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계통 속 가장 현대적인 생물

목련(3) 대륙을 건넌 나무, 인간을 비추는 꽃

by 김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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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2) 원시적이라는 말에서 이어짐

목련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가 말하는 것은 사실 하나의 나무가 아닙니다. 한국 산지에서 자라는 목련(Magnolia kobus)이 있고, 숲 안 그늘에서 조금 늦게 피는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가 있으며, 중국 원산의 백목련(Magnolia denudata)이 있고, 북미 남부의 상록 목련(Magnolia grandiflora)도 있습니다. 모두 같은 목련속(Magnolia)에 속하지만, 저마다 다른 기후와 숲, 다른 계절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아 왔습니다. 같은 속이라는 말이 곧 같은 삶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한국 산지의 목련(Magnolia kobus)은 숲 가장자리나 교란 뒤 열린 공간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잎보다 꽃을 먼저 올리는 전략은 상층 수관이 다시 닫히기 전에, 짧게 열리는 빛의 시간을 먼저 차지하는 방식입니다. 초봄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흰 꽃이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생태의 언어로 읽으면 그것은 시간 경쟁에 가깝습니다. 숲이 다시 그늘을 드리우기 전에 번식을 마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는 조금 다릅니다. 안정된 숲 안, 완전한 양지보다는 반쯤 그늘진 자리에서 5월 이후 꽃을 엽니다. 꽃은 아래를 향하고, 중심에는 붉은 수술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아래보기의 자세는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빗물이 안으로 곧장 들이치는 것을 줄이고, 꽃가루를 비교적 안전하게 지키는 데 유리합니다. 숲이 자주 무너지는 곳보다 이미 성숙한 숲 속에서 오래 버티는 쪽에 가까운 선택입니다.

제주의 상록성 목련류(Michelia compressa, 현재는 Magnolia compressa로 통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는 또 다른 방향을 보여 줍니다. 이들은 난대 상록활엽수림에서 자라고,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두껍고 단단한 잎은 수분 손실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계통은 추위를 견디는 방향보다, 덥고 습한 환경을 버티는 방향으로 더 멀리 나아간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image.png 함박꽃나


image.png https://en-gb.topographic-map.com/map-hpqzs/Asia/?center=47.7541%2C188.25833

동아시아와 북미를 잇는 시간의 축

목련속의 분포를 지도 위에 그려 보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납니다.
한반도 동해안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시호테알린 산맥, 캄차카 반도, 알류샨 열도, 알래스카로 이어지는 고위도 띠가 있고, 그 아래로는 북미 서부의 캐스케이드 산맥과 로키산맥이 길게 남북으로 내려갑니다. 더 아래로 시선을 옮기면 멕시코 산지와 중앙아메리카, 일부 계통은 안데스 북부에까지 닿습니다.

이 선은 오늘날 ‘환태평양 화산대’라 불리는 지질학적 구조와도 겹칩니다. 그러나 식물의 시간은 현재의 지도보다 더 오래되고 느립니다. 지도를 거꾸로 펼치듯 시간까지 함께 뒤집어 보면, 지금은 바다와 빙설과 대륙으로 끊겨 보이는 이 선이 한때는 생물 이동의 길이었다는 사실이 보입니다.

시간을 약 1억 년 전, 백악기 후반으로 되돌려 보겠습니다. 그때 북반구는 지금처럼 완전히 갈라진 대륙들의 집합이 아니었습니다. 북미와 유라시아는 고위도에서 이어져 있었고, 베링 육교는 단지 빙하기에 잠시 드러나는 통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생물들이 오갈 수 있던 회랑이었습니다. 그 회랑을 따라 고위도의 낙엽활엽수림이 넓게 퍼져 있었고, 초기 목련류 역시 그 숲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후 약 6천만 년 전에서 3천만 년 전 사이, 신생대에 들어서면서 대륙은 조금씩 멀어지고, 지구는 서서히 식어 갑니다. 그 변화는 식물의 분포를 조용하지만 깊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특히 약 260만 년 전 이후 반복된 제4기 빙하기 동안 고위도 지역의 활엽수림은 크게 위축됩니다. 캄차카와 알류샨, 알래스카 일대는 차가운 기후와 빙상에 덮이고, 한때 이어져 있던 숲은 곳곳에서 끊겨 나갑니다.

바로 이때 중요한 일이 벌어집니다. 동아시아와 북미 동부는 남북으로 긴 산맥과 비교적 온난한 기후 덕분에 식물들의 피난처(refugia)가 됩니다. 한반도 남부와 중국 남부, 일본 열도, 그리고 미국 남동부의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는 빙상에 완전히 덮이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북반구 식물군의 일부가 이 지역들에 남을 수 있었고, 목련속도 그 생존자 가운데 하나로 읽힙니다.

한때 환태평양의 고위도 축은 연결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빙하기를 지나면서 그 길은 단절의 흔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목련 분포는 하나의 매끈한 띠라기보다, 동아시아와 북미 동부라는 두 중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일부 안데스 북부에 존재하는 종들은 그 뒤 남쪽으로 밀려나거나 격리된 채 살아남은 후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륙을 새로 건넌 이주자라기보다, 물러나며 버텨 온 생존자에 가깝습니다.

동아시아와 북미 동부에 동시에 남아 있는 나무는 목련만이 아닙니다.
튤립나무(Liriodendron),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칠엽수(Aesculus), 그리고 단풍나무(Acer)의 일부 계통도 비슷한 분포를 보여 줍니다. 이 나무들은 태평양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마주 보며 떨어져 삽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래전에는 같은 숲의 기억을 나누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분포 패턴을 19세기 미국 식물학자 에이사 그레이(Asa Gray)는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했습니다. 훗날 ‘동아시아–북미 동부 단절(Eastern Asia–Eastern North America disjunction)’이라 불리게 된 현상입니다. 오늘의 지도에서는 멀리 떨어져 보이지만, 진화의 시간 속에서는 한때 이어져 있었던 세계의 흔적입니다.





image.png 제주의 상록성 목련류


인간의 언어 속 목련

목련은 숲 안에서만 살아온 나무가 아닙니다. 인간의 언어 속에서도 오래 살아왔습니다.

중국에서 백목련(Magnolia denudata)은 ‘옥란(玉蘭)’이라 불렸습니다. 청대 문인 원매(袁枚)는 옥란을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玉蘭花開,清香滿庭。”
“옥란이 피니, 맑은 향이 뜰을 가득 채운다.”

여기서 목련은 단순한 꽃이 아닙니다. 흰빛과 향기를 통해 절제와 기품, 맑은 품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이 꽃의 두꺼운 흰 화피와 은은하면서도 분명한 향을, 눈에 보이는 물질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덕적 분위기로 번역해 왔습니다.

일본에서도 목련은 봄의 가장자리에 서는 나무로 자주 등장합니다. 시인 다네다 산토카는 산길에서 만난 흰 꽃을 두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白い花がひとつ 山の寒さに咲いている。”
“하얀 꽃 하나, 산의 차가움 속에 피어 있다.”

벚꽃처럼 한꺼번에 피고 흩날리며 계절을 압도하는 꽃과 달리, 목련은 더 고요한 방식으로 계절의 전환을 드러냅니다. 화려한 도착이라기보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먼저 피어 있는 징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목련은 환호보다 정적, 만개보다 경계의 감각과 더 잘 어울립니다.

미국 남부에서 Magnolia grandiflora는 또 다른 의미를 얻습니다. 이 나무는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고, 때로는 남부의 풍경과 역사 전체를 압축하는 표지처럼 기능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는 『The Sound and the Fury』에서 남부의 풍경을 묘사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The magnolia tree stood in the yard, its white blossoms heavy with scent.”

향으로 무거워진 흰 꽃. 이 문장에서 목련은 단지 아름다운 식물이 아닙니다. 남부의 우아함과, 그 우아함 아래 가라앉아 있는 역사적 무게를 함께 떠안는 상징이 됩니다.

같은 속의 나무가 대륙마다 다른 문화적 의미를 얻는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그 해석의 바탕에는 공통의 물성이 있습니다. 두껍고 큰 화피, 멀리까지 감도는 향, 한눈에 붙잡히는 꽃의 존재감. 인간은 바로 그 물성을 바탕으로 상징을 만들어 왔습니다. 다시 말해 문화는 자연 위에 덧씌워진 것이면서도, 완전히 자연과 분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목련의 상징사는 꽃의 구조가 인간의 감정과 언어 속으로 번역된 역사이기도 합니다.

image.png 중국 원산의 백목련(Magnolia denudata)


“오래된 계통”의 정확한 의미

목련속을 두고 “오래된 계통”이라고 말할 때, 그 표현은 종이 과거의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 살아 있는 목련(Magnolia kobus)도,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도 다른 모든 현생 식물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지금의 환경에 적응해 온 존재입니다. 오래되었다는 것은 멈춰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차이는 계통수에서의 위치에 있습니다. 목련류는 속씨식물 진화 초기에 갈라져 나온 분지에 속합니다. 화피가 꽃받침과 꽃잎으로 또렷하게 갈라지지 않은 점, 꽃 기관이 나선형으로 배열되는 점, 단구성 꽃가루 같은 형질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흔히 ‘기저 분기 계통’에 가깝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덜 진화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존하는 종은 모두 현재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고 번식에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계통에 속한다는 말은, 변화가 없었다는 뜻도 아니고 진화 속도가 느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형질들이 다른 계통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바뀌지 않은 채, 다른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목련은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오래된 계통에 속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가장 현대적인 생물입니다. 다른 어떤 나무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기후, 토양, 병해충, 경쟁, 도시화의 압력 속에서 매년 다시 선택받고 있습니다.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설계를 지닌 채 오늘을 통과하고 있는 생물입니다.

기후변화 앞에서

이른 개화는 기후 온난화 속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평균 기온이 오르면 꽃이 피는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봄이 빨라진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늦서리는 여전히 남아 있고, 때로는 더 불규칙하게 찾아옵니다. 꽃은 먼저 열렸는데 수분자를 만나는 시간표가 어긋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너무 이르게 피는 것은 늘 선점이면서 동시에 노출입니다.

산지 숲에 의존하는 함박꽃나무(Magnolia sieboldii)는 서식지 파편화에도 취약합니다. 숲이 잘게 끊어질수록 그 안의 미세한 환경은 쉽게 흔들리고, 숲 내부종이 기대는 안정성도 약해집니다. 반면 상록 목련(Magnolia grandiflora)은 온난화에 따라 더 북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이야기됩니다. 같은 속 안에서도 누군가는 밀리고, 누군가는 확장할 수 있습니다.

한때 빙하기를 건너 살아남았던 계통이 이제는 인간 활동과 기후변동이라는 전혀 다른 압력 앞에 서 있습니다. 예전의 위기가 추위와 빙상이었다면, 지금의 위기는 속도와 단절,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낸 환경 변화입니다.

목련을 바라본다는 것은 한 송이 꽃을 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 꽃 안에는 백악기 후반부터 이어진 계통의 분기, 신생대의 기후 냉각, 빙하기의 피난처, 대륙 사이의 단절, 그리고 인간 문화가 덧씌운 상징의 층위가 함께 포개져 있습니다. 봄보다 긴 시간, 한 도시보다 넓은 대륙의 기억이 흰 꽃 속에 접혀 있습니다.


목련(4) 제도적 취향의 축적과 그 이면으로 이어짐


■ 용어와 인물

기저 분기 계통 (basal lineage)
속씨식물 계통수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갈라져 나온 집단을 가리킵니다. ‘덜 진화했다’는 뜻이 아니라, 초기 형질을 비교적 많이 보존한 분기라는 의미입니다.

잔존 분포 (relict distribution)
과거에는 더 넓게 퍼져 있었지만, 기후 변화나 대륙 이동 등을 거치며 일부 지역에만 남게 된 분포 형태입니다. 동아시아–북미 동부 식물 분포 패턴이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피난처 (refugia)
빙하기처럼 기후가 나빠진 시기에 생물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교적 안정된 지역입니다. 동아시아 산지와 북미 동부가 대표적 예로 거론됩니다.

단구성 꽃가루 (monocolpate pollen)
표면에 발아구, 즉 발아관이 나올 수 있는 홈이 하나 있는 꽃가루 형태입니다. 속씨식물의 비교적 이른 계통에서 흔합니다.

이심피 (apocarpous)
암술의 기본 단위인 심피가 서로 완전히 붙지 않고, 각각 독립적으로 남아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목련 (Magnolia kobus)
한국과 일본 산지에 자생하며,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숲 가장자리나 열린 공간과도 잘 연결됩니다.

함박꽃나무 (Magnolia sieboldii)
숲 내부의 반음지에서 자라며, 아래를 향한 꽃과 붉은 수술이 특징입니다.

백목련 (Magnolia denudata)
중국 원산으로, 전통적으로 ‘옥란’이라 불렸습니다. 이른 봄 큰 흰 꽃을 피웁니다.

남부목련 (Magnolia grandiflora)
미국 남부의 대표적 상록성 종입니다. 광택 있는 두꺼운 잎과 강한 향의 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매 (袁枚, 1716–1798)
청대 문인으로, 옥란을 맑은 향기와 기품의 상징으로 묘사했습니다.

다네다 산토카 (種田山頭火, 1882–1940)
일본의 자유율 하이쿠 시인입니다. 산길과 비, 고요한 풍경 속의 작은 존재들을 자주 노래했습니다.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897–1962)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남부목련을 지역 정체성과 역사적 기억의 상징처럼 사용했습니다.


약 1억 년 전: 백악기 후반, 초기 목련류 확산
약 6천만~3천만 년 전: 대륙 이동과 신생대 냉각
약 260만 년 전 이후: 반복된 빙하기
현재: 동아시아·북미 동부에 잔존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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