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복지 국가로 대표되는 핀란드에서의 2개월 간의 생활을 마치고, 2019년 5월 루마니아로 넘어갔다.
루마니아는 1989년까지 공산주의 독재 국가였기 때문에 경제 성장이 늦게 이루어졌다. 더딘 성장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 거리, 학교, 사람들의 시선에 녹아 있었고 때로는 그런 점이 매력이 되기도, 불편함이 되기도 했다.
루마니아의 5월은 한국의 한여름을 방불케한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초겨울 날씨였던 핀란드에 있었던 터라 후끈한 공기가 낯설었다.
루마니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AIESEC 피켓을 들고 날 기다리고 있는 3명의 AIESEC 대학생 친구들이 있었다. Rima, Oana, Andreea. 대학교 1학년 새내기인데 훨씬 더 성숙해보였다. 눈화장을 스모키하게 한 탓인 것 같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기숙사 타운으로 이동했다. 우리나라는 대학 캠퍼스 안에 기숙사가 있지만, 루마니아는 대학들의 기숙사가 모여있는 타운이 있다.
나는 West University of Timisoara 의 기숙사를 제공받았다.
https://maps.app.goo.gl/jv4PXXZ59jYNGprT7
계단을 올라가자 허름한 복도가 무뚝뚝하게 펼쳐져 있고, 복도를 따라 양 옆으로 각 기숙사 방의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내가 혼자 쓴 방은 2인실이였다. 작은 스토브와(한 번도 쓴 적 없었던) 두 개의 침대, 화장실이 딸린 괜찮은 방이었다. 벽은 그냥 흰색 페인트. 나무로 된 가구. 무뚝뚝한 방이었다.
녹록치 않았던 루마니아 생활에서 내게 안식처가 되어 주었던 고마운 방. 타지에서 온 봉사자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숙소를 구해준 AIESEC 친구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래도 국가마다 사정이 다르다보니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에어컨이 없다.
루마니아는 5월부터 정말 습하고, 정말 뜨겁다. 나는 평소에 웬만해서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체질인데, 자고 일어나면 베갯잇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이런 날씨에 에어컨이 없다니..
저녁에 개운하게 샤워하고 나와도, 몇 분 지나면 땀이 나기 시작한다.
에어컨은 기숙사에만 없는 것이 아니다. 버스와 트램, 많은 음식점과 카페를 비롯한 관공서에서도 에어컨이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금연 구역이 따로 없다.
에어컨이 없다보니 창문을 살짝 열어 놓고 자야 한다. 그런데, 1층 화단으로부터 올라오는 담배 냄새... 그것도 매일매일! 매일 밤마다 침대 위에서 담배 연기에 켁켁대곤 했다. ㅠㅠ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루마니아는 거리에서도, 야외 테라스 식당에서도, 기숙사 건물 바로 1층에서도, 담배를 서슴지 않고 피우는 분위기였다. 흡연 인구도 훨씬 많고, 담배도 굉장히 독한 것을 피운다. AIESEC 친구들을 만나면 늘 그 테이블에서 두세 명은 그 자리에서 담배를 태우는 정도였으니..
여하간, 루마니아를 떠올린다면 독한 담배 냄새를 빼놓을 수 없다.
다음 두 가지는 불편한 점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화적 차이라고 볼 수도 있는 점들이다.
남녀 공용 기숙사
내가 한국에서 다녔던 대학에서는 남자 동, 여자 동이 따로 있었다. 대부분은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루마니아에서는 건물과 층을 구분하지 않는 남녀 혼용 기숙사이다. 아무래도 타지에 홀로 온 20대 동양인 여성으로서, 조금 더 조심하게 되는 환경이었다.
조명이 별로 없다.
루마니아는 실내든, 거리의 가로등이든 빛 공해를 최소화하는 것 같다. 기숙사 내부에서도 복도와 중앙 홀은 형광등이 없거나 꺼진 상태가 대부분이었다. 거리에도 광장은 화려하고 따뜻한 가로등들이 있지만 광장을 벗어난 거리에는 가로등이 거의 없어 해가 지면 몇 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는다. 장점은 밤이 정말 칠흑같기 때문에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것. 단점은 밤거리가 어두워 무섭다는 것.
불편한 점이 있었기에 오히려 좋았던 점은 과거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ㅋㅋ
이런 게 동유럽 바이브인가. 과거 공산주의 시대의 분위기의 흔적인가. 이런 생각도 해보고. ㅎㅎ
우리 엄마가 만약 대학시절에 유럽으로 교환학생 왔다면, 아마 이런 기숙사에서 지내고 이런 거리를 걸었지 않았을까 하는 파워 N다운 상상까지.
어느 나라든
그 국가 특유의, 바깥 사회 분위기가 실내 인테리어에서도 녹진하게 묻어나는 것 같다.
루마니아 기숙사는 단촐하고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 유구하고 무거운 역사가 녹아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