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상에 대한 발칙한 상상

주술 vs 공화

계엄으로 절대권력을 욕망했던 자가 슬리퍼를 신고 용상(龍床)에 앉았다고 소란하다.

어좌(御座)는 왕의 공식 의례 공간인 근정전(勤政殿)에 설치되어 있다. 근정은 정사를 부지런히 수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술의 끝은 절대권력이다. 주술에 기대어 욕망에 사로잡힌 자가 절대권력을 꿈꾸며 앉고자 했던 자리는 기실 부지런히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자리다.

근정전 앞에는 광화문이 있다. 세종 8년 집현전 학사들이 경복궁 대문의 이름을 지으며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는데, 이는 시경 光被四表(광피사표) 化及萬方(화급만방)의 첫 자를 집자해서 만든 것이다. 군주의 덕(光)이 사방을 덮고 그의 가르침(化)은 만방에 이른다니 경복궁(景福宮)의 대문 이름으로 光化는 참으로 당연한 작명이다.

계엄 이후 광화문 광장은 빛으로 물들었다. 시민들이 들고 나온 오색의 응원봉 불빛이 그 옛날 학자들이 꿈꾸었던 광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온누리에 넘쳐흐르게 만들었다. 눈발 날리는 혹한의 겨울밤을 지새운 키세스 시위대와 함께 유쾌한 시민들의 혁명이 민주공화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군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군주의 권력은 민주주의를 이룬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어좌에 앉아야 할 사람은 그래서 시민이다. 용상을 쳐다보며 옛 군주의 위엄에 주눅 들어야 할 것이 아니라 당당히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고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자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사람의 손결과 숨결이 닿지 않는 목조 건물은 금방 상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라도 어좌는 시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 이로써 이는 발칙한 상상이 아니라 대담한 또는 당연한 상상이다.

덧붙이는 글: 본문 첫 번째 사진은 올 추석 연휴 때 찍었다. 북악산 오르고 하산길에 경복궁 옆으로 지나게 되었다. 마침 추석을 맞아 무료입장이라 물에 비친 경회루를 볼까 하여 들어서니 조선 태조 개궁 이래 최대 방문객인듯한 인파가 근정전 앞에 넘실대고 있다. 온갖 종류의 피부색을 지닌 왕과 왕비가 즐비하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진실로 옳구나~

이로써 광피사표 화급만방의 정신이 사해동포 이념 아래 오늘에서야 이루어지는구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인 유홍준 선생이 공개적으로 궁궐 입장료를 인상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문화유산을 경제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시점을 살고 있는 국민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모든 세계인에게 궁궐은 무제한 개방되어야 한다. 우리가 민주공화제의 왕이고 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