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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le Lee Dec 15. 2022

양수검사를 하다.

24.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다.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에 사인해주세요. 그리고 여기에는 보호자님도 사인해주세요.”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와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안내를 받았던 금요일. 가장 빠르게 검사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월요일이라는 안내를 받고 더 물을 것도 없이 진료 예약을 했다. 생각보다 빠르게 흘러갔던 휴일. 그리고 정신없이 찾아온 월요일. 아내와 나는 정밀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았다. 


접수를 마친 후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평소와 달리 간호사가 친히 다가와 서류를 건네주며 친절하게 싸인해야 할 곳을 표시해준다.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던 건 이 서류 때문이었나 보다. 검사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받고 이를 인지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보호자의 싸인. 


니프트와 양수검사가 있습니다.


“진료실로 모실게요.”


간호사의 부름에 손을 잡고 멍하니 앉아있던 우리는 허겁지겁 짐을 챙겨 진료실로 향한다. 삐걱거리는 의자를 빼고 앉아 의사의 설명을 기다린다. 가방을 쥔 아내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가 있다. 


“음… 말씀드렸듯이, 수치상으로 다운증후군 확률이 좀 높게 나타났어요. 정밀검사는 니프트와 양수검사가 있는데, 둘 다 정확도는 아주 높아요. 니프트는 혈액 속에 있는 아이의 유전자를 통해 검사하고, 양수검사는 양수에 들어있는 아이의 유전자를 통해 검사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니프트는 보통의 피검사와 비슷하고 양수검사는 직접 양수를 체취해 검사를 합니다. 양수검사가 조금 더 정확하지만 오백분의 일 정도의 확률로 유산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수검사 비용이 좀 더 높은 편이에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사의 물음에 아내는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아내의 의견에 전적으로 맡기겠다 답했다. 아주 잠시 고민하던 아내는 나의 예상대로 양수검사를 하겠다고 답했다. 니프트 검사를 했다가 다시 고위험으로 나오면 양수검사를 다시 해야 할 가능성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기왕 하는 거면 한 번에 확실한 걸 하겠다는 성격이 또 이렇게 아내의 선택에서 드러난다. 확실하고 분명한 걸 좋아하는 사람. 내 아내는 그런 사람이다. 난관 앞에서 당차게 결정을 내리는 성격도, 딱 내가 아는 나의 아내다. 


“그래요. 양수검사도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게 있는데, 그것까지 하면 가격이 두 배가 될 거예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기본으로만 하시면 2주 정도 후에 결과가 나올 겁니다. 2, 3일 정도 늦춰질 수도 있지만요.”


그럼 보호자분은 잠시 나가서 대기해주세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간호사가 안내한다. 진료실 앞 대기석에 앉아 닫힌 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저 진료실에서 지금 양수검사를 하고 있다. 500분의 1이라면 0.002%다. 겨우 0.002%라고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마치 매주 누군가가 로또에 당첨이 되는 것처럼. 그런 생각이 들자 고개를 젓고 이렇게 생각한다. 매주 천 원씩 사는 로또가 5등에도 당첨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저 0.002%도 내 것이 아닐 것이라고. 


10분 정도 지났을까? 아니면 15분?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도는 사이, 진료실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보호자를 부른다.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요.


진료실 안에 누워있는 아내의 배에는 빨간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고, 빨간 소독약으로 범벅이 된 거즈가 바지 고무줄에 잔뜩 걸려있었다. 저 빨간 구멍으로 주삿바늘이 들어갔었구나. 의사 선생님의 책상 위에는 두 병의 양수가 가득 담긴 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노르스름한 색의 양수가 담긴 병.


“심박수는 130 bpm이 나오네요. 그리고….”


양수 채취가 끝나고 초음파를 통해 아이에게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이 말한다. 


“…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 보이지 않네요. 잠시 쉬셨다가 다시 볼게요. 20분쯤 후에 다시 볼게요.” 


진료실을 나서는 우리에게 간호사가 따라 나와 진료실 옆 방으로 안내한다.


“여기 오늘은 쓰지 않는 진료실이라, 여기 누워서 잠시 쉬고 계세요.”


간호사의 세심한 배려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잠시라도 누워서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 고마워서, 방을 나서는 간호사에게 꾸벅 인사했다.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자, 아내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꼬물이가 고개를 푹 숙였어. 겁먹었으려나?”


초음파를 보면서 꼬물이가 없는 쪽으로 주사를 넣었어요. 바늘에 다치거나 하진 않았을 거예요. 아내가 말했다.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쥐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으로 생각한다. 꼬물이의 심박수가 지난번보다 많이 낮게 나왔다고. 지난번에는 180, 150은 나오던 것이 오늘 130으로 나왔다고. 혹시 꼬물이가 겁을 먹은 것은 아닐는지.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감지하고 온몸을 웅크려 숨으려 한 것은 아닐지. 머리 크기가 4센티미터 남짓한 그 작은 것이 겁을 먹고 웅크렸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자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토닥여줄 수 없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의사 선생님이 다시 부르기까지 우리는 그 후로 20분간을 느릿느릿, 하지만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병원을 나선 이후부터, 그 방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우리 두 사람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아니, 사실은, 우리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튼.


오늘은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다시 진료실에 들어간 우리는 초음파 검사에서 아이에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심박수는 150 bpm이 나오네요. 자세도 아까와는 다르게 잘 펴고 있어요. 자궁경부에도 이상이 없고.”


머리는 조금 큰 편이네요. 17주가 되었는데, 머리가 4센티미터가 조금 넘네요. 의사가 말했다. 이대로라면 엄마가 좀 고생을 하겠구나. 아니면 예정일이 조금 앞당겨지려나?


“아까 말씀드렸듯이 양수검사를 하면서 유산되는 경우는 바늘에 아이가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통해 바이러스 감염이 되는 것과, 또 하나는 양막이 파열되는 경우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체온이 올라갈 테니 체온을 잘 확인해보시고, 양막이 파열되면 양수가 흐를 수 있으니 그것도 잘 살펴보시는 게 좋습니다. 오늘은 가급적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반차를 쓰고 나왔던 나는 진료실을 나서자마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후도 쉬어야 함을 전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테니 나는 회사에 가라고 하는 아내였지만,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배에 빨간 점이 찍힌 상처와 잔뜩 움츠러든 꼬물이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던 내게는 재고의 여지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집에 가서 양수가 흐르거나 열이 오른다면? 그럴 때 내가 곁에 없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내리 4시간을 잤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아내는 바로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하고 지쳤던 모양이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내리 4시간을 뒤척이지도 않고 잠든 아내. 그런 아내의 곁에서 나는 아내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아주고, 가슴을 토닥여주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 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싶었고, 이제 끝이 아닌 시작 부분이라는 게 기가 찰 따름이다. 어쩌면 별것 아닌 이벤트일, 아주 높은 확률로 ‘그런 일도 있었더랬지.’ 하고 넘길 수 있을 이런 사건에도 이토록 긴장하는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가진 능력을 훨씬 초월하는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눈을 뜬 아내는 내 손을 잡아 배 위에 얹었다. 불룩, 손에 표현하기 힘든 어떤 움직임이 느껴졌다. 아내가 미소 짓는다.


“아까 아침에 놀랐었다고 화풀이하나 봐요. 지금 내 뱃속을 엄청 휘젓고 있어.”


괜찮나 봐. 다행이죠? 아내가 말한다. 그리고 그날 밤, 아내는 꼬물이의 엄청난 태동으로 인해 새벽 2시에 깨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처음으로 태동을 느꼈다.


검사비용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양수검사인데도 70만 원 가까운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급한 마음에 검사 결과를 빨리 받아볼 수 있는 검사를 추가했다면 두 배로 더 들었을 것이다. 오늘의 검사비용으로 국가에서 제공한 백만 원의 바우처가 끝이 났다. 진료 몇 번, 입덧 약 몇 번 처방에 양수검사 하나로 백만 원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앞으로는 또 어떤 예상치 못한 일로 지출이 생길지 알 수 없는데. 돈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내가 버는 돈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마지막까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나는 아이의 태동을 느꼈다. 갑작스러운 뾰족한 주삿바늘의 침범에 잔뜩 웅크렸던 꼬물이는 화풀이를 하듯 엄마의 뱃속을 휘저었고, 나는 처음으로 성난 아이의 몸부림을 느꼈다. 머리 크기 4센티미터의 그 조그마한 아이는 무사히 살아있다. 아빠를 닮아 성질을 잘 내는 그 아이는, 다행히도 무척 건강한 모양이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 돈은 쓸 만큼만 있으면 되는 주의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한 때는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봉사하며 사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나는, 이 날 아주 결연한 마음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류 역사 동안 수컷이 해왔던 사냥이 이런 것인가 싶었고, 부족한 창고로 인해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내를, 나를, 우리의 부모님을 닮은 아이가 지금,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에.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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