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남해

그저 남쪽의 바다인 줄로만 알았던 그곳

by 휴선


남해.

그저 남쪽에 있는 바다가 아니었던가?


내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올린 건 서해였다. 무식하게시리. 단순히 어느 방위에 위치한 바다를 칭하는 말로 착각한 것이었다.

하물며 강원도의 동해 시도 있는데 남해인들 없었을까? 서른 두 해를 사는 동안 쌓은 견문이 고작 이 정도라니.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처음 남해로 향하는 운전대를 잡으면서 옛 시절 이과생이었다는 알량한 변명을 방패 삼아 한국지리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함을 꼼꼼 숨기려 했다.


남해군.

교량이 이어진 덕에 육로가 개통되어 순수한 고립의 매력은 잃은 육지이자 섬. 그러나 여전히 바다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색만큼 흡사 제주도와 풍경이 비슷할 거라는 추측과는 달리 의외로 산지가 많아 언덕이 계곡의 물길처럼 굽이치고 그 경사 또한 상당히 가파른 곳이었다.


조악한 구시대 폰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남해의 아름다운 전경

한참을 이어진 고불 길을 넘자 에메랄드 빛 바다가 품고 있는 그림 같은 초록 마을이 나를 반겼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이 풍경은 봄날에 막 피어난 수목원의 꽃처럼 사방팔방에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침내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비밀의 섬을 발견한 나는 첫 항해를 앞둔 젊은 선장이라도 된 듯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첫 남해 여행은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장시간 운전으로 제일 먼저 요기나 할 참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구수한 사투리가 들렸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바글거리는 조금은 허름한 가게였는데 기분 탓인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원래부터 서로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하필 중앙 자리를 떡 하고 차지해버린 나는 왠지 성스러운 영역이라도 침범한 이방인의 심정으로 음식을 해치울 때까지 조용히 이질감을 즐겼다.


여행기간은 총 4일. 언급한 식당을 시작으로 남해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각양각색의 장소들을 전전했다. 그중에는 디저트가 독특하다는 찻집이나 흔한 메뉴의 음식점, 군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자연 관광지도 있었다.

한 번은 그냥 길가다 경치가 좋아 차를 세우고 더운 바람을 맞으며 잠시 머물러 있기도 했다. 그러다 조금 무료해지기라도 하면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사실 '뭐가 맛있었고 어디가 좋았다더라' 하는 진부한 내용이나 주절거리려고 요번 여행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 내가 발견한 남해라는 지역에 스며든 ‘오묘한 기운’을 주절거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는 좀 과하게 감상적이었고 따라서 누군가에겐 이 글이 그저 두서없는 감상평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 맑은 날씨는 둘째치고 여느 관광지처럼 득실거리는 관광객으로부터 오는 피로감을 피했다는 것만으로도.

코로나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평일이라서? 어딜 가든 사람이 없었고 때론 여행이 너무 단조로워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남해를 전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런 무료함을 견뎌야만 한다. 어쩌면 이것이 이번 여행의 핵심이자 남해에서 통용되는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남해인.

남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설사 그들 스스로는 느낄 수 없을지언정 적어도 내가 보는 관점에선 그랬다.

개인의 성격과 비교하기엔 그 결이 조금 달랐는데, 쉽게 말해서 이곳 삶에 적응하고 나서 얻게된 일련의 향기랄까? 마치 허브처럼. 나는 독특한 향기를 지닌 이들에게 '남해인'이라는 별칭을 부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향기는 남해 이곳저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

이번 여행에서 나는 운이 나빴다. 사실 남해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의외로 긍정의 느낌표가 아닌 부정의 물음표였다. 본래 관광지라 함은 성수기에 물 밀듯이 밀려오는 관광객들의 피를 빨아먹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외부인들과의 접점을 만드려 하는 게 일반적이나, 남해는 달랐다.

이놈의 도시는 저녁이 되면 무섭게 가게들이 셔터를 내리고 하물며 영업일이라 안내한 날에도 심심찮게 문을 닫아 외부인들과의 접촉을 차단했다.


참나!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고 도착한 장소에서 수차례 'Closed'라고 걸려있는 팻말을 목도하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남해에 정착한 파독 광부의 후손들이 유럽의 관광지라도 벤치마킹한 것일까? 찾아오는 이에 대한 배려심을 망각한 것으로 보이는 이기심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비가 와서 그런 걸까? 가게 주인 대신 꾀죄죄한 고양이가 대신 맞이해주었다


헛걸음을 할 때마다 오해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방문객의 입장에서 조금은 제멋대로인 운영방식에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다. 다섯 시면 해가 지는 아이슬란드에 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갑자기 궁금했다.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남해인들은 타인이 중심이 아닌 자신을 위해 집중하는 삶을 사는 듯했다.


남해인들은 매사에 급하지 않고 여유가 넘치는, 그들 특유의 성미를 지녔다. 빠른 속도가 성공의 원천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한국인의 상징이 무색할 정도의 차분함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람까지도 느긋하게 만들었다.


직접 마주해보니 제멋대로인 운영방식과는 달리 모두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친절함이란 말보다는 분명 따뜻함이라는 말이 어울리리라.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그랬다. 향기가 그랬다.

그러다 문득 대화가 종지부를 찍을 무렵에는 ‘이곳에선 어딜 가시든 반드시 전화를 해보고 가셔야 해요.'라고 충고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한 방 맞은 듯했다. 남해인들은 이미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실존하는 불편함에 대해서.


충고를 건네는 그들의 어조에는 문제점을 해소하려는 일말의 의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바뀔 수 없는 절대 진리처럼. 처음에는 과연 관광업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싶었지만 곱씹다 보니 간과한 게 있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긴 하나 그들의 영역이 자신들의 관점에선 관광지가 아닐 수 도 있다는 것. 행복을 찾아 헤매다 마침내 정착한 그들만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는 것. 방해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진정한 남해인의 향기를 품기 위해선 또 다른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 포용해주려는 게 아닐까?


과연 뭍에서도 그들처럼 살 수 있을까?


여행의 마지막 밤을 남긴 저녁. 대수롭지 않은 양상 속에서 싯다르타급 깨달음을 얻은 내가 왠지 바보 같았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 동안 풍화되어 달걀만큼 맨들맨들한 돌멩이들이 하늘의 별처럼 쌓여있는 해변가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곳 역시 한적하다 못해 공허했다. 그나마 철썩 파도가 때려 생긴 적막함의 틈을 물길에 쓸린 돌멩이들이 둔탁하게 딸칵거리며 속속 채워주었다.



홀린 듯 자연의 소리에 취해 있자니 남해에서 지낸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고작 3일이 30일처럼 다가왔다. 얼떨결에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이곳에선 시간의 흐름이 아주 천천히 흐르는 듯 느껴졌다.


위협적이지 않은 파도가 발 밑까지 차올랐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도 남해인이 될 수 있을까? 비록 정신없이 치여 하루가 부족한 뭍에서 산다 할 지라도 남해인들과 같은 향기를 지닐 수 있을까? 행복한 내 인생을 위해 좀 더 본격적일 수 있을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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