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제법 길어진 걸 보니 머지않아 매미 소리가 온 동네를 채울 것이다. 여름 준비랄게 따로 있나? 올해는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뒤덮은 역병으로 밖에 나갈 일이 적어져서 새로 산 옷들도 없겠다 봄이 지나도록 옷장에 묵혀 둔 외투를 정리하는데 그 의미를 더하기로 한다. 여름이 좋은 점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옷차림이 간소해진다는 점. 무채색에 센스있는 그림들이 얹혀진 티셔츠와 파타고니아 배기스를 색깔별로 돌려가며 입는 재미가 있다. 가끔 티셔츠 대신 통풍이 잘되는 소재로 만들어진 단추 달린 반팔셔츠와 리넨 팬츠로 '트레디셔널 코리안'룩을 완성할 때도 있다. '여름이 좋냐, 겨울이 좋냐'는 이분법적인 질문에 단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겨울'이라고 말하는 내가 유일하게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에서 그러데, 우리가 여름옷이 없는 이유가 가을 겨울 동안 홈웨어로 사용해서 여름이 왔을 때 밖에 나갈 때 입을 옷이 없다고. 마침 작년 여름에 줄기차게 입고 다녔던 '최애' 주황색 프린팅 티셔츠를 입고 있던 나는 여름마다 옷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처음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