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새벽의 커피는 낭만적이지 않다.
새벽의 커피는 낭만적이지 않다. 새벽 5시 45분. 알람이 울린다. 먼저 씻으러 들어간 아내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출근길의 졸음을 달랠 커피를 내린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취미가 된 커피다
10년 넘게 우리 부부의 카페인을 책임져온 캡슐커피는 이제 떠나고 없다. 그보단 취향에 맞는 원두를 사서 직접 분쇄하고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리오, 알파, 네오, 스위치, 에어로프레스, 모카포트. 고급스럽고 우아한 취미가 된 커피다.
어젯밤 미리 계량하여 호퍼에 담아둔 진한 강배전 원두를 갈면서 미리 한계선까지 물을 담아두었던 드립포트의 전원을 켠다.
생존을 위한 커피는 쓰고 달아야 한다
아이덴티티 커피랩의 시그니처 블렌드, 칠링. 산미와 과일 향이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새벽의 커피는 그런 취향을 따지지 않는다. 최대한 묵직하고, 쌉싸름한 맛으로 혀와 머리를 자극해 줄 커피. 새벽의 커피는 각성제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생존을 위한 커피는, 반드시 쓰고 달아야 한다.
원래라면 뜨거운 물로 드리퍼와 서버, 마실 잔까지 미리 데웠겠지만, 역시 새벽의 커피에는 그런 게 없다. 미리 접어 드리퍼에 꽂아두었던 필터에 찬물을 부어 린싱을 한다. 지금은 린싱을 한다는 것 자체도 사치다.
텀블러에 얼음을 담고 두 드리퍼에 분쇄된 원두를 나눠 담는다. 순차적으로 두 드리퍼에 물을 부으며 시간과 무게를 잰다.
커피를 준비하는 과정과 달리, 커피를 우려내는 이 순간만큼은 사치가 허락된다. 커피를 우려내는 건 어차피 정해진 시간만큼 걸려야 하는 일이니, 되도록 맛있는 커피가 되도록 해야지.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걸 위해 할 수 있는 걸 한다. 시간 안에, 정해진 무게의 물을 붓는 일. 물줄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일. 젖어가는 커피 베드 위로 견과류와 캐러멜의 짙은 향이 피어오르면, 서버 안에 도시락 고봉밥 우기듯 꾹 꾹 향을 눌러 담는 일.
두 서버에 담긴 커피를 얼음으로 가득한 텀블러에 합친다. 뚜껑 바로 밑까지 찰랑이는 커피가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레 뚜껑을 닫을 때쯤, 머리를 말리고 나온 아내가 아이들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 내가 씻을 차례다.
오전 6시 30분. 반쯤 잠에 취한 아이들과 차에 오른다. 아이들의 짧았던 어린이집 적응주간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유니콘 베이비라 불리는 두 아이들은 남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어린이집에 적응했고, 더 이상 따로 적응기간을 두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원장님의 결단을 불러왔다.
그래서 나의 비상 육아체제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 주부터 아이들은 엄마의 몫이 되었다. 출근길에 직장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 찾아오는 일상을, 아이들은 오롯이 엄마와 함께 한다.
새벽의 커피는 낭만적이지 않다.
다음 주가 되면, 나의 평일은 대부분의 육아로부터 해방된다. 아내가 출근길에 아이들을 직장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길에 아이들을 데려온다.
나는 다시 나만의 새벽으로 돌아간다. 날것의 시간. 굶주린 표범이 필사적으로 가젤의 허벅지를 물어채기 위해 내달리듯, 나의 손을 떠난 물줄기가 거칠게 커피 베드를 때릴 것이다. 핸드밀의 손맛, RDT, 린싱, 예열, 프리인퓨전(블룸), 0.1g 단위의 정량 계량. 해가 오르기 전, 어둠이 깔린 곳에 이런 배부른 것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첫째의 육아를 위해 냈던 육아휴직이 끝난 후,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복잡한 논리와 설명이 필요할 법도 했으나, 나의 설명과 아내의 답변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앞으로 나는 글을 쓸게요."
"응, 그래요. "
그리고 둘째가 태어났고, 나의 육아는 조금 더 길어졌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의 직장 어린이집 적응을 끝으로 나의 주 양육자 타이틀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제대로 글을 쓰지 않을 방패막이가 사라졌다. 핑곗거리가 사라졌으니, 벌거벗은 몸뚱이로 태풍 속을 걸을 일만 남았다. 돈을 벌지 않는 남편. 글밥을 먹겠다고 선언한 남편이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 할 숙제다.
새벽의 커피는 낭만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그래서,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원두에서 커피를 짜내듯 손끝에 맺힌 단어들을 짜내야 한다. 그 어휘들이 조금이라도 더 맛있기를 바라며 문장을 갈아내고 어휘의 온도를 조절하며 문맥의 흐름을 조절한다.
커피를 우려내듯, 글을 쓰는 것도 어차피 정해진 시간만큼 걸릴 일이니까. 조금만 더 드립포트를 쥔 손의 미세한 감각을 깨워보는 거다. 물줄기의 모양과 속도를 일정하게, 아주 조금 더 섬세하게.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텀블러 가득 한 잔의 커피가 담겨있게 될 것이다. 비록 장담할 수 없는 맛이지만,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것이라고 말하면 너에게 너무 미안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