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1) 도시의 가장자리
능소화는 “꽃”으로 기억됩니다.
여름 한복판, 담장 위에서 불처럼 터지는 주황색의 큰 꽃입니다. 꽃부리는 길게 벌어진 나팔 모양이고, 끝은 다섯 갈래로 둥글게 말려 있습니다. 바깥은 선명한 주홍빛이지만, 안쪽 목구멍은 더 짙은 주황이나 붉은 기운을 띠며 미묘한 맥이 흐릅니다. 꽃은 대개 6~8센티미터 안팎으로 크고, 여러 송이가 끝에서 산형처럼 모여 핍니다. 멀리서 보면 덩굴 위에 불씨가 얹힌 것 같고, 가까이서 보면 통처럼 깊은 꽃통 안으로 수술과 암술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 장면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능소화를 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읽으려면 먼저 벽을 타는 방식을 봐야 합니다. 꽃은 사건이고, 덩굴은 체계입니다.
능소화(Campsis grandiflora)는 목본성 덩굴입니다. 땅에 뿌리를 두고도 자기 몸을 굵게 세워 숲의 상층을 차지하는 대신 타자의 표면을 빌려 수직으로 오릅니다. 담장, 기둥, 오래된 벽, 혹은 큰 나무의 줄기. 도시에 남아 있는 모든 수직면이 잠재적 서식지가 됩니다.
이 “의존”은 약함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수직으로 오르면 빛에 더 빨리 닿을 수 있고, 지면의 경쟁—잔디의 밀도, 초본의 피복, 관리용 예초기의 경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두꺼운 줄기를 만들지 않는 대신 이미 세워진 구조를 이용합니다.
영국 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는 능소화속을 “공중뿌리(부착근)로 표면에 붙어 오르는 빠른 낙엽성 덩굴”로 요약합니다. 그러나 이 요약은 관리자의 관점입니다. 동아시아의 능소화가 북미종보다 “덜 공격적”이라는 평가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기서 “공격적”이라는 말은 생태학적 판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감정에 가깝습니다.
전정을 자주 요구하면 공격적이고, 담장을 빨리 덮으면 공격적이며, 계획한 선을 넘어 자라면 공격적입니다. 그러나 이 식물이 자라는 속도와 방향은 인간이 먼저 만들어 놓은 조건—콘크리트 벽, 과도한 질소, 열섬 환경, 인공 관수—의 산물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공격적”이라 부르는 것은 종종 식물의 과잉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과잉 환경에 대한 반응입니다.
덩굴은 인간의 건축과 토목이 만든 수직면을 이용할 뿐입니다. 가장 넓은 교란은 언제나 인간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덩굴은 그 틈을 읽는 존재일 뿐입니다.
능소화는 자립하지 못해 벽에 매다는 것이 아닙니다.
벽은 이 식물에게 빛과 개화 공간을 제공하는 무대입니다. 능소화의 꽃은 주로 그해 새로 자란 가지의 끝에서 핍니다. 따라서 덩굴은 위쪽으로 뻗은 가는 가지 끝마다 꽃차례를 맺습니다. 아래쪽, 즉 지면에서 1~2미터 높이까지는 굵은 주간과 오래된 목질 줄기가 드러나 있고 잎은 성글게 달려 있습니다. 그 위에서부터 잎의 밀도가 높아지고, 담장 상단이나 처마 높이에 이르면 새 가지 끝마다 꽃이 모여 터집니다.
결과적으로 지면 가까이는 목질의 골격이 드러나 있고, 시선이 머무는 상부에만 꽃과 연한 잎이 집중됩니다.
아래는 구조이고, 위는 사건입니다.
도시에서는 이 수직 분업이 특히 극적으로 보입니다.
담장 하단에는 갈색 줄기가 거칠게 붙어 있고 상단에는 주황색 꽃이 연속적으로 매달립니다. 한쪽 면은 나무라기보다 “식물로 된 벽화”처럼 보입니다. 마치 벽 위로 불길이 번져 오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래에는 무대 뒤편의 골격이 서 있고, 위쪽에서만 조명이 켜집니다.
꽃이 지나가면 길쭉한 열매 하나가 남습니다. 콩꼬투리처럼 길게 뻗은 삭과입니다. 시간이 지나 열매가 마르면 어느 날 두 쪽으로 갈라지며 안쪽에 차곡차곡 접혀 있던 씨앗을 풀어놓습니다.
능소화 씨앗은 ‘알갱이’라기보다 얇은 종이 조각에 가깝습니다. 가운데에 작은 씨가 있고 양옆으로 반투명한 막이 넓게 붙어 있습니다. 씨앗은 공중에서 잠깐 멈칫했다가 낙하하기보다 흔들리며 미끄러지듯 내려옵니다. 어떤 것은 종이비행기처럼 미끄러지고 어떤 것은 낙엽처럼 팔랑이며 떨어집니다.
그래서 능소화의 생태는 이 지점에서 더 선명해집니다.
현재는 부착이고 미래는 비산입니다.
줄기는 벽에 붙어 위로 올라가지만 후손은 바람을 따라 이동합니다. 능소화는 붙어 오르는 식물이면서 동시에 흩어져 남는 식물입니다.
씨앗이 멀리 날아간다고 해서 모두 새로운 식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은 아스팔트 위에서 사라집니다. 살아남는 것은 결국 틈을 찾은 씨앗입니다.
그래서 능소화는 늘 경계에 있습니다.
심은 자리와 자라난 자리 사이, 관리와 방치 사이, 정원과 길 가장자리 사이입니다.
능소화는 벽을 타고 올라가지만 결국 도시의 균열을 읽는 식물입니다.
능소화속(Campsis)은 동아시아의 능소화(Campsis grandiflora)와 북미 동부의 나팔능소화(Campsis radicans)라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이 분포는 식물지리학에서 오래전부터 주목해 온 동아시아–북미 동부 분리의 한 사례입니다.
신생대 초·중기 북반구에는 지금보다 따뜻하고 습한 기후 아래 넓은 온대림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중국 중부와 한반도 남부, 일본 열도, 그리고 북미 동부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까지 비슷한 숲이 펼쳐졌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이후 기후 냉각과 빙기 반복 속에서 숲은 조각났고 남은 것은 서로 떨어진 계통들입니다.
능소화는 그 단절의 흔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을 향해 오르고, 몸을 통과시키고, 공기를 타고 흩어집니다.
능소화는 그렇게 시간을 건너 살아남은 덩굴입니다.
■ 능소화속 (Campsis)
능소화과에 속하는 목본 덩굴식물 속입니다. 동아시아의 능소화와 북미 동부의 나팔능소화가 대표적입니다.
■ 삭과(蒴果)
성숙하면 갈라져 씨앗을 방출하는 열매 형태입니다.
■ 풍산포
바람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입니다.
■ 수분 신드롬
꽃의 형태와 색, 꿀의 특성이 특정 수분자를 전제한다는 가설입니다.
■ 자연화
사람이 도입한 식물이 관리 범위를 넘어 자력으로 번식하며 살아남는 상태입니다.
■ 동아시아–북미 동부 분리
한때 연결되어 있던 북반구 온대림 식물군이 동아시아와 북미 동부에 각각 남게 된 분포 패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