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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위 Jul 02. 2024

달리다굼

압록강-두만강 접경지역 탐방단 주일예배(2024년 6월 30일)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서 본문은 마가복음 8장 35절부터 43절까지입니다. 교독하시겠습니다.


35.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께서 이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서,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밖에는, 아무도 따라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떠드는 것을 보시고,

39.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떠들며 울고 있느냐? 그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다 내보내신 뒤에, 아이의 부모와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달리다굼!" 하고 말씀하셨다.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거라" 하는 말이다.)

42. 그러자 소녀는 곧 일어나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엄하게 명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뜻 펴기, 일반명사로 설교라는 것은 목사가 평신도를 대상으로 일방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화가 아닌 이상 설교 중간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설교자가 문답형식의 하늘뜻 펴기를 하지 않은 이상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6/25부터 6/29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하고 오늘 같이 예배를 드리는 지금 저는 일방적인 설교자 중심의 하늘뜻 펴기가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일 동안 함께 보고 듣고 느낀 여러 감정과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여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두의 마음에 새겨진 어떤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그 감동, 그 느낌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의 단어에 응축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가운데 제가 여러분 모두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첫날 우리는 점심 끼니를 예상치 못하게 거르고 여순감옥에 갔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당하고 처형당한 그곳. 그곳의 사형장으로 올라가던 길을 기억하십니까?

첫날밤 단동, 동쪽을 붉게 물들인다라는 모택동의 의지가 서린 그 땅에서, 늦은 밤 압록강 강가를 걸으며 강물에 손을 담그며 왜 우리는 감격해야 했을까요?

수풍댐 앞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 강물 따라 유람선을 타고, 가끔은 동포들이 흔드는 손길에 답하며, 뼛속까지 시원한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수풍댐을 만들었던 제국주의 일본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압록강 수풍댐 앞, 차가운 강물에 발을 담그고


집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은 역사교과서에 갇혀있던 우리의 시야를 확 틔워 주었습니다. 백두산 북쪽 능선을 올라 천지를 마주 보고 섰을 때의 그 감동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장백폭포의 장쾌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일제가 설치했던 간도 영사관에 걸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에서 우리 교육의 한계와 협소함에 놀랐습니다. 연길에서만 대항일투쟁으로 목숨을 바친 수천의 인물들 앞에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당시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의 수풍댐을 건설했던 제국주의 일본이지만, 그들이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 기세와 압제에 굴하지 않고 자주민의 염원을 버리지 않았던 그리하여 대부분 생의 가장 찬란한 20대, 30대에 삶을 마감해야 했던 수많은 젊은이를 앞에서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동주시인이 묻힌 곳을 찾아 그 앞에서 함께 추모 기도회를 가진 것은 우리가 세운 계획에는 없었지만 계획의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 또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는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일정 내내 우리를 밀착해 온 중국 당국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우리 차량을 막고 걸어서 이동하라고 요구하였는지 그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용정 언덕길 따라 옥수수밭 사이로 걷는 길은 동주 시인을 추모하기 위한 우리의 마음가짐을 준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동주 시인의 묘비에 손을 얹고


일광산에 올라 북녘 남양시를 바라보며 두만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모두의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입니다. 이제 여정의 가운데 가운데 각자의 가슴을 울린 사건을, 사연을, 사람을, 지명을 그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모두 가슴에 품은 말씀을 한 마디씩 해주시기 바랍니다. (돌아가면서 말씀을 듣는다)


저는 일제의 간도 총영사관(현재 일본군 죄증(罪證) 박물관)에서 보았던 3,234명 연변지역 항일 열사 가운데 꾀꼬리라 불린 12세 소녀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소녀가 어찌나 노래를 잘 불렀으면 꾀꼬리라 불리었겠습니까? 그녀는 누구의 말을 듣고 항일투쟁의 길, 민족독립의 길에 나섰을까요? 예수가 회당장의 딸에게 달리다굼이라고 하자 죽었던 것으로 여겨지던 소녀가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우리는 이번 여정에서 예수께서 소녀에게 말하였던 달리다굼을 들었을까요?

우리에게 달리다굼을 알려주셨다면 우리는 이제 일어나서 어디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요?


압록강 수풍에서 불었던 바람

2600 고지 백두산 천지에서 불었던 바람

두만강 도문에서 불었던 바람

그 차고 시원한 바람에 우리는 흔들립니다. 제국의 힘과 자본의 안온함에 흔들립니다.  


고린도후서 8장 9~15절 말씀을 교독하시겠습니다.

9.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가난하심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 이 일에 내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난해부터 먼저 실행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원하여 한 그 일을, 끝마치는 것이 여러분에게 유익합니다.

11. 그러므로 이제는 그 일을 완성하십시오. 여러분이, 자원하여 시작할 때에 보인 그 열성에 어울리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12.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형편에 맞게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13. 나는,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여러분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형을 이루려 합니다.

14. 지금 여러분의 넉넉한 살림이 그들의 궁핍을 채워 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는, 그들이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15. 이것은 성경에 기록하기를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 것과 같습니다.


지난주 향린과 섬돌의 어린이부가 여름 나들이를 함께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쓴 기도문을 읽고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더 예쁘게 해 주세요.

겉과 속이 더 아름답길 바랍니다.

하느님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게 해 주세요.

그리고 그 돈을 이웃과 나누게 해 주세요.

하느님, 따뜻한 집에서 쉴 수 있어 감사합니다.

또한 소중한 친구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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