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13. 육아의 난이도는 아이 수의 제곱으로 붙는다.

by Kyle Lee

오전 5시 45분. 알람이 울린다. 부스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어린이집에 가져갈 짐을 챙긴다. 6시 15분. 아내가 반쯤 기절한 아이들의 옷을 갈아입히고 있다.


텀블러를 꺼내 얼음을 가득 담고 드립포트에 물을 올린다. 40g 원두를 전동 그라인더에 넣고 돌린다. 큰맘 먹고 산 코만단테를 꺼내들 시간은 없다. 부지런히 하던 RDT 같은 것도 없다. 분쇄가 끝난 그라인더의 호퍼를 여러 차례 세게 내리누른다. 미분이 짙눈개비처럼 흩날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드리퍼에 대충 접어두었던 필터를 얹고 앵커로 누른다. 대충 수돗물로 린싱을 마치고 원두를 올리고, 물을 붓는다. 그냥 간단하게 대충 1:15 비율이 되도록 30초마다 차수를 나눠 물을 붓는다. 결과물만 맞으면 됐지. 오래 챙길 시간이 없다. 6시 30분이 되기 전에 우리는 차를 타고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붓고 짐을 챙긴다. 두 아이가 하나씩 우리의 품에 안겨 차에 실린다. 아직 깜깜한 새벽. 우리는 그렇게 직장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8시가 되어 도착한 어린이집 입구. 웨건에 앉아있는 첫째에게는 바나나와 우유, 그리고 도라지즙을 쥐어주고 엄마 품에 안겨있던 둘째에게는 분유를 먹인다. 8시 30분이 되어 출근하는 엄마. 이제 두 아이는 오롯이 내 몫이다.


직장 어린이집 데뷔 이틀차


직장 어린이집 데뷔 이틀차. 3주까지는 적응기간이다. 그 첫째 주인 이번 주는 오전 10시에 하원이다.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는 기간. 의외로 빠르게 적응해 가는 0세 반 둘째와 달리, 세심한 케어를 받지 못한 첫째는 반 친구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쑥스럽고 부끄러워 도망 다닌다. 아빠가 몸이 둘이어서 하나는 둘째의 간식을 먹이고 손과 얼굴을 씻어주고, 나머지 하나가 첫째의 손을 잡고 함께 첫째의 방에 들어가 놀아주면 참 좋겠는데. 결국 첫째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둘째에게 밀려나고 만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둘째를 돌보는 손과 달리 눈은 자꾸만 첫째의 실루엣을 쫓는다.


오전 10시가 되어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 일찍 일어난 여파로 두 아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잠이 든다. 뽀로로 주제가가 울려 퍼지는 차 안에서 멍한 두 눈으로 운전하는 그 시간이 달콤한 휴식 같기만 하다.


11시 반이 되어 집에 도착하면, 바로 둘째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첫째의 점심을 차린다. 첫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둘째는 안전펜스가 쳐진 플레이 매트에서 아빠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입으로만 운다. 그럴수록 첫째는 그토록 잘하던 젓가락질도 하지 않고 두 손을 엉덩이에 딱 붙인 채 말한다. 아빠가 먹여줘.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두 아이는 오전에 쌓인 피로에 눌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요한 주방에 잠시 멈춰서 있다,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일단, 점심부터 먹어야지. 냄비에 불을 올리고 라면을 넣는다. 계란 하나와 아이에게 볶음밥을 만들어주고 남았던 햄 쪼가리와 버섯도 함께 썰어 넣는다.


점심을 마치고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3시 반. 졸음이 밀려온다. 안된다. 4시가 되면 아이들이 일어날 것이다. 둘째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첫째에게는 과일 간식을 차려줘야 한다. 싱크대 한편에 오전의 치열했던 커피 도구가 널브러져 있다. 드리퍼 위에서 말라가는 새벽의 묵사발 같은 커피의 흔적들을 치우고 다시 한번 커피를 내린다. 지금은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용하게, 핸드밀로 원두를 간다. 원두는 페루 엘 미라도르 게이샤 내추럴. 하리오 네오에 추출이 빠른 플럭시 하이패스트 필터를 쓴다. 드립을 하는 내내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 퍼진다.


오롯이 두 아이를 혼자 감당하는 건 처음이다.


추출이 완료된 커피를 담을 잔을 찾다가 집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문양의 머그컵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 첫째가 만들었다며 자랑스럽게 가져온 머그컵이다. 어린이집에서 도자기 굽는 활동을 했다는 것 같은데, 아이가 좋아하는 색들이 가득 벽면을 넘어 잔 내부의 바닥까지 채우고 있다. 우리 딸이, 어느새, 이렇게 컸을까. 그 좋아하는 아벤시 컵을 지나쳐 나의 손은 못난이 머그로 향한다. 내 딸이, 그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찍어 새겼을 색이 마음에 깊은 공명음을 내며 떨어진다. 내 아이가 보는 그 파란 세상이 내 마음을 적셔오는 것만 같다.


정신없이 바쁜 3주가 될 터다. 혼자 두 아이를 오롯이 감당하는 생활은 처음이다. 아내가 말한다. 육아의 난이도는 아이 수의 제곱으로 붙는다고.


고작 이틀을 했을 뿐인데, 나의 마음은 조급하게 쫓기고 있었다. 몇 시까지 뭘 해야 하고, 뭘 준비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마음이 달려 나가는 속도에 따라 시야가 자꾸 좁아졌다. 그러다 어느새 두 아이의 표정을, 말을, 눈빛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좋은데.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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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컵에 찍힌 파란 손가락 자국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자꾸만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그 사실을 깨닫다가도 또 잊고, 그러다 후회하며 다시 깨닫기를 반복한다. 하루라도 더 기억해야지. 두 아이의 미소를 담아야지. 그 찰나의 빛나는 행복을 가져야지.


기억해야지. 중요한 건 저기 잠들어 있는 두 아이가 까르르 웃으며 내 등을 타고 와 여기저기 볼을 비비고 입 맞추는 순간의 기쁨이라는 걸. 자꾸만 자꾸만 어느새 자라 버리는 저 아이들이 내게 기대 오는 바로 그 순간들이라는 걸.


자꾸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


아이들 방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먼저 눈을 뜬 것은 둘째다. 첫째가 깨지 않도록 둘째를 안아 거실로 나온다.


아가. 배고프지. 잘 자고 일어났구나? 두 볼이 발갛게 예쁘게 익었어. 아빠가 금방 밥 줄게. 오늘은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지 않을게. 두 볼 오물거리는 그 모습을 웃으며 지켜봐 줄게. 휘젓는 손에 밥을 뜬 숟가락이 날아가도 찡그리지 않을게. 흘린 밥알을 발로 으깨도 용서해 줄게.


그런 생각을 하는 나의 등 뒤로 첫째가 어느새 울면서 다가와 내게 말한다.


“아빠, 안아줘. 한이 안지 마. 한이 내려. 은이 안아줘.”


다시 시작한다. 둘째의 이유식과 첫째 달래주기. 그리고 간식 먹이기.


아내가 말했다. 육아의 난이도는 아이 수의 제곱으로 붙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