아왔다. 불길한 나무, 위험한 나무. 그러나 이는 주목의 본질이라기보다, 인간이 이 나무를 대면하며 느낀 감정의 축적에 가깝다.

주목 속(Taxus)은 북반구 전역에 흩어져 분포한다.
유럽 전역의 교회 묘지에 남아 있는 유럽주목(Taxus baccata), 한반도와 일본의 고산 숲과 사찰·궁궐에 남아 있는 주목(Taxus cuspidata), 북미 태평양 연안 침엽수림의 하층에서 자라던 태평양주목(Taxus brevifolia). 분포는 넓지만 개체는 드물고, 숲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주목은 늘 주변부의 나무였다.


빙하기를 건너온 잔존종의 시간


주목 속은 진화적으로 매우 오래된 계통에 속한다.
식물학적으로 주목 속의 기원은 신생대 제3기(Tertiary, 약 6600만 년 전부터 260만 년 전 사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이후 지구는 반복적인 빙기와 간빙기를 겪었고, 많은 수종들이 멸종하거나 분포지를 급격히 바꾸었다.

주목은 이 격변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숲의 중심에서 물러나 고산, 음지, 교란이 잦은 환경으로 이동하며 살아남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주목 속은 흔히 잔존종(relict species)으로 분류된다. 잔존종은 과거의 흔적이 남은 화석이 아니라, 가장 가혹한 환경 선택을 통과한 생존자다.

주목의 생태는 이 긴 시간의 압축이다.
성장은 극도로 느리고, 연륜은 촘촘하며, 대사율은 낮다. 줄기 내부가 공동화되어 속이 비어도 외피와 형성층만 살아 있으면 수백 년을 더 산다. 숲이 무너지고, 빙하가 덮치고, 인간의 손이 닿아도 주목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더 조용한 자리로 물러날 뿐이다.


‘죽음의 나무’가 된 화학적 이유


유럽에서 주목이 오랫동안 ‘죽음의 나무’로 인식된 데에는 분명한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
주목 속 식물의 잎·껍질·씨에는 택신(taxine)이라 불리는 강한 알칼로이드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이 성분은 심장 박동과 신경계를 교란해 사람과 가축 모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단 하나의 예외는 붉은 열매처럼 보이는 가종피(aril)로, 이 부분만은 독성이 거의 없다.

이 독성 때문에 주목은 초식동물이 접근하지 않는 나무가 되었고, 동시에 가축 울타리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유럽 농촌에서 울타리로 흔히 사용된 산사나무나 느릅나무와 달리, 주목은 오히려 가축을 죽일 위험이 있는 나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위험성 때문에 주목은 공동묘지와 교회 주변에 심기 적합한 나무가 되었다. 사람이 드나들되, 가축은 접근하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주목이 상징한 죽음은 미신이 아니라, 화학과 생태의 결과였다.


KakaoTalk_20260224_073807463.jpg 청와대 주목. 김트리

독에서 태어난 약


20세기 후반, 주목에 대한 인식은 다시 한번 뒤집힌다.
북미 서부의 태평양주목(Taxus brevifolia) 껍질에서 항암 물질 파클리탁셀(paclitaxel)이 발견되면서다. 이 성분은 암세포의 미세소관 형성을 억제해 세포 분열을 차단하며, 이후 택솔(Taxol)이라는 이름의 항암제로 개발되었다.

택솔은 난소암, 유방암, 폐암 등 다양한 암 치료에 사용되었고, 지금도 임상 현장에서 쓰이고 있다. 다만 초기에는 약을 얻기 위해 주목 나무를 대량으로 벌채해야 했고, 이로 인해 태평양주목 개체군이 급격히 줄어드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반합성 방식과 배양 기술이 도입되며 대량 벌채는 줄었지만, 이 사건은 주목의 생태와 인간 의학이 충돌한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주목의 몸 안에서 독과 약은 분리되지 않는다.
방어를 위해 진화한 화학 물질이, 인간에게는 치유가 되었다. 삶과 죽음은 같은 조직에서 나온다.


권력의 시간과 함께 심어진 나무


동아시아에서 주목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 곁에 자리했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주목(Taxus cuspidata)은 고산 숲뿐 아니라 사찰, 왕릉, 궁궐의 후원에 남아 있다. 이 공간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모두 오랜 시간이 축적되는 장소다.

주목은 단기간의 미관을 위해 심는 나무가 아니다.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이후를 전제로 한 선택이다. 그래서 주목은 늘 권력의 공간에 등장했다. 왕조는 자신의 지속성을 꿈꾸었고, 주목은 그 바람을 가장 조용하게 상징하는 식물이었다.

그러나 주목은 권력의 중심에 서지 않는다.
늘 그늘에 있고, 장식이 아니라 배경으로 남는다. 권력이 무너질 때도 주목은 함께 무너지지 않는다. 단지 다음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주목이 선택한 삶의 방식


주목 속(Taxus)의 세계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 나무들이 공통적으로 선택한 생존 전략은 분명해진다.
빠르게 번성하지 않고, 눈에 띄지 않으며, 경쟁을 피한 채 가장 오래 남는 것.

주목은 숲의 주인이 되지 않는다.
양지에서 다른 종을 밀어내지도 않고, 교란 이후 가장 먼저 치고 올라오지도 않는다. 대신 음지에서 기다리고, 속이 비어도 쓰러지지 않으며, 독성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는 열세가 아니라 명확한 전략이다. 주목은 ‘성공하는 종’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종’이다.

이 전략은 주목 속 전체에서 반복된다.
유럽주목(Taxus baccata)은 공동묘지와 교회 주변에서 수백 년을 버텼고, 동아시아의 주목(Taxus cuspidata)은 고산과 궁궐의 그늘에서 천천히 몸집을 키웠으며, 태평양주목(Taxus brevifolia)은 숲의 하층에서 조용히 살아남았다. 분포는 달라도 선택은 같다.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 속도가 아니라 지속성이다.

주목의 긴 생은 기적이 아니다.
낮은 대사율, 느린 생장, 공동화에도 유지되는 구조, 음지 적응, 화학적 방어. 주목은 시간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숲의 역사는 대체로 빠른 종들이 쓰고,
숲의 기억은 이런 느린 종들이 남긴다.
주목은 그 기억 쪽에 속한 나무다.

주목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숲이 어떻게 오래 유지되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Leonard Cohen – You Want It Darker

“If you are the dealer, I’m out of the game.”
“Hineni, I’m ready, my Lord.”


■ 용어정리
주목속(Taxus)
주목과에 속하는 침엽 상록 교목·관목의 속. 북반구 전역에 분포하며 대부분 느린 생장과 강한 독성을 지닌다.
잔존종(relict species)
과거에는 넓게 분포했으나 기후 변화나 환경 교란 이후 일부 지역에만 남아 살아가는 종. 퇴화가 아니라 생존의 결과로 이해된다.
신생대 제3기(Tertiary)
약 6600만 년 전부터 260만 년 전까지의 지질 시대. 이후 반복된 빙하기를 거치며 많은 식물 분포가 재편되었다.
택신(taxine)
주목속 식물의 잎·껍질·씨에 존재하는 알칼로이드 독성 물질. 심장 및 신경계에 치명적이며 발효·가열로도 분해되지 않는다.
가종피(aril)
주목 열매처럼 보이는 붉은 살 부분. 씨를 둘러싸는 구조로, 주목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성이 없다.
파클리탁셀(paclitaxel)
태평양주목에서 발견된 항암 성분. 암세포의 분열을 억제하며, 항암제 택솔(Taxol)의 주성분이다.
공동화(hollowing)
노거수에서 줄기 내부가 썩어 비어 있는 상태. 주목은 외피와 형성층이 살아 있으면 공동화 상태에서도 장기간 생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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