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고
나는 '작가' 유시민을 좋아한다. 소위 말하는 '팬Fan' 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유시민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명확한 주장과 조리있는 논리전개에 속이 다 시원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동안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시작으로 '청춘의 독서', '어떻게 살 것인가' 등 유시민 작가의 책 몇권을 구입하여 읽었는데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는 나 자신이 평소에 관심이 있는 '글쓰기'를 주제로 쓴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을 연휴에 돌아오는 기차에서 집어들게 되었는데 역시나 재미있게 쓴 책이라 한달음에 다 읽어 내렸다.
글을 쓰는 사람들(어떻게 보면 사무직 직장인은 모두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고, 누구나 하는 SNS까지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길던 짧던 글을 쓰는 사람이다)은 특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많이 풀어 냈는데, 특히 최근 회사에서 보고서를 자주 작성하면서 좋은 보고서란? 좋은 글쓰기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나에게 나름 길잡이가 되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독서량이 많아야 하고 독서량이 많으면 독해력이 늘고 독해력이 늘면 지적 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덧붙여 글쓰기 훈련이 더해지면 기본적으로 논리적인 글쓰기는 누구나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논리적인 글을 쓰려면 본인의 삷에도 모순이 있으면 안된다는 다소 무거운 화두도 던지고 있으며, 누구나 글을 자유롭게 쓰고 배포할 수 있는 현대를 축복에 비유하며 글쓰기가 결코 고통이나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글쓰기를 고민하는 많은 이를 개화시키고 있다.
인상깊었던 책 추천은 본문에서 계속 언급한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인데,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읽어 보려 한다.
이하에서는 마지막 '시험 글쓰기' 부분은 제외하고, 작가의 논리 흐름과 목차에 따라 주요 내용 발췌와 더불어 간단한 감상과 요약을 남기고자 한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다면 무엇보다 생각을 바르고 정확하게 해야 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먼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생각해야 한다.
논증의 아름다움을 구현하려면 꼭 지켜야 하는 규칙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취향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2.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모든사람이 논증의 미학을 애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엄격한 논증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논증은 평등하고 민주적인 인간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3.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아메리카노 사건을 예로 들어 작가 본인 변호와 당시 중앙당 고위당직자의 글쓰기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논점 일탈의 오류(아메리카노=반민중적)'를 저질러 결국 설득력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글쓰기는 기능이며 특히 문학글쓰기 보다 논리 글쓰기는 더욱 기능적인 측면으로 후천적인 훈련을 통해서 다듬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글쓰기를 하려면 발췌요약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글쓰기의 철칙은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고,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는 것이며 텍스트 독해 요약훈련이 효과적이다. 구체적으로는 "1. 텍스트 독해, 2. 텍스트 요약(쓰는 만큼 는다), 3. 사유와 토론(혹평과 악플을 겁내지 말자)"으로 철칙을 압축 할 수 있을 듯하다.
발췌 요약이 글쓰기의 첫 걸음이라면 텍스트 독해는 두 다리로 일어서는 것과 같다. 텍스트를 발췌 요약하려면 먼저 독해력을 갖추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100% 공감하며 독서량이 궁극적으로 개인의 지식과 글쓰기 역량, 나아가 업무역량을 좌우한다.
독해력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지적 활동의 수준을 좌우한다.
독서는 독해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모국어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면 언어는 단순한 말과 글의 집합이 아니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말하고 글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데에도 언어가 있어야 한다. 모국어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깊이 있게 생각하기 어렵다.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글을 쓸 수 없다.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잘하기 어렵다.
번역서의 불편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독자에게 전해야 하는 것은 뜻과 느낌이지 원서의 문장구조가 아니다. 번역서든 아니든 우리말 책은 우리말다운 문장으로 써야 한다. 그러므로 번역을 잘하려면 우리말을 잘해야 한다.
아이의 모국어 교육에 관하여 언급하면 자녀가 뛰어난 언어능력을 가지기를 바란다면 뇌가 형성되는 시기에 적절한 언어적 자극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 시간 순으로 보면 감정과 생각이 먼저고 언어는 그 다음이다. 언어에서는 말이 글보다 먼저다. 아이가 언어 능력을 온전하게 발전시키도록 하려면 부모가 우리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말을 바르고 예쁘게 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어린이 독서는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독서를 생활 습관으로 만들고 자신이 읽은 것을 활용해 무엇이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버릇을 들이면 된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독서교육의 목표는 아니다. 재미를 붙이기만 하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나름의 독서 이력을 만들어간다.
실제로 나도 아이와 어린이도서관을 자주 가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독서 지도를 해야 할지 방향성이 잡히는 말이었다. 읽은 책에 대해서 물어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책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책은 아니다. 독해하기 쉬운 책이 있고 어려운 책이 있다. 쉬운 책만 읽어서는 독해력을 기르기 어렵다.
최선은 빠르게 읽으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단순히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독해는 텍스트의 한계와 오류를 찾아내거나 텍스트를 다른 맥락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무슨 책이든 많이 읽으면 독해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책을 골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이 구사하는 어휘의 수는 지식수준에 비례한다. 또 어휘를 많이 알아야 옳고 정확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식을 배우면서 어휘를 익히고,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문장을 익힌다. 똑같이 많은 책을 읽어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배우고 익히는 어휘와 문장의 양과 질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글을 쓰는데 특별허게 도움이 되는 책과 별로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는 것이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는 세가지 기준은,
1.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2.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3.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논리적 글쓰기를 하려면 추상적 개념을 담은 어휘를 많이 알고 명료한 문장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추상적 개념을 익히려면 문학작품만이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 교양서도 많이 읽어야 한다.
[작가 추천 전략적 도서목록]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스트븐 핑커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마음의 과학>
슈테판 츠바이크,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신영복, <강의>
아널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앨빈 토플러, <권력이동>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불확실성의 시대>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칼 세이건, <코스모스>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시민의 불복종>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못난 글은 다 비슷하지만 훌륭한 글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 잘못 쓴 글을 알아보는 감각을 길러야 한다. 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어야 제 나름의 멋진 스타일을 입힐 수 있다.
만약 입으로 소리내어 읽기 어렵다면, 귀로 듣기에 좋지 않다면,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면 잘 못 쓴 글이다. 못나고 흉한 글이다.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못난 말과 글에 대한 백신으로 이오덕 선생의 책 <우리글 바로쓰기>를 다시 한번 추천한다.
해로운 외국말 바이러스에 감염된 글은 소리 내어 읽기가 힘이 들고 귀로 듣기에 좋지 않으며 뜻을 알기도 어렵다.
글을 잘쓰려면 한자말을 오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중국 글자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거나 오늘날 쓰지 않는 토박이 말을 쓰는 것도 현명한 태도는 아니다. 말과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도록 쓴 글이 훌륭한 글이다.
글은 단문이 좋다.
길어도 주어와 술어가 하나씩만 있으면 단문이다. 문장 하나에 뜻을 하나만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주어와 술어가 둘이 넘는 문장을 복문이라고 한다. 복문은 무엇인가 강조하고 싶을 때, 단문으로는 뜻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쓰는게 좋다.
계속해서 복문을 쓰면 읽는 사람이 힘들다. 복문은 꼭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
단문이 복문보다 훌륭하거나 아름다워서 단문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뜻을 분명하게 전하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누누이 강조한 것처럼 글을 쓰려면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
글씨기 근육을 만들려면 아날로그 방식으로 훈련해야 한다. 최대한 옛날 사람들이 하던 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글쓰기 근육을 만들고 싶으면 일단 많이 써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생각과 느낌은 붙잡아 두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않다. 글쓰기는 티끌모아 태산이 맞다. 하루 30분정도 자투리 시간을 호라용해 수첩에 글을 쓴다고 생각해 보자.
자투리 시간 글쓰기의 주제와 내용은 정하기 나름이다.
뭐가 되었든 많이 쓰면 되는 것이다.
문자로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자기의 사상이 아니다. 글로 쓰지 않으면 아직은 논리가 아니다 . 글로 표현해야 비로소 자기의 사상과 논리가 된다.
글은 길게 쓰는 것보다 '짧게 잘쓰기'가 어렵다. 짧은 글이 좋은 이유는 어떤 방법으로든 압축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군더더기를 없애게 되고 글의 예술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선은 정해진 분량의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을 연습하되, 정해진 분량 이상의 길거나 짧은 글을 잘 못쓰게 되는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가끔씩 더 짧게 또는 더 길게 글을 써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은 직업으로 글을 쓴 후에 고민해도 된다. 우선은 거기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
몇 글자로 쓸지는 형편에 맞게 정하면 된다. 블로그나 카페에 올리는 글은 특별한 기준이 없다. 네티즌들이 지나치게 긴 글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만 고려하면 된다.
민간 중소기업에서 육군본부와 대통령 비서실까지, 조직사회에서는 읽는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분량을 정하는게 정답이다.
짧은 글을 쓰는 중요한 압축기술 두가지는,
1. 문장을 되도록 짧고 간단하게 쓴다.
글을 압축하려면 단문을 기본으로 하고 특별한 경우에 복문을 쓴다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뜻과 느낌을 강하고 확실하고 깊게 전하려면 복문을 써야 한다는 판단이 들때만 복문을 쓰는 것이다.
2. 군더더기를 없앤다.
간단하다. 없애버려도 뜻을 전하는 데 큰 지장이 없으면 군더더기다. 문장의 군더더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접속사(문장부사), 둘째는 관형사와 부사, 셋째는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관형어나 부사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장 성분이다.
다른 정보가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쓰려면 철저하게 독자를 존중해야 한다.
읽기가 힘들고 이해하기가 어려우면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독자가 공감할 수 없다.
인생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감정이 여럿 있는데, 허영심도 그 중 하나다. 허영심은 아주 고약한 감정이다. 허영심에 빠진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의미 없는 일에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글 쓰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허영심은 지식과 전문성을 과시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에 사로잡히면 난해한 글을 쓰게 된다.
글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타인에게 텍스트를 내놓을 때는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려면 지식과 전문성을 내보이려는 욕망을 버려야 한다.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명품백과 화려한 보석이든 양장본 고전으로 가득찬 서가든 어떤 욕망과 특정한 표현형식이 다른 것보다 더 고결하다거나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글쓰기는 두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세상이 글쓰기를 요구한다.
둘째, 사람들은 글 잘 쓰는 이를 부러워하며 심지어는 우러러본다.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해서 글을 잘쓰는 게 아니다. 읽는 사람이 글쓴이의 마음과 생각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써야 잘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표현할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을 내면에 쌓아야 하고, 그것을 실감 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표현할 내면이 거칠고 황폐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글을 써서 인정받고 존중받고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어울리는 내면을 가져야 한다.
글은 '손으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요, '머리로 쓰는 것'도 아니다. 글은 온몸으로, 삶 전체로 쓰는 것이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그에 맞게 살아야 한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이 선사한 축복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 것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축복과 특권이 좌절감과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특권을 즐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쓰기 훈련이 덜 고되게 느껴진다.