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개의 물, 한 그루의 나무

훈데르트바서의 숲 (1) 훈데르트바서의 생태 사유

by 김트리
image.png GREEN TOWN


연재소개
도시는 오래 직선을 닮아 왔습니다. 평평한 지붕과 곧은 벽, 빗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표면, 식물이 머물 자리를 거의 남기지 않는 구조.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오래전부터 그 풍경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스트리아 예술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입니다. 그는 직선을 “문명의 병”이라고 부르며, 도시가 자연의 순환을 잊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비와 나무, 흙과 숲의 언어로 그 도시를 다시 생각하려 했습니다.
이 연재는 훈데르트바서의 작업을 단순한 예술 이야기로 읽지 않습니다. 그의 그림과 건축, 선언문과 환경운동을 따라가며 한 가지 질문을 붙잡아 보려 합니다. 인간이 만든 도시가 자연의 순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1부에서는 훈데르트바서가 특별히 사랑했던 자연의 현상, ‘비’를 중심으로 그의 생태 사유를 읽어봅니다. 그는 빗방울을 단순한 날씨가 아니라 생명의 순환을 여는 신호로 보았고, 비가 도시 위에 떨어질 때 그 도시의 윤리가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2부에서는 그가 제안한 ‘나무 세입자(Tree Tenants)’라는 개념을 통해 도시와 숲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나무는 장식이 아니라 도시의 동반자이며, 인간의 집 안으로 들어와 함께 살아야 할 존재라는 그의 급진적인 상상은 오늘날 생태도시 담론과도 이어집니다.
3부에서는 그의 건축과 생애 마지막 선택을 따라갑니다. 지붕 위에 숲을 올리고, 벽을 식물이 오르는 표면으로 되돌리고, 결국 자신이 한 그루 나무 아래의 휴머스가 되기를 바랐던 한 예술가의 사유가 어디까지 이어졌는지를 살펴봅니다.
비와 나무와 흙. 훈데르트바서에게 그것들은 풍경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연재는 그 사유를 따라가며,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려는 작은 시도입니다.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 그의 이름부터가 이미 하나의 선언입니다. 본명 프리드리히 슈토바서(Friedrich Stowasser)였던 그는 스스로를 ‘Hundertwasser’, 곧 ‘백 개의 물’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물이 백 번 흐르며 겹겹이 순환한다는 세계관을 이름 안에 넣어두려는 의지였고, 그 의지는 오늘날 더 직접적으로 읽힙니다. 그는 단지 화가가 아니라 건축가였고, 건축가이면서도 선언문을 쓰는 사상가였으며, 동시에 환경운동가였습니다. 직선을 “신성모독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공격하고, 자와 T자를 취향이 아니라 문명의 태도 문제로 끌어올렸으며, 지붕과 거리 같은 ‘하늘에 열려 있는 표면’이 다시 흙과 식생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입니다.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이미지는 나선이었고, 그 나선은 장식이 아니라 성장과 순환과 시간의 형태였으며, 그 철학이 오늘날까지 의미를 미치는 이유는 그의 급진성이 예술의 과장이 아니라 도시가 이미 맞닥뜨린 현실의 예고였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로 도시는 폭우를 ‘빗물’로 흡수하지 못하고 ‘재난’으로 배출하며, 열섬과 건조의 악순환 속에서 녹화 지붕과 수목의 그늘, 토양의 스며듦 같은 생태적 장치가 미관이 아니라 생존 인프라로 재평가되고 있는데, 훈데르트바서가 말한 ‘나무 세입자(tree tenants)’나 ‘지붕의 숲’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낡지 않은 언어가 됩니다.

또 그는 인간의 집을 ‘피부’로 보고 생물권을 다섯 번째 피부로 놓는 ‘다섯 겹의 피부’ 이론을 통해, 건축을 자연과 공동체로부터 떼어놓는 합리주의의 방향을 비판했습니다. 이 감각은 오늘날 지속가능 건축과 생태도시 담론이 되찾으려는 문제의식과 그대로 닿아 있습니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가 남긴 것은 “예쁜 유기적 곡선”이 아니라 “도시가 자연의 순환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그의 비와 숲과 나무는 지금도 건축과 정치, 윤리의 언어로 번역되고 다시 호출됩니다.


비 오는 날 색은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비는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971~72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Hundertwassers Regentag」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An einem Regentag beginnen die Farben zu leuchten … ein Regentag … der schönste Tag.”

비 오는 날, 색은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는 이 말은 단순한 취향의 고백이 아니라 그의 미학이 작동하는 조건을 드러냅니다. 그는 마른 햇빛 아래에서 평면처럼 굳어 있던 색이 물을 머금을 때 비로소 살아난다고 보았습니다. 빗물은 표면을 적시며 광택을 만들고, 광택은 색을 깊이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그에게 비는 사물을 덮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힘이었습니다. 직선과 평면으로 단순화된 세계가 다시 입체와 시간성을 회복하는 순간, 그는 비로소 작업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나는 행복합니다, 이제 내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을 압니다”라는 취지의 말을 덧붙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감각은 단순한 심미적 반응이 아니라, 물이 육상 생명의 조건이라는 물리적·지질학적 사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비는 대기에서 응결된 수증기가 중력에 의해 지표로 되돌아오는 과정이며, 이 순환이 안정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토양의 수분은 유지될 수 없고 식물의 광합성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광합성은 물(H₂O)을 분해해 전자를 얻고 산소를 방출하는 과정이며, 그 출발점은 결국 강수입니다. 빗물은 암석을 풍화시키고 무기질을 용해해 토양으로 운반하며, 뿌리는 그 물과 함께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물은 단지 식물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토양 미생물의 활동을 활성화하고 유기물을 분해해 휴머스(humus)로 전환시키는 매개입니다. 휴머스는 낙엽과 생물 잔해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형성된 유기질 토양으로, 물을 저장하고 뿌리를 붙잡으며 다시 생명을 키우는 기반층입니다. 비가 없으면 이 분해와 재생의 순환은 멈춥니다.

이 점에서 비는 단지 현재의 생태를 유지하는 장치가 아니라, 지구 생명의 역사적 전환을 이끌어온 힘이기도 했습니다. 약 2억 3천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반 약 200만 년 동안 지속된 카르니안절 우기사건(Carnian Pluvial Episode)은 기후 전환을 가져왔고, 그 변화는 식생의 확장과 생태계 재편을 촉진했다는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건조한 환경이 지배하던 지표에 지속적인 강우가 더해지면서 식물 군집이 확장되고 토양이 발달했으며, 그 위에서 초식 공룡과 이를 추적하는 포식 공룡이 번성할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가설은 오늘날 고기후학과 고생물학에서 널리 논의됩니다. 다시 말해, 강수 체계의 변화는 단지 날씨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방향을 바꾸는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비를 두고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색의 광택 때문만이 아니라 지표 생태계 전체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대한 직관에 가까웠습니다. 비는 감각을 열고 동시에 생명의 조건을 재가동합니다. 그에게 비는 분위기가 아니라 조건이었고, 감상이 아니라 순환의 신호였습니다. 세계가 젖을 때 색이 살아나는 이유는 그 순간 토양과 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더 긴 지질학적 시간까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성격

그의 비는 곧바로 윤리의 차원으로 넘어갑니다. 1955년 수채화 「Ein Regentropfen, der in die Stadt fällt」에 붙인 코멘트에서 그는 도시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의 의미를 굳이 짚어 말합니다.

“Bedeutung jedes einzelnen Regentropfens … wenn er in eine Stadt fällt.”

도시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의 의미라는 이 표현은, 비를 풍경의 일부가 아니라 판단의 기준으로 끌어올립니다. 그는 빗방울을 인간이 설계할 수 없는 질서, 즉 자연이 스스로 작동하는 법칙의 표지로 이해했습니다. 직선과 평면으로 구성된 도시는 그 질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니면 즉각 배제하고 밀어내는지 질문받습니다. 비가 떨어졌을 때 그것이 스며들 수 있는 흙이 있는지, 아니면 콘크리트 위를 흘러 곧장 사라지는지. 이 물리적 차이는 곧 윤리적 태도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도시의 성격을 드러내는 척도이며, 인간의 설계가 자연의 순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됩니다.


하늘의 키스

1983년 산성비 캠페인과 연계해 제작된 그의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SAVE THE RAIN – EACH RAINDROP IS A KISS FROM HEAVEN.”

빗방울 하나는 하늘의 키스라는 이 문장은 겉으로는 서정적이지만, 그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북유럽과 중부유럽에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산성비 위기였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는 석탄 화력발전소와 산업지대에서 배출된 황산화물(SO₂)과 질소산화물(NOx)이 대기 중에서 황산과 질산으로 전환되어 강수와 함께 내리면서 수천 개의 호수가 산성화되었고, 연어와 송어 같은 어류가 대량 폐사했습니다.

1980년대 초 노르웨이 정부와 환경단체들은 국제적 오염 이동을 문제 삼으며 산성비 저감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훈데르트바서는 1983년 노르웨이 환경 캠페인을 지원하기 위해 해당 포스터를 제작해 기부했습니다. 그의 참여는 단순한 예술적 연대가 아니라 “비를 구하라”는 구호를 통해 오염된 강수가 더 이상 생명의 매개가 아니라 파괴의 매개가 되고 있음을 경고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는 비를 낭만화하지 않았습니다. 오염된 비는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인간이 배출한 물질은 대기 순환을 따라 이동한 뒤 다시 숲의 잎과 토양, 호수와 인간의 폐로 되돌아옵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산성비는 산업 활동이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순환의 문제임을 드러냈습니다. 비는 언제나 순환의 증거였지만, 1980년대의 산성비는 그 순환이 왜곡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래서 “Each raindrop is a kiss from heaven”이라는 문장은 동시에 경고이기도 합니다. 키스는 여전히 하늘에서 오지만, 그 성분을 바꾼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라는 요구입니다.


도시 계획에 대한 항의

숲과 나무에 대해 그는 훨씬 직접적인 어조를 택합니다. 1970년대 초 빈과 유럽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재개발과 고층 주거단지 건설이 가속화되던 시기에 그는 ‘도시 속 나무 세입자(Baummieter)’ 개념을 제안하며 「Tree Tenants are the Ambassadors of the Free Forests in the City」라는 텍스트를 발표했습니다. 콘크리트 주거 단지와 균질화된 파사드가 도시를 지배하던 흐름에 대한 공개적인 반박이었고, 자연을 ‘조경’으로 한정하는 도시계획에 대한 항의이기도 했습니다.

그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Nur wenn du den Baum liebst wie dich selbst, wirst du überleben.”

너 자신처럼 나무를 사랑할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문장은 윤리적 권고를 넘어 생존 조건의 진술에 가깝습니다. 그는 나무를 건물의 외부에 배치된 장식물이 아니라 건축 안으로 들어와 ‘거주하는 존재’로 상상했습니다. 그래서 ‘세입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공짜로 그늘을 제공하고 산소를 만들며 미세먼지를 흡착하고 여름철 도시의 표면 온도를 낮춥니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이 생태적 서비스를 당연하게 소비하면서도 나무에게 아무런 권리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세입자라는 명명은 이 불균형을 뒤집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나무는 인간의 집에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도시를 위해 생태적 임대료를 지불하는 동반자라는 주장입니다.

이 지점에서 숲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닙니다. 숲은 대기와 수분과 온도를 조절하는 도시의 보이지 않는 기반 시설이 되며, 건축은 그 기반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됩니다.


휴머스가 되기를

그리고 그의 사유는 결국 흙으로 내려옵니다. 그는 생애 말미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I AM LOOKING FORWARD TO BECOME HUMUS MYSELF … UNDER A TREE.”

나는 나 자신이 휴머스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나무 아래에서. 이 문장은 상징이 아니라 실제적 선택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이 층으로 되돌아가야 순환이 완성된다고 보았습니다. 죽음이 단절이 아니라 분해와 재생의 과정으로 이어질 때 인간은 자연의 시간 안에 편입됩니다.

이 사유는 추상적 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2000년 2월 19일 뉴질랜드에서 퀸엘리자베스 2세호를 타고 유럽으로 향하던 중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뉴질랜드 노스랜드 카우리누이(Kaurinui) 계곡의 한 나무 아래에 묻혔습니다. 관은 자연 분해가 가능한 방식으로 준비되었고, 무덤은 흙과 식생 속에 스며들도록 조성되었습니다.

비가 흙을 적시고 흙이 나무를 키우고 나무가 다시 공기를 만듭니다. 그 순환 속으로 그는 자신을 위치시켰습니다. 앞서 말했듯 비는 그에게 감각을 여는 조건이었고 숲은 도시가 회복해야 할 구조였으며 나무는 인간 생존의 동반자였습니다. 그리고 휴머스는 그 모든 과정이 수렴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자연을 보호의 대상이나 외부 환경으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인간 역시 그 층위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연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떨어지는 방식을, 흙이 숨 쉬는 방식을, 나무가 시간을 붙잡는 방식을 가만히 따라가면 인간이 이미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믿었을 뿐입니다.


# 용어 정리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

오스트리아 예술가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예명. ‘Hundert(백)’ + ‘Wasser(물)’의 합성어로, 본명 프리드리히 슈토바서(Stowasser)를 슬라브어 어원(Sto=100)에서 독일어로 번역해 만든 이름. 물과 순환의 세계관을 이름에 담았다.

Hundertwassers Regentag

1971~72년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비 오는 날에 작업하는 훈데르트바서의 태도와 미학이 잘 드러난 기록물.

Ein Regentropfen, der in die Stadt fällt (1955)

‘도시에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빗물’이라는 제목의 수채화 작품. 빗방울을 도시의 윤리와 구조를 묻는 상징으로 제시했다.

Carnian Pluvial Episode (카르니안절 우기사건)

약 2억 3천만 년 전 트라이아스기 후반 약 200만 년간 지속된 강우 증가 시기. 기후 전환과 생태계 재편, 공룡의 확산과 관련해 논의되는 지질학적 사건.

산성비(Acid Rain)

황산화물(SO₂)·질소산화물(NOx)이 대기 중에서 산성 물질로 전환되어 강수 형태로 내리는 현상. 1970~80년대 북유럽에서 호수 산성화와 어류 폐사를 초래하며 국제 환경문제로 부상.

Tree Tenants (Baummieter)

훈데르트바서가 제안한 개념. 건물 외벽이나 창문, 옥상에 ‘거주하는 나무’를 도시의 생태적 동반자로 본 개념적 선언.

다섯 겹의 피부(Fünf Häute)

인간을 둘러싼 다섯 층위(표피, 옷, 집, 사회, 생물권)를 연결해 이해한 훈데르트바서의 이론. 건축과 생태를 분리하지 않았다.

휴머스(Humus)

낙엽·생물 잔해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어 형성된 유기질 토양층. 수분과 양분을 저장하고 식물 생장을 지탱하는 생태계의 기반 구조.


# 참고 자료

Hundertwasser Foundation 공식 아카이브 (www.hundertwasser.com)

작품 코멘트, 선언문, 포스터 기록 등 1차 자료

Film: Hundertwassers Regentag (1971–72)

Hundertwasser, “Tree Tenants are the Ambassadors of the Free Forests in the City”

European Acid Rain Crisis Reports (1970–80s)

Hundertwasser, ecological posters (1983, Norway Acid Rain Campaign)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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