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적 관점에서 재정의한 ‘교사됨’을 중심으로
※ 본 글은 1년 전 비교과 교사 익명 커뮤니티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고친 것입니다.
60년대 초반 양호교사(현 보건교사)가 교사로 임용되기 시작한 이후 영양교사, 사서교사, 전문상담교사가 일선 현장에 배치되면서 교과 수업을 담당하지 않는 ‘비교과 교사’가 학교에 자리 잡게 되었다. 비록 각각이 담당하는 업무의 필요성마저 부정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지만, 공교육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어려움을 비교과 교사에 대한 분풀이로 해소하려는 사람들은 학교 안팎에 널려 있는 실정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비교과 교사 무용론’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몇 개 있는데, 개중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바로 ‘수업을 해야 교사’라는 논리다.
작년 이맘때쯤, 교육부가 구축한 대국민 의견 수렴 사이트에 비교과 교사를 더 이상 뽑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이 다수 게재되어 논란으로 비화한 적이 있었다. 비교과 교사에 대한 다른 교사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점을 어느 정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다.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한 댓글이 마구 쏟아지던 사이, 이에 항변하는 한 비교과 교사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스포츠 강사도 수업을 하고, 방과후 강사도 수업을 하고, 영어회화전문강사도 수업을 하는데, 그럼 이 사람들 모두 교사여야겠네요?
인용한 댓글이 잘 나타내듯, ‘수업’만이 교사됨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주장하는 순간 교사가 ‘교사’로 뽑혀야 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수업‘만’ 하나 교사‘는 아닌’ 인력이 학교 안에 다수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교사는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주장을 공연히 설파하는 교사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어쩌면 교사로 뽑힌다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교사가 그만큼 적다는 것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교육에 대한 행정적 관점은 (일선 교사들이 증오해 마지 않는) 교육청 또는 교육부에서 직접 일을 해봐야 체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의미를 영영 몰랐으리라 확신한다. 뜬금없이 웬 행정적 관점 타령인가 싶겠지만, 행정적 관점에서 교사가 무엇인지 바라봐야 비교과 교사가 교사여야 하는 이유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지근거리에서 공교육 행정이 돌아가는 방식을 목격한 경험에 근거해, 지금부터 이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교직원의 임무)
③ 교사는 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위 법령은 교사가 갖는 교육활동에 대한 권리, 즉 교육권의 근거에 해당한다. 수업권은 교육권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석해야 교사가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 아래 본인이 전개하는 교육활동을 보호받을 수 있다.
교원의 지위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제1조(목적)
이 법은 교원에 대한 예우와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보장과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를 강화함으로써 교원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교육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교육활동은 뭘까? 교원지위법에는 교육활동의 정의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교사의 교권 보호를 도모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교사(교원)는 교육활동에 대한 권리, 교육권을 가지며 이는 여러 법령에 의해 배타적으로 보호받는다. 여기서 교육활동이란 수업은 물론 특별활동, 재량활동, 과외활동, 수련활동, 수학여행 등 현장체험활동, 체육대회 등의 활동을 포함한다. 이는 곧 교사가 학교 안팎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연루되어 있는 모든 행위를 아우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교사와 교원을 혼용해 오해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아 덧붙이면, 교직원이란 교원과 직원의 합성어이고, 학교 안에서 교장, 교감, 교사 이 셋만이 교원에 해당한다. 우리가 아는 행정실 직원은 교직원 중 ‘직원’에 속하며, 이들에게는 교육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행정실 선생님들은 학생을 직접적으로 대하지 않는 선에서 학교의 운영을 돕는 일을 맡는다.
그렇다면,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지만 교사는 아닌 사람들, 즉 교육공무직은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교사라면 한번쯤 임장지도라는 말을 들어봤을 텐데, 이는 곧 교육권이 없는 사람들이 진행하는 교육활동에 교사가 임장, 즉 같은 장소에 함께하며 지도하는 것을 뜻한다. 임장지도라는 개념이 왜 고안되었을까? 교사를 귀찮게 하려고? 아니다. 교육공무직에게는 교육권이 없으므로, 교육권이 있는 교사에게 교육공무직의 교육활동을 감독할 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교사가 갖는 교육권은 당연하게도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교사가 국가공무원으로 선발된다. 국가 입장에서 공무원을 선발하는 것은 계약직을 선발하는 것보다 훨씬 값이 더 많이 든다. 차곡차곡 올라가는 호봉부터 퇴직 후 발생할 연금까지, 공무원 하나에 계약직 둘 이상의 돈이 들어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관행이라서? 한번 뽑기 시작한 걸 무를 수 없어서? 아니다. 단순히 비용만 놓고 보면 계약직을 더 뽑는 게 이득일 것 같지만…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노동에 대한 대가가 박한 것으로 유명한 나라 아닌가.
국가 성립기부터 권위주의 체제를 거치며, 정치 권력은 교사를 공조직 안에 꽉 붙들어둠으로써 이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다. (괜히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있는 게 아니다) 이때 교사가 갖는 ‘국가공무원’이라는 특수한 지위는 교사가 수업도 하고 행정 업무도 하는 당위의 강력한 기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강사와 행정직 여러 명이 담당해야 할 일을 교사 1명이 담당하게 되어 국가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맞는, 아니 오히려 남는 장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정리하면, 행정적 관점에서 ‘교사됨’이란, 국가공무원으로서 공교육에 대한 권리와 책임을 갖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교사의 본질에 사뭇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지만, 이것 말고는 학교 안에서 수많은 수업을 담당하는 교육공무직이 왜 교사가 되지 못하는지를 설명할 당위적 근거가 없다. 교사로 뽑혔기에 교사인 것이고, 교사로 뽑혔기에 권리와 책임을 갖는 것일 뿐… 교육공무직과 교사를 유의하게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선발 과정과 신분상 차이 말고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위의 두 핵심요소를 바탕으로 교사를 정의하면, 굳이 수업도 안 하는 비교과 교사를 국가가 나서서 선발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학교 안에서 수업 외의, 그러나 그 범위와 내용이 너무 커진 일부 교육활동을 전적으로 책임질 공무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간 학교가 담당하는 업무 영역은 나날이 늘어나기만 했다. 수업만 가르치면 땡이었던 학교가 ‘한 아이도 놓치지 않는’ 맞춤형 교육의 장으로 진화하며 교과 외 업무, 비교과 영역에 속하는 업무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일례로 수십 년 전만 해도 교과 교사가 담당하는 꼭지 업무에 지나지 않았던 ‘상담’ 업무는, 이제는 전문상담교사 또는 전문상담사가 없는 학교에서 교사 한 명이 도저히 담당할 수 없을 만큼 양이 엄청나게 늘었다.
비교과 교사가 담당하는 보건, 영양, 사서, 상담 업무는 그 하나하나가 교과 교사 한 명(영양은 행정직 한 명)이 부차적으로 담당하기 어려울 만큼 큼직해졌다. 교사가 수업을 포기하고 해당 업무에 매달리지 않는 한 학교 안에서 도서실 또는 상담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대목에서 하던 대로 교육공무직인 사서나 전문상담사를 뽑으면 될 일 아니냐, 하는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겠지만… 교육공무직에게는 교육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들이 전개하는 교육활동의 책임은 담당 교사에게 돌아가게 된다. 겉보기에는 그들이 아무 문제 없이, 비교과 교사와 다르지 않은 업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행정적 관점에서는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이 늘 문제가 된다. 거기다 교육공무직이 담당하는 행정 업무도, 사실은 이들의 행위가 공무원에 준하는 효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교사를 대신해) 이들에게 어떤 업무를 얼마나 맡겨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가 끊임없이 발생하곤 한다.
정리하면, 비교과 교사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필요에 의해 교사로 선발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업무는 늘어나는데 책임 소재는 모호하고, 교육공무직은 다루기 까다롭지만 (정치적 권리마저 제한된) 교사는 공무원이라 고분고분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으니… 굳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해당 업무를 해당 비교과 교사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떼어놓음으로써 교과 교사의 업무 부담도 줄이고, 책임도 분명히 하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라는 논의의 흐름으로 내려진 결정이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자기들끼리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을 줄 몰랐겠지)
위에서 언급했던 공개 커뮤니티에서의 논란도, 결국 교육부가 이와 유사한 내용을 거론하며 양자 간 입장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곳을 참조하기 바란다.
교사는 수업해서 교사가 아니라 교육활동에 대한 권리, 즉 교육권을 가진 ‘공무원’이라서 교사다. 이는 국가 성립기부터 자리 잡힌 한국적 개념이기에, 이에 대한 이해 없이 다른 나라 사정과 한국의 사정을 직접 비교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미국은 비교과가 교사 아니라던데 왜 한국만 이러냐고 역정 내지 말라는 뜻이다)
비교과 교사가 전담하는 교과 외 교육활동은 당연하게도 수업만큼, 혹은 그 이상의 전문성을 요하는 일이며,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 역시 비교과 ‘교사’일 수밖에 없다. 비교과 교사의 지위는 국가가 필요에 의해 법령을 바탕으로 부여한 것이기에, 일부 교사가 이에 대고 드잡이질을 하든… 왜 뽑냐고 아우성 치든… 달라질 여지가 전혀 없다. 따라서, 비교과 교사는 수업으로 ‘교사됨’을 증명하라는 부당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