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미국의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ee, 우리나라의 금융통화위원회와 같다)는 매달 매입하던 국채와 MBS의 매입 규모를 매달 150억 달러씩 줄여나가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팬더믹 이후 미국 정부가 펼친 사상 최대 규모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마무리되어감을 알리는 신호탄, 테이퍼링(Tapering)이 시작됐다.
이른바 제로금리 시대가 끝을 고하는 이 시점에서 코로나19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각국 정부들이 앞장서서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었던 이유와 전염병의 확산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돈줄을 조이는 까닭에 대해 몇 차례에 나누어 조금씩 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전염병이 퍼지는데 금리를 내리는 이유
테이퍼링에 대해 얘기하기 앞서, 테이퍼링이 화두가 된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작년 초 코로나19가 팬더믹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커졌다. 전염병 확산의 영향 속에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에 퍼지며 주식은 폭락하고 금리는 급격히 올라갔고 환율 역시 방향을 잡지 못했다.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경기에 대한 신뢰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높은 신뢰와 미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생길수록 금융시장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반대로 불안함이 커지면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특히 코로나19 같이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변수를 마주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의 참가자들은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자금흐름이 위축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고 하니까 좀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당장 내일 내가 알지도 못하는 병에 걸려서 쓰러질 수도 있는데, 예금 이자나 주식의 가격이 중요할까. 한 푼이라도 현금을 들고 있다가 병원에 가게 되면 쓰는 게 훨씬 더 안전한 상황 아닐까. 그럼 당장 가지고 있는 주식을 매도하는 게 우선이다. 이게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한 사람의 본능이다.
한편, 금융은 실물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자금을 유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축이다.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금융을 통해 사업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은 투자자들이 더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채권에 더 높은 이자율을 제시해야 하고, 그만큼 높은 조달비용(이자)을 부담해야 한다. 때에 따라 신용도가 낮은 회사라면 아무리 높은 금리를 제시하더라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게 금융시장의 혼란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며 경제 성장 속도가 둔화되거나 경기가 후퇴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편다. 기준금리를 인하해 자금조달비용의 상승을 막고, 무서워서 아무도 사지 않는 회사채를 대신 사주는 방식으로 멀쩡한 회사가 부도나지 않도록 안전판을 제공한다.
실제 코로나19의 확산 과정에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Fed, Federal Reserve Bank)은 기준금리를 단숨에 1.25%에서 0.25%로 100bp를 낮추며 금융시장 불안을 막기 위한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금융시장 불안과 기준금리 인하
금리인하 + α, 양적완화
여기에 더해 Fed는 한 가지 대책을 더 추가한다.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연방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와 모기지 채권을 연준이 직접 매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에 흘러 들어간 달러는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정책에 활용되며 위축되는 실물경제를 지탱한다. 이를 양적완화라고 부른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강력한 금리인하에도 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면서 연준이 꺼내 들었던 카드이기도 하다.
중앙은행의 자산매입 구조
금융위기 당시와의 차이점은 기존에 국채와 MBS에 국한되어있던 자산매입의 범위를 일반 회사채까지 확대하고, 신규 채권 발행까지 지원하는 등 그 범위와 규모를 큰 폭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의 완화정책 덕분에 금융시장의 불안은 빠르게 가라앉았고, 지금은 오히려 코로나19 확산 이전보다 높은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우리 모두가 경험한 작년의 강세장은 경제회복보다는 이러한 유동성 공급의 힘이 더 컸다고 봐야 한다.
금융위기와 팬더믹 상황 속 연준의 자산매입 규모 비교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지만…
실제로 연준의 대규모 양적완화 이후 주가지수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뛰어넘을 만큼 회복되었고, 채권 금리가 안정되었고, 회사채의 위험 수준을 보여주는 신용스프레드도 안정되며 채권시장 역시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금융시장은 안정되었으나, 여전히 문제가 남아있었다.
완화정책 이후 주식과 채권시장 회복
방역을 위한 봉쇄 체제가 장기간 지속되며 실제 경제활동인구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광범위하게 풀린 유동성에 잠재된 위험이 모두가 예상한 범위를 뛰어넘는 규모로 되돌아왔다. 최근 여러 번 뉴스에 언급되는 인플레이션, 물가상승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이유도, 테이퍼링을 시작하는 이유도 바로 물가상승률에 있다. 각국의 목표치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물가상승률 속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고용추세가 중앙은행을 괴롭히고 있다.
2년 가까이 이어져 온 통화 완화정책에 대해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이 얘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에는 물가상승률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