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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Nov 22. 2022

임신 12주, 기형아 검사를 했다.

17. 꼬물이는 콧대가 높았다.

“오늘은 기형아 검사를 할 거예요.”


임신 12주에 하는 검사인데, 1차 기형아 검사예요. 아내가 말했다.


“아직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그런 걸 초음파로도 다 알 수 있는 거예요?”


직접 피를 뽑아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기형이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아직 몸도 장기도 다 자라지 않고 제 기능도 못할 텐데. 현대 의학의 신비다. 누군가 그랬던가? 과학이 극도로 발전하면 마법 같은 것이 된다고.


“1차 기형아 검사에서는 투명대라는 걸 봐요. 투명대가 3밀리미터 이상이면 기형아일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2차, 3차 기형아 검사를 받고, 그때는 직접 양수를 뽑아서 검사를 하기도 한다던가 그렇다더라고요.”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을 안고 기형아 검사를 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임신 초반에 자연유산이 많다고 하여 혹시라도 잘못될까 걱정하던 것을, 이제 자연유산 가능성은 대폭 낮아졌다고 안도하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는 기형아일 가능성에 대해 걱정을 하고 앉았다. 혹시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치료할 수 없는 문제라면, 혹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치료비가 필요한 문제라면, 그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까. 아니,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벌써부터 "꼬물아, 꼬물아, 아빠랑 인사해요." 하고 아직 불러오지도 않은 배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는 아내의 마음은 어떻게 보듬어줘야 할까.


이런저런 걱정과 고민을 안고 12주 정기검진 날을 맞이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뚜렷한 해법이나 대책도 세워질 리 만무했다. 행운을 비는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그래도 우리는 많이 노력했잖아. 4년 전부터 엽산도 꾸준히 먹었고,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끊다시피 할 정도로 마시지 않았고. 게다가 운동도 꾸준히 해서 살도 10킬로그램 이상 뺐는데. 이 정도면 우리는 할 만큼 한 거지. 이제는 아이의 운명에 맡기는 게 맞겠지.


다행히 우리 아이는 콧대가 높았다.


“투명대는 1.8밀리네요. 아기가 콧대가 높아요.”


의사에 말에 아내가 안도의 미소를 짓는다. 투명대는 안전권이다. 콧대가 높은 것도 좋은 신호라고 한다. 더불어 팔도 다리도 참 길다. 녀석. 날 닮았구나. 처음으로 배로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아이의 모습이 4주 전과 다르게 무척 선명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여대는 통에 의사 선생님의 손놀림이 바빠진다. 마지막에는 아이가 자기를 찍는 걸 아는지, 카메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 우리 집안은 관종 기질이 강하지. 너도 끼를 물려받았구나. 녀석. 내 새끼 맞네.


“산모분 이 쪽으로 누워보실게요. 아니, 아니다. 반대로. 어… 또 돌아갔네. 바로 누워보실게요.”


너무 건강해서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네요. 힘드셨죠. 고생하셨어요. 의사의 말에 아내가 웃는다. 난 저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아내가 느꼈을 긴장감과 걱정은 내가 가졌을 감정의 크기와 비교도 되지 않았을 테니까. 이 정도 번거로움은 아마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가 건강하다. 너무 건강해서 잘 움직이는 통에 검사가 불편했을 정도였다. 그건 오히려 축복에 가까웠다. 다행히 운명의 신은 아이에게 따듯한 미소를 건네주고 있는 듯했다.


입덧 증상이 좀 나아지고 있어요.


“입덧 증상이 좀 나아지고 있어요. 등 뒤에 달려있던 구토 스위치의 민감도가 좀 낮아진 것 같아.”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바로 누워 자는 아내를 보았다. 한동안 등만 대면 미사일 발사하듯 수직 상승으로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가던 아내가 등을 침대에 대고 잠을 잤다. 어젯밤에는 뒤에서 안아주었는데도 불편하고 불안하니 떨어지라고 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의 백허그였다. 식사 양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밥을 먹은 후에는 불편해하고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먹지조차 못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입덧이 심했던 건 아이가 잘 크고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라요.”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듯 아내가 말했다.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들여다볼 수 없기에, 누가 메시지나 알림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문제없겠지. 괜찮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도 스스로 그렇게 달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고, 의사의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 느끼는 안도감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 아이는 잘 크고 있으니,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면 된다. 열심히 일하러 가고, 아내가 원하는 음식을 조달하는 일.


순간, 내가 어느 원시 부족의 사냥꾼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더 생각하지 말자. 더 깊이 들어가면 깃털 같은 내 성격이 바람을 타고 저 하늘 너머로 훨훨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지금은 내 손에 쥐어진 긴 창 하나와, 저 눈앞에 있는 노루에 집중하자. 아내가 말했다. 오늘 저녁엔 잘 구워진 저 노루고기가 먹고 싶다고. 꼬물이가 말한다. 아빠 힘내세요.


운명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낀다.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12주가 된 꼬물이의 초음파 영상이 불 꺼진 방 천장에 영사기처럼 돌아갔다. 이제는 3차원으로 얼굴 이목구비가 살짝 보이기도 했다. 너무 활발하게 움직여서 영상 길이는 무려 20분을 넘어섰다. 쉴 새 없이 몸을 틀고, 팔다리를 뻗던 아이.


의사가 말한다. 투명대는 1.8밀리네요. 콧대가 높아요.


내가 속으로 답한다. 네, 저를 닮았나 봐요. 저 팔다리 긴 것 좀 보세요.


아내가 말한다. 좋은 싸인이에요. 투명대가 3밀리가 넘어가면 위험하다고 하는데, 안전권이에요. 2차, 3차 검사는 받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깊은 안도감에 웃으며 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뭐든지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나의 어릴 적 힘찬 희망을. 나름 괜찮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느끼는 성인이 된 후의 나를. 여전히 많은 것을 내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찬 내 모습을. 그 모든 시간에, 운명의 신이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거대한 신 앞에 나는 작고 부질없는 티끌이 되어 무릎 꿇는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아이가, 꼬물이가, 내 아내가, 부디 남은 시간도 문제없이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 영역의 것을, 내가 이토록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운명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느끼며, 희미해져 가는 영사기 불빛과 함께 스르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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