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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완성한 미켈란젤로는 행복했을까

종교와 종교 권력은 분명히 다르다

by 최샬럿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책을 읽다보면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인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서술하는 챕터가 꽤 여러 개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은 도록처럼 책에서 펼쳐볼 수 있는데,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품도 그 중 하나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9장으로 나눠 그린 이 작품은 세계 최대 크기의 벽화로 - 당시 33세(현재 나랑 동갑이라니!)의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부름을 받은 지 4년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4년 동안 천장에 매달려서 고된 작업으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미켈란젤로는 작품을 완성한 후 눈, 목, 허리 등에 온갖 병과 질환을 얻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그가 남긴 ‘나는 큰 불안과 육체적 피로 속에 살고 있다. 음식을 먹을 여유도, 친구도, 숨을 돌릴 시간도 없다’는 메모에서 처절했던 고난의 시간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해 바티칸 시티 투어에서 지난한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는 순간, 미켈란젤로의 몸과 마음을 희생해 만들어낸 걸작인 천장화와 벽화는 나의 시선 뿐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압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순적이게도 드넓은 천장에 입혀진 그림들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가 느꼈을 고난과 역경에 대해 떠올리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주위에 있던 많은 관광객들도 나랑 같은 마음인지 “이렇게 잠시 고개들어 쳐다보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이걸 혼자 다 그렸을까” 라며 입 밖으로 되뇌이고 있었다. 아마 나의 마음과 같이 감탄과 비애가 함께 섞인 말이었으리라. 그가 바친 시간과 고통과 역경은 결국 한 인간이 홀로 창조해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세계 최대의 천당화로 재탄생되었고, 그와 동시에 인간이기에 유한했던 미켈란젤로의 생애는 반영구적인 불멸의 존재가 되어 2024년 지금까지 인류와 맞닿고 있다.




인류 역사에 남을, 신에게 바치는 걸작을 완성해 내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던 물리적 조건인 인간의 몸, 인간의 도구들로만은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아마도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탈인간적인 의지와 집념, 책임감을 넘어선 중압감을 가져야만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이러한 탈인간적인 의지, 집념, 책임감 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그의 몸과 정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 작품을 완성하게 만들었던 원동력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라는 물음이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의 인류조차도 이게 말이 되는 작품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 작품을 완성하도록 그를 이끈 의지는 대체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성 베드로 성당에 와서도 그 의문이 계속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노동집약적이기에 사치스러울 만큼 아름다워서 위대한(내 입장에서는 다소 모순적인), 신을 위한 작품들은 일반의 존재들에게 종교와 신이란 전지전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마 그 것이 당시의 종교인들이 원하는바였을테고. 결국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 종교를 이유로 하여 만들어낸 걸작은 강렬한 믿음을 낳고, 그 믿음은 또 다른 신을 위한 걸작을 만들어 내는데 영향을 줬을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의미에 나는 자꾸 왜 그래야만 했는가, 를 되묻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종교’가 가진 힘이었다 라는 대답은 명확하고 간결하기는 하지만-어떤 인간이 자신이 가진 육체와 정신을 희생하면서 아무런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는 이유라고 하기엔 너무 단순한 대답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걸작을 만들어 내는 것도 모자라 인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사건들을 촉발시켰던 힘이 바로 종교였다는 사실을-종교도 없고 예술가적 거장의 능력도 없는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이야기였다. 전제 자체부터가 틀려버린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차라리 그들을 움직였던 ’인간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라고, 어쩌면 좀 불경한 생각을 되뇌이며 바티칸을 떠날수 밖에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렇듯 불경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첫번째 이유는, 나라는 인간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난 인생에 단 한 순간도 종교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가져 본적이 없다. 어딘가에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가 현실에 발붙이고 운영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변질성과 비상식적인 모습에 진저리가 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종교에 마음을 두고 위안을 얻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다 - 그저 내가 굳이 종교를 가질 생각이 없을 뿐.) 내 스스로가 경험해 본적이 없는 신념을 기반으로 이해해야 하는 사건들이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꽤 오랫동안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던 중, 유시민 작가님의 '유럽 도시 기행' 로마편 바티칸 에피소드를 읽게 되었다. 에피소드를 읽는 내내 같은 맥락으로 공감가는 구절을 찾아냈다. 아마 유시민 작가님도 바티칸 시티에서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당 한가운데 놓인 제대, 제대의 청동 장식, 대리석으로 만든 일곱 계단, 상아로 만든 <성 베드로의 의자〉, 천연 대리석으로 깎아 비둘기와 천사 형상을 그려낸 타원형 창문, 제단 아래 지하에 있는 역대 교황의 관, 성베드로 대성당의 모든 것들이 권력의 광휘를 내뿜었다. 대성당은, 적어도 내게는, 신의 숨결이나 예수의 고뇌를 감지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었다.
저 아이들은 둥근 지구가 국제선 비행기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자전한다는 것을, 그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울 것이다. 바티칸 박물관에 초상화를 모셔둔 교황들은 얼마나 큰 죄악을 얼마나 많이 저질렀던가. 교황청의 권력자들은 자기네가 진리라고 주장해 온 것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죄 없는 과학자를 불태워 죽였다. 그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천국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행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용서할 권리가 있는 사람도, 용서를 청해야 할 사람도 모두 죽고 없으니 말이다.
그래, 종교와 종교권력은 다른 거야. 교황들은 그토록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죄 없는 과학자를 불태워 죽였지만 어떤 이들은 이렇게 절제의 미덕과 사랑의 정신으로 충만한 인생을 살았어. 인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지.



같은 생각이었다. 내 생각에 세속적인 것과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것 같은 종교라는 존재는, 바티칸 시티에서는(물론 당시 기독교 관련 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라면 으레 그렇지만) 가장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대단하다고 우러러보게 되기 보다는 불편했다.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어떠한 개인의(다시 말해 주로 멸시받는 평민들이자 기술자들의) 고난과 노력이 수반되었을테고, 과연 그 노력에 대한 대가는 충분히 받았을 지 의심이 갔으며(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죽으면 천국에 갈 가는성이 높아진다는 평가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걸 죽을 때까지 누리는 인간들은 엉뚱하게도 당시 어쩌다 권력을 보유하게된 종교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보유한 종교권력을 내세워 개인의 자유을 빼앗고 진리를 주장하는 인간을 고통받게 했으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았다. 종교권력이란 절대 권력이었다. 이 내용을 읽고 나니, 내가 바티칸에서 느꼈던 의문과 불편함이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가 그려낸 시스티나 천장의 벽화를 보면서 이 작품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라는 ‘신념’ 그 자체에서 불과했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신념이 대체 어디까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도록 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종교도 없고 신념의 경험도 크게 없던 내가 답을 얻지 못하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유시민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종교'가 아닌 '종교 권력'에서도 함께 비롯된 것이라면 훨씬 더 이해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켈란젤로가 인류의 역작을 만들어 내도록 그를 부추겼던 것은 종교에 대한 신념, 신실함이라는 요소도 분명이 있었겠지만 현실적으로 '종교 권력'에 거부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교황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여 작품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고 한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해야 했던, 그 결과물로 노동집약적이며 사치스러울만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써 자신의 신앙심을 증명해야만 했던 절박함은 아니었을까? 종교권력, 결국 그게 그가 가진 천재성을 무한히 발휘하게 만들었던 중요한 영향력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 과정이 어땠을지를 상상하는 것을 일단 차치하고, 확실한 건 그 당시의 역작은 여전히 인간들에게 충격적인 황홀함을 선물하는 역작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재를 몸과 정신을 갈아넣어 몇백년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탈인간적인 역작을 창조해내게 한 당시의 종교관에 결국 고마워해야하는 건가,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왜 자꾸 나는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려 허리를 꺾어 그림을 그리며 홀로 감내하며 겪었을 개인적인 고뇌와 고독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걸까. 난 그가 가엾다.


다음 번 다시 시스티나 성당에 올 기회가 있다면, 그 땐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성숙한 내가 되길 바라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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