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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Oct 30. 2023

중국어 교사의 기쁨과 슬픔

오늘도 요동치는 중국어 교사의 마음


“ 내년엔 중국어 교과에서 겸임 나갑니다.”

코로나, 신장 자치구, 홍콩에서의 인권 침해 등의 소식이 널리 보도되며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커졌다. 중국어 학습에 대한 열기는 급속히 사그라들어 여러 가지 어려움을 토로하는 동 교과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17년 만에 나도 드디어 겪게 되는 순간이다. 일주일에 이틀은 다른 학교 수업을 지원 나가는 겸임 생활, 낯선 학교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을 내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속에 돌덩이가 쿵하고 내려앉는다.

 끝없는 굴 속에 갇힌 것 같았던 고시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넘치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신규 교사 시절, 고3 진학담당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모의고사 철에는 자습 주세요.”, “상위권 아이들에게 중문과 바람 넣지 말고.”

어머나! 나의 사랑 중국어는 이런 푸대접을 받고 있구나…

심장을 후벼 파는 말들은 아무런 방비 없이 내 마음속 벽에 차곡차곡 박히고 쌓여 너덜너덜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매해 거르지 않고 전과 신청 공문이 날아오고, 연초 전보 인사 공문에는 전과한 선생님들의 이름이 보였다. 나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 맞을까? 깊은 슬픔과 씁쓸함에 휩싸여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 해 교육과정이 꾸려질 때, 선택 비율이 어떤지, 겸임을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는 거의 공황장애 수준이다. 입시 교육에 적응하느라 바쁜 학생들의 의미 없는 선택에 매해 가슴 졸이는 이 리추얼, 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무기력감이 엄습해 온다. 학교에 동 교과 선생님이 없기에 혼자 끙끙 앓으며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이다. 평소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는 유형인 난 두근대는 심장 소리와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는 광대의 불편한 움직임을 꾹 참아내며 입을 떼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학생들과 만날 수 있는 안정적인 조건을 지키기 위해서.


 나의 슬픔에 대해 다정한 지인들은 안타까워하며 들어주지만 나를 일으켜줄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다. 이 절망으로부터 날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내가 기운을 차려야 했다. 이 애증의 중국어를 벗어나 마음이라도 편하게 살아보자고 전과 공문을 읽어본다. 중국어를 가르치치 않은 내 모습이 내키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중국어와 가르치는 일은 매우 소중하므로. 이 현실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결혼 후 타지로 주거지를 옮길 때 10년 만에 임용고시를 다시 치른 이유이기도 하다. 또랑 또랑한 눈빛으로 질문하는 학생들을 생각하며 기운을 내보기로 한다. 입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보자. 주말 내내 새로운 수업 방법을 연구하고 동영상 편집, 웹툰 앱을 이용한 프로젝트 수업을 기획했다. 학생들과 생생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그래 이 맛에 하는 것 아니겠어? 덧난 상처에 약을 한 겹 또 바른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뭔가를 배울 때 나는 평소의 나보다 확실히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열망은 유독 외국어에 집중되었다. 중학교 1학년때 처음 배운 영어도 고등학교 때 처음 배운 일본어도 어쩜 그리 재미있는지. 고3 10월, 정신없이 바쁘고 불안한 수능을 한 달 정도 남긴 그 어느 날, 갑자기 배워보지도 않은 중국어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노래하듯 음의 높낮이가 있는 이것은 또 무엇인고. 그렇게 나의 중국어 인생은 시작되었다.

 사스(SARS) 이슈로 시끄러웠던 바로 그 해, 나는 사스의 발원지인 베이징에 있었다. 유학생의 90%가 귀국했지만 나는 차라리 캠퍼스에 갇히는 쪽을 선택했다. 나만큼이나 무모했던 여러 나라의 학생들과 연구하고 토론하는게 우리의 팬데믹 일상이었다. 우리는 치열하게 배움에 몰두했고 부지런히 내면을 채워갔다. 그 충만한 느낌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손에 잡힐듯 생생하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헛헛한 마음은 온라인상에서 중국어 통역가, 번역가, 강사님들과 소통하며 치유하고 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읽어 나간 두꺼운 원서는 한 권 한 권 책장에 든든하게 늘어가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영어, 독서, 사진, 운동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17년 차 교사. 이 정도 경력이 되면 걱정 없이 안정된 삶을 누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꿈을 운운하며 살게 될 줄이야. 고요한 새벽에 차 한잔 앞에 두고 다짐한다. 닥치지 않은 일까지 지레 겁먹고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속 끓이며 살지 말자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나를 단단하게 잘 키워보자고.

 

얼른 출근 준비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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