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혹시 집에 아이들이 많이 뛰어다니나요?”
이사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아래층에서 민원이 접수되었다며, 관리사무소 직원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아이들이 조금 조심스럽게 다니도록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네. 그런데 저희 집이 아닐 것 같아요. 저희 집에는 아직 두 돌 밖에 안 된 아기 하나랑 아직 기어 다니는 아기 하나뿐이고, 게다가 아이들이 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거든요.”
“아, 그럼 여기가 아니겠네요. 굉장히 큰 소리로 뛰어다니는 소리라고 했거든요. 알겠습니다.”
이 때는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한 달 뒤, 어느 저녁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고 두 아이는 엄마와 함께 방에 잠을 자러 들어가 있었다.
“저기, 정말 하루 종일 너무 시끄러워서요. 혹시 안마기 같은 거 하고 계셨나요? 드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요.”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물어왔다. 갑작스럽게 울린 초인종 소리에 막내는 울음을 터뜨렸고 첫째는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망태할아버지 왔어? 잡으러 왔어?
두 아이는 잠을 자러 방에 들어가 있다. 나는 안방에 누워 있었다. 집에 안마기는 없다. 직접 들어와서 둘러보셔도 좋다. 게다가 이 날은 아이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갔었고, 우리 부부는 아침부터 저녁 5시까지 약속이 있어 외출을 했던 터였다. 하루 종일 소음이 났다면 절대 우리 집일 수 없다. 이런 설명을 드려도 아주머니는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그저 부탁이니 조금만 조심해 달라는 말뿐이었다.
그 후 첫째는 가끔 이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또 망태할아버지 와? 엄마 옆에서 자면 안 돼?
억울했다.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오랫동안 머무를 집이라 여기고 이사 온 집이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혹시 뛰어다닐까 싶어 층간소음을 줄이는데 효과가 좋다는 5T 두께의 가장 비싼 프리미엄 장판으로 집 전체를 둘렀다. 그마저도 불안해 40T 두께의 대형 놀이매트 3개로 거실 전체를 둘렀고 아이들 방에도 40T 두께의 대형 놀이매트 2개로 바닥 전체를 덮었다. 여기에 들어간 돈만 수백만 원이다. 억울하지 않을 리가 없다. 다짐하듯 생각했다. 절대, 우리 집일리 없다.
우리 집이 맞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우리 집이 맞았다.
물론 모든 층간소음이 우리 집이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났던 소음은 우리 것일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주 작은 행동들이 아랫집에 얼마나 큰 북처럼 울리는지 들었을 때는 정말 소름이 끼쳤다.
아주머니의 방문 이후 다시 한 달이 지난 일요일 저녁 8시 반 무렵, 이번에는 아랫집의 두 딸이 찾아왔다. 정말 너무 시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때 막내는 트립트랩이라는 아기의자에 앉아 엄마와 함께 이유식을 먹고 있었고 첫째는 거실 소파 위에서 내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다시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아랫집은 너무 고통스럽다 했고, 우리는 우리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내가 밑에 집에 내려가서 소음을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아랫집에 내려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랫집의 두 딸도 한 명은 우리 집에서 아내가 내는 소리를 함께 들었고, 또 한 명은 아랫집에 나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낼만한 소음을 재현해 보았다. 둘째가 트립트랩 발받침을 차는 소리. 첫째 아이가 바닥에 책을 내려놓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의자에는 소음방지 패드를 붙여놓았었다) 등.
결과는 참혹했다. 떨어트리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물건을 내려놓는 소리마저 북을 치는 것처럼 깊은 공명음으로 들려왔다. 걷는 소리나 바퀴 굴리는 소리는 넘어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충격음은 소음확대기라도 대놓은 것처럼, 우퍼라도 달아놓은 것처럼 쩌렁쩌렁 울려왔다.
더 할 말이 없었다. 의도치 않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 그렇게 사과했다. 그리고 최대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보겠다고 말했다. 아랫집도 갑자기 여러 번 찾아가서 죄송하다, 조금만 주의해 달라,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혹스러웠다. 결코 부주의하게 지내지 않았다. 첫째에게 미안할 정도로 뛰지 않게 늘 주의를 주었고 바닥에 높은 데서 물건을 떨어트리거나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앉아서 책을 읽다가 책을 던진 것도 아니고, 그냥 무릎에서 바닥으로 툭 내려놓는 소리조차 그렇게 크게 들릴 줄은 몰랐다. 이건 분명 구조적인 문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소리가 들릴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이미 인테리어 공사는 끝났고, 우리는 앞으로 이곳에서 10년 이상을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했다.
아내와 새벽까지 긴 토론이 이어졌다. 현실적인 방법은 돈을 더 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거실, 주방, 통로, 그리고 아이방 전체에 24T 두께의 고밀도 시공매트를 설치하기로 했고, 그 위로 지금처럼 40T 두께의 놀이매트를 거실과 아이들 방에 깔기로 했다.
편지를 썼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다
다음날 업체에 문의해 견적을 받고 공사 가능한 일정을 물었다. 설 연휴가 지난 바로 다음 날이 가장 빠르다기에 두 번 볼 것 없이 바로 공사일정을 확정했다. 예상견적으로 360만 원이 나왔다. 마이너스 통장의 앞자리가 바뀔 테지만, 이 돈으로 우리의 스트레스를 덜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지불하리라 생각했다.
다음 날 과일 상자 하나와 함께 손으로 쓴 편지를 들고 아랫집을 찾았다. 편지에는 죄송하다는 말과, 우리가 취할 조치에 대해 적었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집에 머무는 시간대와 집을 비우는 시간대를 알려드리고, 아이들이 완전히 통제가 될 때까지 간헐적으로 소음이 나더라도 조금만 양해해 주십사 부탁하는 말도 함께 적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 달리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오해해서 미안해요. 오해도 다 풀렸고, 그래서 지금은 다 괜찮아요. 뭘 이런 걸 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있었던 그 딸이 어머니에게 오해가 있었음을 잘 설명해 주었던 듯했다. 소음의 크기 때문에 밑에 집에서는 윗집이 정말 조심성 없이 큰 소리를 내면서 시치미 떼고 있다고 생각할 법도 했다.
공사는 잘 마무리되었고, 더 이상 아랫집이 올라오거나 민원 때문에 관리사무소에서 전화가 오는 일은 없어졌다.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뛰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처음 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을 때처럼 막막하거나 하지는 않다.
이웃 간에 감정을 다치고, 갈등이 심해져서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 층간소음 문제. 그 일이 나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세상 일이 사람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배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오늘의 커피는 YM Coffee 로스터스의 ‘Room’.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 원두를 직화로 로스팅해 블렌드 한 와인 같은 풍미를 가진 커피다. 내리는 방식에 따라서, 마시는 온도에 따라서 백포도주가 되기도 하고 적포도주가 되기도 하며 응축하면 독한 럼의 향미를 풍기기도 한다. 와인과 럼의 풍미에 이어 시트러스와 베리 종류의 다양한 과일 노트가 나타난다. 예쁜 빈티지의 술병이 든 과일바구니 같은 커피다.
불행한 일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그게 사람 간의 갈등일 때면 골치가 아파온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면 그래도 좋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스위트한 백포도주가 되기도, 드라이한 적포도주가 되기도 하는 이 커피처럼, 내게 닥친 일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는 결국 나의 말과 행동에 달려있지 않나 싶다.
오늘의 커피는 럼. 따듯하게 데워둔 잔에 커피를 따른다. 언젠가 다시 아랫집을 만나면 더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집으로 초대해 커피 한 잔을 내려줄, 그런 날도 올 수 있다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