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려운 존재, 죽음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들」

by 휴선

어느 누군가가 말했다. 자신이 죽음 공포증이라는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정신과에서 정확한 확진을 내리지는 않았으니 '~것 같다'라는 추측체로 말했다. 보통 가장 흔한 고소공포증, 대인공포증, 몇 년 전 흥행했던 드라마에서 나와 유명해진 폐소공포증, 환 공포증 등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공포증이 있지만 '죽음 공포증'이라니 말로만 들어도 무언가 두려움이 밀어닥친다. 죽음 공포증이란, 단어 뜻 그대로, 자신이 죽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일반인들 보다 심하게 느끼는 정신질환의 일종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Tharanphobia 혹은 Death phobia라고 불리는 이 평범하지 않은 정신질환은, 시체를 보면 두려움을 느끼는 공포증과는 조금 다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같은 단어로 검색해보면 이와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 명 보이지만, 실제로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보통 이 꽁꽁 싸매두었던 내면 속 고민을 주변인들에게 봉인 해제했을 때 반응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실소를 터트리며 그게 무엇이냐고 되묻거나, 짤막한 대답을 하고는 다른 화제로 넘어가기 일쑤다. 주변인들이 인간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만큼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Afp9QvN-xZY47VyrhyQwmWbU9oE 출처 : http://ho-soo.tistory.com/25


따라서, 좀처럼 설명을 꽤 자세히 해도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주제이다. 필자가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간의 공감을 해주는듯한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주로 '당연히 죽는 게 무섭긴 하지'에서 쉽게 결론을 내리려 든다.

이런 고민의 시작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대부분 아마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생각했다고 한다. 막 2차 성장기가 지날 무렵, 자아가 형성되어 생각이 많아지고 투덜 거리는 사춘기라 불리던 그 시절부터, 시작도 제대로 안 한 햇병아리가 인생의 끝을 걱정하고 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난 후, 꽤나 오랜 고민 끝에 얻어낸 이 정신병의 원인은,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스스로에게 크게 적용이 되는가'에 따라 정도가 다르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조금 쉽게 풀어서 비유를 들자면, 자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 나의 시작은 무엇이고 도대체 왜 태어났으며, 나의 삶이 끝난 이후에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의구심. 심지어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도 가끔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나라는 존재가 부재한 세상은 분명 또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의 끝은, 내가 소멸된다는 결말이 두려워, 우울해지거나 무기력해지고, 혹은 숨이 가팔라지기까지 하는 이상 현상이 일어난다. 모두가 죽는 게 이 세상의 순리이지만 그것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이 상황을 힘들어한다. 그리고는 젊은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주변 친구들을 통해 깨닫는다.

반대로, 안타깝지만 죽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여러 유명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히 일어났다. 그들은 남들보다 빼어난 외모, 많은 자산을 가져 행복할 것이라 추측되는 것과는 달리 이 세상에서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에게 크게 느껴지기는커녕 되레 무의미하다 느껴 스스로를 세상에서 지우려 수명을 앞당긴다.

몇몇 지인들은 이런 주제를 가지고 토론해 보면 보통 '종교'를 권유한다. 물론 필자 역시 '종교'가 이러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큰 버팀목이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생각의 꼬리를 물고 깊이 들어가 보면, 이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의 뒤에는 소멸만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신이 없다고 믿는다. 원래 믿음은 인간의 거짓된 상상으로부터 오는 허구의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필자가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해열제는 '나중에 가서 생각해보자'라는 미루기식 응급처치 밖에 없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 때가서 다시 고민해 보자는 방법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젊은 20대 30대라면, 아직은 죽을 날보다 살날이 더 많은 병아리이니까, 당분간은 옆에 치워두고 사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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