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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Nov 14. 2022

임산부 아내의 주변을 코로나가 맴돈다.

15. 이번엔 처남이다.

“막내가 코로나 확진되었대요.”


막 샤워를 하고 나온 내게 아내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나의 코로나 밀접 접촉으로 5일간 친정에 가있던 아내가 돌아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아내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쩌지? 나도 밀접 접촉이 되는 건가? 시기가 조금 애매하긴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하기도 힘들 것 같아요.”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내가 돌아왔던 날, 우리는 닷새만에 함께 밥을 먹고 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충만함이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듯한 잠자리였다. 그러던 것이 채 이틀도 되지 않아 다시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될 수 있는 상황.


아내가 친정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왔던 날 저녁부터 처남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미열이던 것이 다음 날 아침에는 제법 높아졌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있던 간이 테스트기를 해보았는데 덜컥 양성반응이 나왔단다. 선명하게 찍힌 두 줄. 코로나다.


아내와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밀접접촉자인 경우는 쉽다. 바로 옆 단지에 친정이 있고, 임신한 아내를 돌봐줄 장인어른 내외와 두 동생이 있다. 나 혼자 집에서 격리하며 주의하면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되니 쉽지 않았다. 내 부모님은 집에서 60 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계시고, 회사에서도 멀어 출퇴근이 어렵다. 그렇다고 어딘가 숙소를 잡고 나가서 지내기엔 애매한 감이 있다. 내가 임신한 것도 아닌데, 임신한 아내를 두고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아내가 많이 아프면 곁에서 돌봐주는 게 맞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집에 남아 아내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이쯤 되면 이제는 운이다. 우리에게 수월하게 아이가 생겼던 것처럼, 이번 위기도 잘 넘어갈 만큼의 운이 우리에게 남아있겠지. 그렇게 믿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처남은 보건소에 가서 정식으로 PCR 검사를 받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무사했다. 아내도 나도 다시 한번 검사를 받았지만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임산부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되나요?


“그런데, 임산부가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되나요? 혹시 유산이 되거나 그런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물었다. 만에 하나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굳이 꺼내고 싶지 않은, 유산이라는 그 단어가 혀끝에 가시가 박힌 듯 걸렸다. 내뱉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단어다.


“음… 그냥, 내가 많이 힘들겠죠.”


“그게 다예요?”


아내의 대답에 내가 물었다.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냐고. 정말 그게 다인 거냐고. 재차 쏟아내는 나의 말에 아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답한다.


“코로나에 걸린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건 아닐 거예요.”


문제는 약이에요. 아내가 말을 잇는다.


“통상적으로 쓰는 약을 쓰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죠. 타이레놀 같은 약도 조심스러울 수 있어요. 내가 증상이 심한데 약도 제대로 쓸 수 없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내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지면 아이에게 타격이 갈 수 있겠지만, 코로나가 아이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상식적으로 그게 맞지. 코로나 바이러스는 호흡기로 전염되고, 대부분 호흡기와 뇌에 문제를 일으킨다. 부수적으로 태아에게 악영향이 갈 수는 있겠지만, 코로나가 이중 삼중으로 단단한 보호막에 쌓여있는 아이의 호흡기와 뇌까지 도달할 마땅한 경로나 방법은 없다. 심지어 태아는 아직 호흡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했다. 코로나에 걸리면 바로 아이에게 반드시 나쁜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뭐였을까. 뭐가 날 그토록 비이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아내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토록 호들갑을 떨며 불안에 발을 동동 굴렀던 내가 조금 한심해 보였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고, 증상이 대단히 심해서 위중증이 된다면 아이도 당연히 영향을 받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아이에게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아직 연구가 부족한 질병이라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게다가 나는 3차 접종까지 모두 마쳤고, 또 굉장히 건강한 상태니까 큰 문제없을 거예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아내가 나를 토닥이며 말한다. 그 묘한 안도감에 불현듯 아내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어느새 아내가 아플 것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잘못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저 아이가 뭐라고 12년 동안 함께한 아내를 먼저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그런 남편을 내 아내는 차분하게 달래주며 웃는다.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 된 기분이다.


아이의 병은 어찌할 수 없어서 더 애가 탄다.


생각했다. 어른들의 병은, 나와 아내의 병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우리 둘 중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린다 해도 큰 패닉이 오지는 않을 듯했다. 그럴 수 있지. 요즘 같은 상황에, 우리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쏙쏙 피해 간단 말인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안 걸리고 잘 피해온 것이 다행일 따름인데.


하지만 아이의 병은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고, 뭐 하나라도 잘못되면 망가질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무게는 잴 수도 없고, 크기는 센티미터 단위로 나오는 저 조그만 것은, 내가 노력한다고 어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노력의 영역은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경우 운이나 운명에 맡겨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낭콩에 난 솜털만큼이라도 위험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쏟아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 운과 운명은 필연적으로 나의 등짝을 후려치게 될 것이라는 게 아이러니다. 죽도록 노력하면 내가 생각은 좀 해볼게. 거대한 존재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 꿇은 듯한 느낌. 불공평하다.  


아무튼.


코로나가 턱 밑까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우리의 걱정과는 별개로 사회는 위드 코로나, 입국자 PCR테스트 폐지 등을 논하며 몇 년 전 코로나가 없던 시절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각자도생의 상황이다. 내가 약자의 처지에 놓인 것. 아내의 임신 전에는 그저 알아서 조심하면 될 것이라던 위드 코로나의 의미가, 이제는 상대적으로 꽤나 큰 위협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 신기했다. 영유아와 노약자가 보는 풍경은 이런 것이겠구나. 아직은 젊고 건강한 내가, 아이를 가짐으로써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경을 보게 되었다. 아이를 가짐으로써, 어쩌면 나는 다시 한번 타인과 세상을 새롭게 보고 배울 기회를 얻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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