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마스크걸, 마스크보이
군대 간 아들이 자기는 넷플릭스를 볼 수 없다며 집 TV에 자신의 계정을 연결해 주었다. 덕분에 틈틈이 철 지난 문제작(?)들을 관람하고 있다. 배우 안재홍의 은퇴작이라고 할 정도로 연기변신과 그 수위가 얼마 정도였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어 휴일에 <마스크걸>도 정주행을 해봤다. 멋지고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을 제치고 드라마를 우뚝 세운 안재홍과 염혜란의 미친 연기력에 박수를 보내며 소소한 리뷰글을 시작해 본다.
1. 주오남의 그 찌질함, 어쩌면 남성들의 로망일 수도...
성인만화와 일본 AV(성인비디오)를 보면서 혼자 아이시떼루를 외치고 여성모습의 성인돌을 집에 들여놓아 같이 식사를 하는 주오남은 찌질함의 그 자체다. 외모를 가꾸지 않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야한 동영상을 보며 혼자 자위행위를 하는 뒷모습에선 그 찌질함과 황망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연기를 했을 안재홍 배우의 은퇴작이라고 할 만하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아버지 없이 어머니하고만 살며 학교에선 왕따를 당하는 등 힘든 학령기 생활을 하면서 주오남은 남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기 어려웠다고 나온다. 대학과 군대생활이 어땠는지(아마 모자가정의 외아들이니 군면제를 받았을 듯하다) 모르겠지만, 일단 직장에는 입사했고 존재감 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이 먹어서 어머니의 도움이라도 받고 있으면 더욱 찌질했을 터인데, 직장생활로 자기 생활비를 벌고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마스크걸의 온라인 개인방송채널을 보면서 5천 개의 별풍선을 마구 날려대는데, 이걸 모친의 돈으로 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 아닌가! 아프리카 TV 같은 채널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5천 원의 별풍선을 보내는 것으로 착각했는데, 나중에 5천 개의 별풍선이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과거 시세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아프리카 TV 별풍선 1개 가격이 110원이라고 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사람이 어렵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별풍선으로 날려 보내는 짓을 하다니... 성인돌을 끌어안고 자는 것보다 더 한심하게 느껴지는 찌질남성의 모습이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모두들 쯧쯧 혀를 찼을 것이다. 하지만 잠깐, 아주 잠깐동안의 시간에 살짝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비슷하게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남자들이라면 공감을 하지 않을는지?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마음껏 신체와 돈의 소비에서 오는 쾌락을 꿈꾸는 건, 무릇 가족을 이루고 사는 남자들의 로망이 아니었던가? 주오남처럼 살기는 싫지만, 주오남처럼 해보고는 싶은 마음. 이게 남자들의 숨은 욕망이다. 여주인공 김모미만 마스크를 쓰는 게 아니다. 일상 속에서 남자들도 가끔씩은 마스크를 쓰고 그 안의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감독이 남성의 이런 찌질한 일탈욕구를 주오남의 캐릭터에 잘 녹여내었다.
2. 김경자의 아들집착은 마스크를 쓴 계급사회다.
먹고살기 바빴던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의 모습은 서민들의 일상을 대변한다. 생존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고 자식만이 삶의 목적이자 이유이다. 아들이 죽은 뒤로는 모든 것을 팽개치고 아들의 복수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공감이 가면서도 그 광기 어린 집착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왜 이 엄마는 자기의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만 했을까? 김경자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의 연기가 극의 전개를 탄탄하게 이끌어가 몰입도가 매우 높았다. 다들 연기의 에너지가 대단하다.
아들을 죽인 범인이 김모미라는 것을 알고, 김경자가 김모미 집에 찾아가 김모미 엄마에게 비명 섞인 욕지거리를 선사하는 모습이 있다. 넓은 집 테라스에서 우아한 옷을 입고 나와 고양이를 쓰다듬던 김모미의 엄마 신영희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다. 집에서 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오히려 김영자에게 빨리 사라지라며 대신 말을 건넬 뿐. 이 장면에선 오히려 뒤바뀐 현실의 모습이 생각나 더욱 씁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엔 부잣집 자녀들이 더욱 부모의 간섭을 많이 받는다. 그러기에 부모의 부와 사회적 권력이 크고 높을수록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간다. 학폭을 가해도 국가권력에 있는 부모들은 자기 자녀를 피해보지 않게 하며 피해자가 도망가게 만든다. 드라마 속 일이 현실에서 벌어졌을 때, 오히려 김경자는 머리 숙여 흐느끼거나 죄송하다고 얘길 해야만 할 것이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관망하던 신영희는 현실 속에선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더 큰 비명 속 욕지거리를 상대방에게 쏟아부을 것이다. 현실 속에선 돈이 없고 권력이 없으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 저항할 힘도 지지체계도 없다. 뉴스를 보면 현실이 더 드라마 같은 세상이다.
악다구니처럼 돈을 벌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건 김경자의 모습은, 서민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부자와 권력자들의 모습이다. 자기들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보여주기 싫어서 다들 마스크를 썼을 뿐.
3. 구원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다.
영화 밀양에서 봤던 전도연의 외침이 여기에서도 들린다. 나는 너를 용서하지 않았는데, 왜 너는 이미 용서받았냐며 신에게 묻는다. 아들을 죽인 김모미의 평안한 모습에 김경자는 오열하며 총을 겨누고 먼 미래에 다시 복수를 꾀한다. 용서와 사랑의 종교에 귀의하였지만 주오남의 엄마로서 김모미를 끝까지 용서하지 않았다. 찬송가를 부르며 김모미를 죽이려고 차를 몰고 가는 김경자의 모습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종교를 가진다는 것, 신을 믿는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신을 믿는 것은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슬픔에 빠지고 실의에 잠겨 정말 죽을 것만 같은 내 몸을 돌보는 행위이다. 내 자식 죽인 살인자를 어떻게 용서를 하겠는가! 그 황망함과 참담함을 극복하고자 믿는 게 신이고 그 마음이 신앙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어찌 용서를 못하고 저렇게 복수의 칼날을 휘두를 수가 있느냐고 묻겠지만, 김경자의 인간적 모습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이 신앙생활 속에서 위로를 진정으로 받지 못하고 사적처벌의 수행자로 직접 나서면서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드라마 속 행동은 잘못된 길이고 올바른 신앙인의 자세도 아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 있지 사람에게 있지 않다.
누군가 내 자식을 죽였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김경자처럼 하지 않을까? 부모의 마음 다 같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래서 종교가 생겼고 법적체계가 생겼다. 이미 발생한 일 앞에서 참담해진 나를 위로하고자 종교가 있고 그 참담함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이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졌지? 우리 가족이 무슨 죄가 있지? 왜 저 범죄자는 처벌을 못하지? 왜 저놈은 종교에 귀의해서 용서를 받았다며 안식을 취하고 있지? 대체 신은 있는 건가? 정의와 진리를 무엇이지? 많은 고민과 회한이 들 것이다. 사람은 완전한 신이 아니기에 당연한 일이다. 비난을 해서도, 비난을 당해서도 아니 된다. 신앙의 힘으로 스스로 위안받고 극복할 수 있도록 본인이 노력하고 주변에서 이를 도와줘야 한다. 그게 사회가 할 일이고 종교가 할 일이다.
김경자를 둘러싼 지역사회가, 그가 속해있던 교회가 좀 더 김경자에게 관심을 갖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해결책을 찾았더라면 김경자의 복수극이 저렇게까지 흘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역예배 후 점집에 점 보러 가는 교인들의 대화는 현재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만나러 교회를 가고 종교를 갖는다. 교회에 가시다가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교회에서는 장례식 뒤로 내게 연락 한번 없다. 난 스스로 잘 위로하고 있으니 연락 없음에 아쉬움은 없지만, 내 어머니 위해 2만여 명의 그 교회 교인들 중 누군가 기도라도 하고 있을지 가끔씩 궁금하다. 하나님만 봐야 하는데, 나도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다들 마스크를 벗고 솔직한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대하면 좋겠는데... 결국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편한 세상이다. 마스크 속 내 모습이 진짜인지, 마스크로 보이는 내 모습이 진짜인지 헷갈리는 세상. 굳이 마스크를 벗어야할 이유도 찾기 힘든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고 있다. 우리 모두 마스크걸, 마스크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