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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이 필요해!

글쓰기 근손실에 대처하는 자세

by 구르는 소

이런. 글이 잘 안 써진다.

글쓰기 근육이 다 없어진 모양이다.


업무차 외부교육에 참여했다가 같은 방을 쓰는 동료의 심한 코골이에 잠을 설쳤다. '코골이는 폭력이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여전히 누군가와 방을 같이 사용하려면 잠자리에서 그 폭력을 견뎌내야 한다. 괴롭게 누워있느니 머릿속을 맴도는 문장들로 오랜만에 글이나 써보자며 침대에서 노트북을 켰건만, 한 시간여의 글쓰기는 다음날 아침에 바로 휴지통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글쓰기도 근육 같아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고 다듬는 작업을 해줘야 한다는 여러 작가님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한 줄 쓰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어렵게 쓴 글도 그다지 마음에 안 든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글쓰기에 단백질 보충이 필요하다.


30대 때 다니던 헬스장의 관장이 내 허벅지근육을 보면서 어렸을 때부터 무슨 운동을 해왔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딱히 운동을 했거나 특별히 운동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 내가 봐도 허벅지 근육이 튼실했다. 바지도 허벅지 때문에 약간 큰 사이즈의 옷을 입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런 허벅지가 40대를 지나며 어느 순간 노인의 얇은 다리처럼 변해버렸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던 그즈음 같다. 근육이 다 빠져 버린 것이다. 지금은 뱃살이 너무 나와서 허리 부분의 바지가 안 맞는다. 허리살에 맞춰 바지를 입으면 허벅지 쪽이 너무 헐렁해서 옷매무새가 예쁘지 않다. 어느 순간, 허벅지 근육은 사라졌고 옷맵시도 잃어버렸다.


40대 초반에 건강관리를 위해서 마라톤을 시작했었다. 열심히 10km 달리기 훈련을 하면서 여러 대회참가를 통해 달리기 경험을 쌓아갔다. 자신감이 붙자 하프마라톤에도 도전하고 결국엔 풀코스마라톤에도 도전해서 5번의 완주기록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군복무시절 다친 다리 쪽 부상이 심해져서 4~5년을 뛰지 못하고 걷기만 해야 했다. 이 시기에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의 짐이 무거워지면서 살도 붙어 났었을 때 쓰기 시작한 글이 [브런치북] 돼지 그리고 껍데기이다. 여전히 살은 빠지지 않았고 무거운 몸무게 때문에 지금까지 잘 달리지도 못한다. 조금씩 트레드밀에서 빨리 걷기를 통해 몸상태를 끌어올리고는 있는데, 언제 다시 마라톤 대회에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1km 달리기도 지금은 쉽지 않다.


한 번 손실된 근육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일상의 삶에서 느끼고 있다. 게으름과 식탐은 내 몸에 지방을 주입하면서 근육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고 있는 중이다. 몸 곳곳에 염증도 만들어 내고 있다. 튼튼한 허벅지, 42.195km 마라폰 풀코스 완주를 다시 꿈꾸면서 매일 조금씩이라도 걸으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아프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서 뛰거나 걸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글쓰기도 비슷한 모양이다. 글감들은 머릿속에서 항상 맴돌고 글쓰기도 종종 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뿐이다. 마음뿐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글을 쓰지 않으니 손가락 근육이 무뎌져 가고 있다. 염증이 낀 듯 가끔 쓴 글에는 군더더기가 가득하다. 어디 가서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어요~'라고 얘기하기가 창피하다.

염증을 예방하고 다시 건강하게 살아나려면, 글쓰기가 필요하다.


다만, 신기한 게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는 동안에도 한 두 분의 구독자가 생겼다. 오래된 글에 새롭게 공감표시를 눌러주고 가신 분들도 보인다. 소실되어 가는 내 글쓰기 근육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놔주고 싶었던 것일까? 근육을 만들고 살리라고 단백질을 던져 준 것일 수도 있겠다. 기대감 없는 작가에 작은 관심을 가져주시니 다시 작은 근육이라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피곤하긴 하지만, 하루 종일 누워있기는 싫으니 힘들더라도 조금씩 움직이기는 해야겠다.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보자.

단백질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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