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누군가에는 성가신 작은 곤충이자 비위생의 상징 같은 초파리...
나는 이 초파리들의 짝을 맺어주는 굳이 표현하자면 일종의 성혼을 돕는 듀오 같은 (1인) 기업이었다
수만 쌍의 짝을 지어주고, 그들의 소중한 자녀들을 보살피는 게 나의 일이었다.
사람과 조금 다르다면 일부 일처제가 아닌 의도적으로 일부다처제로 짝을 맺어줬는데,
순전히 그들을 번성하게 하는 데는 그 편이 더 유리해서였다.
짝을 맺어주는 방법은 간단했다.
내가 그들에게 제공했던 것 요구르트 크기의 룸 안에 그들이 평생 먹어도 다 해치우질 못할
주로 설탕과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식사 고작이었지만, 그들의 천적도 없이 내 기준으로 아주 행복하게
잘 지냈던 것 같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없었지만, 힐튼 호텔에서 평생을 산다고 해야겠다.
보통 수컷 세 마리와 암컷 여섯 정도가 적당했던 것 같다.
공개된 장소에서 그들이 사람을 나누는 시간은 길게는 30분이 넘었다.
그들의 수명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이 시간은 2주가 넘는 시간이다. 이렇게 긴 시간
사랑은 나누고 나면 같은 방은 다른 짝은 결코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고, 평생의 첫 번째 짝과 사이에
자녀들을 낳으면 일생을 마무리하는 게 보통의 암컷의 숙명이었다. 일종의 정절을 지키는 암컷과 달리
수컷은 얌체다. 하지만 어쩌다 방안에 한 수컷이 모든 암컷과 짝을 맺고 나면 나머지 두 마리 수컷은
여섯 마리의 암컷을 두고도 숫총각으로 삶을 마무리하고, 그들의 쓰러진 몸은 얌체 같은 수컷을 아비로 둔
구더기들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
간혹 잘 차려놓은 밥상에 보란 듯이 앉아서 우리를 노려보는 파리들은 사실 그들 자녀에게 아무런 교육도 없이 세상이 내놓는 그들의 일종의 양심에서 나온 엄마의 모성이였을 지도 모른다. 위험을 무릅쓰고, 마치 좋은 교육을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스카이캐슬의 엄마의 마음처럼 풍족한 환경에 자녀가 자라길 기원하는 엄마의 마음이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사악하게 팔을 휘둘러 그들을 쫓고, 숟가락에 들어 우리 입 앞에 떠 넣을 그 밥알 사이에는 사실은 그들의 미래의 깨어날 자녀가 잘 자라길 기원할 엄마의 마음이 녹아들어 가 있었을 것을 우리 무시했을 뿐이다.
언급한 야생의 그들과 달리 내가 짝을 지어준 커플들에게 이런 가슴 아픈 일은 잘 없다. 되려 열흘만 지나면 그들의 자녀이자, 날아다니는 이 작은 성가신 존재보다 더욱 혐오하는 구더기로 버글버글해졌다. 충실한 나의 직업 정신 탓인지 그들의 훌륭한 삶의 경영 방식 탓인지.. 그들의 낳을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자녀들을 낳았고, 자녀를 위한 그 어떤 육아 지원도 없는 매정한 부모 아래서도 매우 무럭무럭 통통하게 잘 자랐다.
잘 자런 구더기들을 서로 몸을 엉키며 힘차게 꿈틀거릴수록 내 마음도 든든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이 아이들은 지켜보는 나는 어떤 변태인가? 나는 왜 이런 '혐오스러운' 작은 곤충의 삶을 지켜주는 일을 택하게 되었는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