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Blanc 10

빙하의 무늬

by 무위

나흘째 접어들었다. 산에 이후 비강에 이상 이물질이 고이지 않고 허리도 상태가 좋다. 저녁 아홉 시 반 늦어도 열 시에는 모두들 잠자리에 든다. 아침식사는 7시, 출발은 8. 오전에 주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숨이 턱 막히는 풍광이 있는 곳 또는 해우소가 있는 대피소에서 점심식사.. 오후에는 내리막길 위주의 패턴이다. 산행 마무리는 4시경. 산장에 도착해서 샤워 맥주 한잔, 저녁식사는 7. 몽블랑 트레킹 루트의 산장은 예약하지 않으면 묵을 없다. 기본적으로 모든 베드가 예약되기 때문이다. 식사는 호불호가 갈리는 사안이라 뭐라 하기 어렵지만 저녁은 전식, 메인, 디저트가 기본이다. 가리는 게 별로 없는 나는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맛나게 먹는다. 알코올을 포함하여 음료는 개인 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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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heartbeats are skipped!!
오늘 일정 중에 가장 편한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항상 선택의 기로가 기다리고 있는 .. 예상치 못하게 아마도 가장 많이 걷게 된 날이 것 같다. 18.8km 30000 넘게 걸었다. 점심 이후 갈림길에 섰다. Comfort 옵션을 선택한 일행과 만났는데 우리 일행과 합쳐서 숏팀과 롱팀으로 나눈다고 했다. 오늘 저녁 숙소까지 산행에 한 시간 반 걸리는 코스와 세 시간 코스로.. 무리하지 말아야지한 다짐은 프랑스 아저씨 필립의 꼬임으로 무사가 되고 롱코스로 합류.. 정말 롱롱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숨이 멎을듯한 몽블랑 산군 자락의 위엄을 명확히 확인한 시간이기도 하다. 인생사 다르지 않겠지. 눈물 흘리며 씨를 뿌린 자 거두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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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라고 하긴 거시기 하지만 몇 번 조그만 빙하지대를 통과하며 빙하가 녹으며 만든 무늬를 보며 해안가 바위에 새겨진 물결무늬 문양을 생각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고등어 등에 새겨진 푸른 파도와도 유사하리라. 내가 세상에 수놓은 여러 무늬를 떠올리며 빙하에 얹힌 검은 티끌이 남의 일 같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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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마치고 Bertone 산장에 도착하니 다섯 시 반이다. 도미토리 벙커엔 윗자리 베드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밤엔 천둥 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밤귀가 어두워 우리 집 아이들 애기적 밤에 칭얼거려도 한 번도 깬 적 없어 둔한 인간이라고 타박을 듣던 내가 오늘 밤 두 번이나 깨었다. 새벽에 나가 보니 오스카 안장과 덥게가 가림막 아래로 옮겨져 있다. 노새 담당 마들렌은 오스카를 가족처럼 돌본다. 그제야 퍼뜩 밤에 오스카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급히 발걸음을 옮겨 가보니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이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제 지고 온 사과 한 알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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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사족 1.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자에 대해 글을 쓰려다 깜냥에 어림없는 주제라 생각하고 접다.
2. 아이폰이 가끔씩 배터리가 다되어서 이동한 거리와 걸음수는 실제와 다를 있다.
3. 답장해야만 하는 이메일을 받고 머리 굴리며 몇 통 보내고 났더니 현실의 갑갑함이 엄습하며 산자락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던 상상의 나래가 어느 틈엔가 슬며시 주저앉는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