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린이집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사연
“어, 여기 이마에 이건 뭐예요?”
어린이집 현관에서 막내를 받아 들던 아내가 놀라 선생님에게 묻는다.
“어머, 그러게요. 뭐지? 아까까진 없었는데.”
선생님의 대답에 아내의 입이 굳게 닫힌다. 멍이다. 위치로 봐선 기어 다니다 어디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는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요.”
집에 돌아온 아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복직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아내의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대로 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도 좋은 걸까.
지난 한 해 동안 변화가 많았다. 지난 3월에 둘째가 태어났고 9월에는 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새해가 되고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가면서 집 근처 어린이집으로 둘째를 보내기 시작했다. 첫째도 원래 다니던 어린이집에서 둘째와 같은 어린이집으로 옮겨주었다. 이사를 하면서 매일 차로 등하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고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이사를 가면서 어린이집을 옮긴 것도 영향을 미쳤다. 어차피 낯선 친구들과 새로 적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집 근처 어린이집이 낫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 걸어서 2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로 등원시키는 것은 차로 10분을 다녀야 했던 전보다 훨씬 편했다. 첫째가 좋아하는 장난감도 많았고 다행히도 특별활동 초청 선생님이 전 어린이집에서 함께 하던 같은 선생님이었다. 첫째는 첫날부터 완전히 적응했고 둘째도 적응하는데 2주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둘째의 적응기간이 끝난 다음부터 시작되었다. 1월 둘째 주부터 2월 중신이 될 때까지, 두 아이에게 전에는 없었던 일들이 자꾸만 벌어졌다.
아이가 자꾸 아프기 시작했다.
첫째의 경우에는 몸에 발진이 보여 선생님에게 묻자 발진이 있는 줄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에게 말도 없이 만 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초코파이를 먹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페인 때문에 아직 작은 초콜릿 조각 한 번 준 적 없는데.
둘째의 경우는 아주 심각했다. 하원하는 시간이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볼에 가득 침독이 올라 있었다. 아이의 침독을 진정시키는 크림을 맡기며 발라줄 것을 부탁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침독으로 벌건 볼을 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의 뺨에 크림을 발라주면 잠잘 시간이 될 때쯤엔 깨끗이 나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하원하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침독이 올라있었다. 무한반복이다.
얼굴은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하원하러 가면 아이를 준비시키는데 늘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알고 보니 하원 준비를 시키다가 아이가 응가를 한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그랬던 것이었다. 한 달 내내 기저귀를 늦게 갈아줘 엉덩이 발진이 심각했다. 심각해지다 못해 발진이 넓게 퍼져 성기 바로 밑에까지 번졌다.
어느 날에는 무릎과 미간에 멍이 들어있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묻자 선생님은 그때서야 발견하고 어, 이게 뭐지?라고 대답했다. 아내의 속이 뒤집어질만하다. 어린이집 알림장 사진을 뒤적여보니 오전에 깨끗하던 얼굴이 오후 사진부터 멍이 보였다. 그 사이에 뭔가 있었을 텐데, 얼마나 아이에게 관심 없었던 건가 싶어 열이 올랐다.
우리가 너무 예민한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또 어린이집을 바꿔야 하나? 우리가 너무 예민한 건가? 판단이 쉽지 않았다. 극성스러운 학부모가 된 것 같아서 추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은, 정말 열이 오르는 상황이 되었다. 38.7도. 어떻게 애가 이렇게 열이 나는데 모를 수 있는 건지.
“아이가 이유식을 먹다 말고 잠이 들었어요. 어제도 그랬는데.”
아이를 건네며 선생님이 말한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다 말고 잠이 들었다고? 분유도 아니고 이유식을 먹다 말고?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것도 이틀 연속 그랬다고? 그런데 보호자에게 연락을 안 했다고? 느낌이 좋지 않다.
집에 돌아와 바로 아이의 열을 재보았다. 38.7도. 체온계에 찍힌 빨간색 LED창이 속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상식이 잘못된 건가? 아이가 평소와 다른 그런 상태를 보이면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요청하지도 않은 턱받이가 가방에 없다거나 여분 옷이 부족하다고 따지는 전화는 그렇게 쉽게 하면서 왜 아이의 상태가 평소와 다른 것에 대해서는 연락을 아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직장 어린이집에 T/O가 있어요.
“직장 어린이집에 T/O가 있대요.”
방에서 조용히 몇 통의 전화를 하던 아내가 말했다.
“원래는 없었는데, 퇴사자가 생겨서 자리가 생겼대요. 금요일까지 다른 신청자가 없다면 우리가 들어갈 수 있대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직장 어린이집은 우리에게 너무도 욕심이 나지만 감히 선택할 수 없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였다. 아내의 회사는 이른바 ‘여성 친화적 기업’이다. 말로만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친화적이다. 회사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사내 피트니스 센터 오픈과 직장 어린이집 개원이었다.
어린이집은 법정 기준 조건을 훨씬 넘어서는 조건으로 지었다고 한다. 게다가 의료재단을 보유한 회사의 특권을 살려 사내의원에 소아과 의사를 고용하고 주 2회 어린이집 왕진을 와서 아이들 건강을 체크하게 했다. 아이가 아프면 바로 어린이집 바로 옆 옆 건물에 있는 사내의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아이들 음식은 풀무원에서 전담하고 활동으로 트니트니가 들어온다. 어린이집 바로 옆 사무실도 인수해서는 어린이집 전용 키즈카페를 만들었다. 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올인클루시브 5성급 리조트 같은 느낌이다.
누구나 탐낼만한 조건이지만, 우리는 감히 욕심을 내지 못했다. 집에서 아내 회사까지 차로 1시간 이상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체력이 받쳐줄까?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지는 않을까. 하원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면 7시가 넘을 텐데, 너무 배가 고프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들 때문에 우리는 언감생심 직장 어린이집을 넘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우리는 절묘하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등하원이 편하다고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돌보는 선생님과 운영주체를 신뢰할 수 있는지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어린이집은 5세까지 다닌 후 유치원에 가야 하지만, 직장 어린이집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7세까지 아이를 맡아준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직장 어린이집으로 기울었다. 여기라면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 돌릴 일도 없고,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하원하기 때문에 우리 애가 혼자 엄마 아빠의 퇴근을 기다리며 마음 다칠 일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번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우리는 더 고민할 것 없이 직장 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서를 넣었고, 얼마 뒤 입소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등하원 예행연습을 했다.
둘째는 4일 만에 열이 내리고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차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돌아왔을 때 두 아이들을 데리고 등원 예행연습을 떠났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듯 나갈 채비를 했다.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회사로 향했다. 6시 40분에 출발한 우리는 정확히 1시간 만에 회사에 도착했다.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우리 부부는 카페인 보충을, 두 아이에게는 간단한 아침을 챙겼다. 아침 출근 시간은 1시간 정도. 퇴근 시간은 아마도 거기에 20분 정도를 더해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아내와 두 아이는 하루 왕복 2시간 반을 길에서 보내게 되었다.
앞으로 다니게 될 험난한 여정이다. 옳은 결정일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다니던 그 어린이집은 결코 우리의 답이 아니다. 등하원이 얼마나 힘든지, 시설이 얼마나 좋은지, 그런 것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봐줄 것인가다. 부디 직장 어린이집이 우리가 바라는 그 지점을 살펴주기만 바랄 뿐이다. 시설이든 교육이든 정책이든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는 죄인이 된다. 직장에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엄마는 아이에게 끝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살기 위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나가야 하는 엄마에게 어린이집은 한줄기 빛과 같다. 그런데 아이가 그 빛 속의 어느 사각에 자리한 그림자에 침식될 때, 부모는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게 된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노고를 모르지 않는다. 얼마나 힘이 들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내 애도 순간순간 울컥해서 미워지는데, 남의 아이 여럿을 동시에 돌봐야 하는 그 속은 얼마나 엉망일까.
하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부디 애정을 가져주기를 바라게 된다. 부디 사랑을 나눠주기를. 우리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기를.
부디, 우리 가족의 소중한 은인이 되어주기를.
여담이다. 어린이집을 옮기겠다는 이야기에 어린이집 원장은 3일 동안 아내에게 전화를 하며 아래와 같은 어록을 남겼다.
“애가 그냥 적응한 줄 아세요? 다 제가 열심히 안아서 달래고 놀아주고 그래서 그런 거예요. 이제 엄마만 직장 복직해서 적응하면 되는걸 왜 애들 힘들걸 생각 안 하시고 이기적으로 그러세요.”
“애 아빠가 집에서 일한다면서요. 아빠가 애들 엄마 직장어린이집 보내라고 그래요? 엄마가 잘 설득해 보세요. 아빠가 도와줘야지 엄마한테 다 떠넘기면 어떡해. 엄마가 좀 강하게 이야기해 봐요.”
그리고 더 이상 설득이 되지 않을 것 같았는지, 마지막 하원 이후 원장은 아내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물었다.
“애들 어린이집 가방 다른 데서 쓰실 거 아니면 혹시 저희한테 기부하실 생각 없나요? 제가 후원하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에게 줄까 해서요.”
아마도 이 원장은 아빠인 내가 아이의 등하원과 방과 후 육아를 피하기 위해 엄마에게 두 아이를 떠미는 사람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아내와 논의 끝에 가방은 주지 않기로 했다. 직장 어린이집이 기존 가방을 써도 좋다고 한 것도 있었지만, 두 달 밖에 사용하지 않은 새것처럼 깨끗한 가방을 가져가서 과연 정말로 후원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새것인양 다른 엄마들에게 판매할 것인지, 나는 좀처럼 이 어린이집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었다. 마치 처음에 우리에게 자신들의 어린이집에 오면 입학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하고는 막상 입학을 하자 입학 월이 바뀌어서 안된다고 하며 1원 한 푼까지 다 받아갔던 게 떠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