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용지는 어떻게 고를까

내 디자인을 구현하는 현실 감각

by 고경아

패키지 디자인에서 용지를 결정할 때 유독 고민을 많이 한다. 예산, 내구성, 재고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가장 번복하기 쉬운 단계이기도 하다. 단순히 저렴한 용지, 발색이 좋은 하얀 도화지를 찾는다고 생각하면 쉽지만, 브랜드가 입을 옷의 '원단'이자 소비자의 손끝에 가장 먼저 닿는 브랜드의 '피부'라고 생각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오늘은 평면의 일러스트레이터 파일에 용지라는 온도와 무게를 더하는 일, 우리 프로젝트에 적합한 종이를 찾아내는 실무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가장 설레면서도 고민의 연속인 용지 고르기



1. 예쁜 종이의 함정: 종이와 판지의 구분

패키지 디자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샘플북을 보며 가장 흔하게 했던 실수가 있다. 화려한 컬러와 질감에 현혹되어 이것저것 고르다보면 사실 패키지에 적합하지 않은 용지일 때가 많았다. 일반 인쇄 용지 코너에서 보기에 예쁜 종이를 고른 탓이다.

패키지는 초록색만 보면 됩니다


인쇄 용지는 종류가 아무리 다양해도 패키지에 바로 적용하기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종이의 무게와 두께를 의미하는 '평량'이 낮다. 패키지의 광고 기능을 감안하더라도 우선 내용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데, 낱장의 인쇄물이나 책의 내지용으로 만들어진 평량의 종이로는 형태를 지탱할 수 없다.


그래서 인쇄 용지가 아닌 빳빳한 힘과 두께를 가진 판지(board)를 뼈대로 사용해야 한다. 그래서 화장품이나 제과 상자에 쓰이는 매끄러운 백판지류와 충격 흡수에 강한 택배 박스용 골판지가 패키지 디자인의 가장 자주 쓰인다. 물론 용지의 발색과 질감은 인쇄 용지가 훨씬 좋아서 합지 과정을 거치면 패키지에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추가되는 공정에 따라 견적과 제작 기간도 늘어나므로 꼭 필요할 때만 합지하는 걸 추천한다.



2. 하얀 도화지의 표정을 만드는 4가지 기준

가장 흔하게 쓰이는 백판지라 할지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세상에 똑같은 하얀색은 없다. 종이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은 크게 4가지 특성이다. 얼마나 하얀가를 따지는 백색도, 표면이 얼마나 고르고 매끄러운지를 보는 평활도, 빛을 얼마나 반사하는가를 결정하는 광택도, 그리고 잉크를 얼마나 잘 머금고 뱉어내는지를 뜻하는 인쇄 적성이다.


분류가 이렇더라도 수입지/특수지로 가면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이 4가지 특성의 배합 비율에 따라 용지는 '도공지', '러프 그로스지', '비도공지' 3가지로 분류한다. 인쇄 적성이 부족한 비도공지의 단점을 도공지로 보완할 수 있고, 둘의 장점을 합쳐 놓은 게 러프 그로스지다. 디자이너는 이 특성과 분류 체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우리 프로젝트의 컨셉과 예산에 딱 맞는 용지를 잘 골라낼 수 있다.



3. 백 가지를 아는 것보다 하나를 잘 활용하기

샘플북에 있는 수백 가지의 용지 이름을 모두 외울 필요는 없다. 게다가 개성 강하고 값비싼 용지일수록 용지 수급이 불안정하므로, 디자이너들이 자주 쓰는 용지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실무에서 진짜 필요한 능력은 수많은 종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자주 쓰는 익숙한(=용지 수급이 원활한) 용지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요리조리 조합하고 활용하는 센스다.

복잡한 오시선이 들어갈 때 점검해야 하는 3가지

독특한 지기 구조를 위해 종이를 오시선(꺾고 접는 선)이 복잡하게 들어가는 패키지라면, 발주 전에 반드시 3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는 종이가 찢어지지 않고 접히는 종이결의 방향, 둘째는 합지하거나 배경까지 풀 컬러 인쇄를 할 때 보이는 용지의 단면, 셋째는 인쇄면이 터지는 것을 방지해 줄 코팅의 유무다. 잘못 발주하면 제작 업체에서 짚어주는 경우도 있지만, 실컷 정해놓은 제작 사양을 갑자기 바꾸느라 진땀 빼고 싶지 않다면 디자이너가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질감과 내구성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법

종이 질감은 거칠게 살리고 싶은데, 내구성 때문에 백판지를 사용해야 한다면? 전면과 후면의 질감이 다른 백판지의 특성을 반대로 활용한다. 후면은 도공을 거치지 않은 러프한 질감을 갖고 있으므로 전면이 아닌 후면에 인쇄와 후가공을 하는 것이다. 후면의 러프한 질감은 단순하고 여백이 많은 디자인일수록, 유광 질감을 가진 후가공과 함께 사용할수록 효과적이다. 물론 후면은 외부 자극에 취약하다는 비도공지의 단점을 감안해야 한다.


단면 용지를 사용할 때의 디테일

광택감을 위해 증착지를 사용할 때 디자이너는 상자를 조립한 겉모습만 생각하면 안 된다. 소비자가 뚜껑을 열었을 때 투박한 안쪽 면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언박싱의 순간'을 고려해야 한다. 내부(후면)가 최대한 덜 보이도록 구조를 설계하거나, 후면 전체를 컬러로 덮어버리는 풀 컬러 인쇄를 추가해서 단면 용지 사용이 하나의 디자인 의도로 보여야 한다.




종이 선택 = 디자이너의 현실 감각을 증명하는 일

제지 회사는 꼭 수시로 들어가서 보세요

모니터 속 픽셀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우리가 만드는 패키지는 철저히 현실의 물리법칙 아래에 놓여 있다. 제품(내용물)에 맞는 두께의 용지를 사용하고, 용지의 장단점을 적절히 활용해보자. 용지의 선택과 조합의 과정은 단순히 '예쁜 껍데기'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어떤 감각으로 닿을 것인지, 현실의 제약 속에서 얼마나 영리하게 자신의 매력을 증명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전략이다.



비슷한 듯 모두 다른 용지의 세계. 그래서 재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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