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겪은 숙소 선정 실패기
"This house is all style over substance!"
: 어떤 집이 아주 그럴듯 하게 생겼지만... (더보기)
날씨도 봄같지 않고, 회사일은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던 몇 주 전, 갑자기 여행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난 이럴 때마다 떠나는 마음의 고향이 있다. 번잡하기로 유명한 그 지역의 여름이 오기 전에 겸사겸사 여유를 즐기고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나기 3~4일 전이었지만, 최대한 좋은 숙소를 찾고 싶어서 스테이 폴리오 앱을 켰다.
나는 스테이 폴리오라는 앱에 대한 로열티가 높은 편이다. 평소 국내 여행을 떠날 때,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굳이 스테이 폴리오에서 숙소를 찾는다. 지금까지 10번 넘게 사용했다. 무엇보다 깔끔하고, 안전하고, 각자의 주인의 감성이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는 숙소에 머문다는 게 좋았다. 적어도 실패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만큼 숙소의 Quality control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경험도 꽤 좋은 편이었고, 다음에 그 지역에 방문했던 숙소를 또 예약하고 싶을 정도로 재방문 의사도 높았다.
이번에도 앱에서 숙소를 찾는데 사실 여행 며칠 전이라 남아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그 중에서 깔끔하니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사진에서 본 숙소는 단정하고 아늑했다. 독채를 사용할 수 있고, 마당도 있고, 무엇보다 주인이 건축가라고 했다. 자는 공간이 복층 형태로 되어 있는게 조금 맘에 걸렸지만, 건축가 분이 어련히 잘 지으셨겠지라고 생각했다. 숙소 안에는 꾸민 사람의 감성도 가득해 보였다. 믿음이 갔다. 어차피 남자친구랑 단 둘이 급하게 떠나는 여행인데, 그러면 됐지 뭐.
주인은 좋은 분이셨다. 체크인 과정도 수월했고 처음 마주한 숙소 전경은 꼭 맘에 들었다. 잘 관리된 마당과 맑아진 날씨, 지은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하얗고 깔끔한 숙소 외벽까지.
그렇게 설레서 숙소에 입장한 우리는 다소 당황했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보다 실제 공간이 매우 좁았다. 공간이라기엔 약소한, 직사각형 하나 수준이었는데, 뭐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원래 다 사진은 그렇지. 우리가 꼼꼼히 못 본 탓이지 뭐, 어차피 여기서 하루종일 있을 건 아니니까. 서울에서부터 떠나온 피곤함을 풀기 위해 짐을 놓고 잠시 앉아 쉬려고 했더니 숙소에서 앉을 수 있는 곳은 싱크대 옆 붙어있는 책상 정도의 공간에 자리한 하이체어 두개였다. 꽤 많이 불편했다. 남은 공간에 앉을만한 소파나 쿠션은 없었다. 바닥에는 등받이용 쿠션 두개가 있었는데, 통통하고 두꺼워서 의자처럼 앉으라는 건지 등을 받치라는 것지도 헷갈렸다. 의자 쪽에 더 가까워보여서 일단 앉아보니 마치 푸세식 화장실에서 쭈그려 일을 보는 사람 정도의 높이가 되어 편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허리를 받치려고 벽에 기대면 등이 딱딱해서 불편했다. 멍하지 앉아 있으면 벽이 보였다. 빔도, 그림도, 창문도 무엇도 없었다. 창문을 바라보려면 허리를 받쳐주는 벽을 포기하고 방 중간에 내 힘으로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앉아 있는건 단념하고 침대에 잠시 눕기로 했다.
앱에서 확인한 것처럼 침구는 복층, 그러니까 사다리로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올라가려면 거쳐야 하는 사다리가 만만치 않았다. 올라가는 각도가 굉장히 높았고, 칸도 넓었다. 어, 이거 알딸딸해서 올라가거나 내려오다 큰일나겠는데, 헉 근데 만약에 밤에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러 올라가기 전 화장실에 잘 들르고 필요한 건 다 챙겨서 올라가야만 할 모양이었다. 근데 올라가는 사다리 칸칸이는 왜 수평이 아니고 기울어 있는지, 올라가려고 발로 디디면 모서리가 발을 자극했다. 지압 슬리퍼처럼 한발 한발 딛을 때마다 악, 악, 어우, 라는 소리가 절로 났다. 양말을 신고 올라가면 다소 미끄러워서, 맨발로 다닐수 밖에 없었다.
침구에 누우면 층고는 생각보다 낮았다. 지붕모양으로 가운데가 솟아있기는 했으나 무리해서 일어나면 머리쪽은 닿을까봐 무서웠다. (다행히 직접 시도해보니 닿지는 않았다.) 아, 목말라. 라고 말했으나 나와 남자친구는 둘 다 침묵을 지키고 일어나지 않았다. 둘 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올라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음, 그렇지, 우린 아무래도 관절을 막 쓸수는 없는 나이니까. 그리고 나는 한참 후에 한마디 더 내뱉었다. "아, 여기 애들이나 어르신들이 오면 절대 안되겠는데" 그말인 즉슨, 이 구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몸이 날렵하고 가벼운 젊은이들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들이 타겟이었구나, 그제서야 어느정도 이 숙소의 (다소 불편한) 감성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잘못 골랐다.
한 번 불편함을 느끼고 나니 마치 트집을 잡는 것처럼 계속 모든 것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정말 이쁘지만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씽크대와 화장실의 수전 (그 와중에 다행히 화장실은 엄청 크고 엄청 쾌적했다.), 내가 직접 2중으로 창 양 끝에 걸어야 하는 커튼, 그 커튼으로 완벽하게 가려지지 않아서 어느 정도 자꾸 빛과 실루엣이 새어나가는 통창 ... 1박만 하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숙소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멋진 창밖을 바라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 와중에 웃긴 건, 숙소 사진을 찍으면 정말 잘 나왔다는 것이다. 컴팩트한 공간에 무엇인가가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넓은 창과 날씨도 한 몫했다. 현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우리를 비웃듯 사진에는 한적하고 나른한, 깔끔하고 단순한 감성이 보기 좋게 반영됐다.사진 찍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 가득한 UI를 위해 편안한 UX를 포기한 것 같았다. 아무튼 정말 원하는 것이 명확한 공간임이 분명했다.
동시에 이 곳을 지은 건축가 주인분은 여기서 직접 지내보시긴 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자신이 직접 지낼 필요가 없어서 이렇게 지으셨겠지, 라는 생각에 미쳤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이 곳을 메우고 있는 소품들과 가구, 이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컨셉은 일관성있고 눈으로 보기에 멋졌다. 아마 건축가분의 취향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붕 아래 바로 위치한 복층 침실이 그 분의 로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정형적이지 않은 커튼을 집에 무심하게 툭, 걸쳐보고 싶으셨을 수도 있다. 굳이 넓은 공간을 쓸데 없이 쓰기 보다는, 작은 공간을 야무지게 사용하는 것이 취향이실 수 있다. 그렇게 건축가, 인테리어 전문가로서 가지고 있던 오랜 로망과 소원을 가득담아 만든 곳이 바로 이 숙소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으나,
하지만 그 로망이 가득한 곳은 실제로 누군가에겐 꽤나 불편한 공간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컴플레인을 걸만한, 아예 못쓸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이려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매 번 손에 닿을 때마다, 눈에 들어올 때마다 미묘하게 불친절하고, 미세하게 불편했다. 그게 자꾸 신경쓰이는 우리는 이 숙소가 원하는 여행객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일상의 공간과 여행의 공간은 퍽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이 곳처럼 여행자들을 위한 전용 숙소에는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고, 하루나 이틀정도 자고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요즘같이 수많은 숙소가 생겨나고 있는 때에 실제로 재방문을 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는 편리함보다 감성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특히 요즘같이 멋진 사진과 거기 담긴 감성이 포트폴리오가 되고, 홍보 자료가 되는 시대에는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걸 잘 아시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하시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지내는 사람들을 위한 곳인데 조금 불편하면 뭐 어때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스테이 폴리오에서 찾은 숙소는 꼭 재방문을 하고 싶었던 나로써는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갔던 스테이 폴리오의 숙소들은, 각자의 감성이 가득하긴 했지만 그게 사용성을 해치지는 않았다. 필요한 것이 필요한 곳에 있었고, 어쩌다가 경험하는 불편함들도 받아들일만은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감성이 편리함을 잡아먹었다. 숙소에 있는데도 몸이 불편했다. 다음에 다시는 오지 않으면 되지 뭐. 어쨌든 나는 이 숙소 주인분의 취향과 꼭 맞는 방문자는 아니라는 걸 씁쓸하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어쩔 수 없이 계속 생각나는 것은 바로 이 숙소를 오기 위해 지불한 가격이었다. 규모도 그렇고, 시설도 그렇고 이 가격은 overprice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가격이 좀 더 납득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이런 불편이 굳이 성가시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 숙소 가격은 꽤 비쌌다. 성수기도 아니었고, 스테이 폴리오는 실시간 가격 반영이 되는 것도 아니니 평소에도 그 가격일 터였다. 그 가격을 지불하고 지내는 1박이라면 응당 기대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부재하고, 많은 부분을 '감성'이 채우고 있으니 신경쓰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 가격이면 갈 수 있는 대체재들이 자꾸 떠올랐다. 괴로웠다.
다음 날 체크아웃을 준비하며 조식을 받으러 가려고 했는데, Cafe 공간으로 오면 된다고 써있는 안내글을 앱에서 보고 한참을 갸웃했다. 카페로 보이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숙소 구석에 작은 오피스같은 공간이 있었는데, 카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건 그 장소밖에 없기는 했기에 그곳이라고 추측했다.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은 곳을 기웃기웃하다보니 주인분이 나와서 조식을 챙겨주셨는데, 다행히 조식은 정말 맛있었다. 다만 슬픈 건 그걸 먹기로 한 장소가 우리 숙소 안쪽의 하이체어라는 점이었다. 역시 이 곳의 미니멀리즘은 첫 방문자들에게는 친절한 편은 아니었다.
숙소를 떠나며 보여주시는 주인분의 웃음이 너무나도 밝고 친절해서 기분이 오묘했다. 사실 그분이 잘못한 건 없었다. 무엇을 숨긴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것도 아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적합한 숙소를 찾는 것을 실패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느끼는 것이 많았다. 그럴 듯해 보이던 겉모습에 반해, 실제로는 미묘하게 불친절하고, 미세하게 불편했던 아이템들. 만약 나중에 내 오랜 꿈이었던 나만의 집을 짓게 된다면 머리에 꼭 새기고 있어야지, 라고 다짐했다. 내 집 안에서는 감성이 일상을 잡아먹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어쨌든 그 때가면 관절도, 허리도 지금보단 덜 튼튼할테니까.
여전히 그 숙소는 그 자리에 멋드러지게 서있을것이다. 요즘 날씨도 하늘도 최고인데, 아마 사진으로 찍으면 더 환상적이겠지.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들이 그들에게 적합한, 그들의 감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여행자를 많이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빈다. 우리에게 맞지 않았을 뿐,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건 아니었으니까. 원래 취향을 찾는 과정에는 수많은 실패가 가득한 법이다. 나도 다음에는 좀 더 신중히 숙소를 고르게 될 것 같다. 나한테도 좋은 숙소가 찾아오길 같이 빌어줬음 좋겠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